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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고통이 만든 광기…어둠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2023년 10월 20일 16시 59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깊은 어둠의 세계로 빨려드는 듯한 '검은 그림'을 그린 작가가 있습니다. 18세기 스페인 출신의 '프란시스코 고야'인데요. 작품을 통해 작가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과 당시 혼란스러웠던 사회를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도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프란시스코 고야'에 대해서 소개해주신다고요?

[인터뷰]
네, 프란시스코 고야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 사이 굉장히 중요한 작가인데요. 스페인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수석궁정화가로 오랜 시간을 지냈습니다. 때문에, 고야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볼 수가 있고요. 평생 귀족층의 후원을 받았던 예술가입니다. 고야는 1746년, 스페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는데요. 14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마드리드로 이주해 가정을 꾸렸는데요, 1786년부터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로 활동합니다.

옛날 우리나라에도 왕실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도화원이 있었죠. 서양에서도 궁정화가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특히 고야의 후기 작품들을 보면 사회적, 정치적인 주제를 잘 반영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등의 거장들이 고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고야가 궁정화가로 활동하는 동안 그 기간에 여러 명의 군주를 섬겼다고요?

[인터뷰]
네, 고야는 카를로스 3세와 4세, 페르난도 7세 등을 섬겼는데요. 1799년에 스페인 궁정화가의 최고 지위인 '최고궁정화가' 지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고야는 1786년부터 왕실에서 급료를 받는 화가로 활동했고요, 1789년에 샤를 4세의 궁정화가로 본격적으로 임명됐습니다. 이후 왕과 귀족을 위한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요, 고야는 초상화를 아름답게 그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미술비평가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고야가 왕실에 대한 풍자를 담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는데요. 궁정 화가로 활동하는 동안 전통적인 회화 형식을 사용하기도 했지만요, 자신만의 해석과 화풍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앵커]
그런데 아주 풍족하게 여러 명예도 누리면서 작품 활동을 했을 것 같은데, 사실은 난청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요?

[인터뷰]
프란시스코 고야는 1793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청각을 잃게 되는데요. 고야의 화풍은 병을 앓기 전과 후로 크게 달라지는데, 청각을 잃은 후에 작품 톤이나 분위기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두워지거든요.
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쇠약으로 인해 우울증도 얻게 되는데, 훗날 추측하기로는 난청의 원인이 당시 흔했던 매독 때문이었거나, 또는 고야가 사용했던 물감에 포함된 다량의 납 성분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앵커]
들어보니까 고야도 나름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다 간 화가인 것 같은데, 그만큼 화풍도 그때마다 달랐을 것 같습니다. 초기나 후기 대표작을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말씀하신 것처럼, 초기 작품과 후기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먼저 초기 작품인 <파라솔>입니다. 흔히 알려진 고야의 작품 분위기와는 좀 다른, 굉장히 밝고 유쾌한 이미지의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원래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졌는데,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의 엘파르도 왕궁 벽에 걸 수 있도록 태피스트리로 변형되어 특별 제작됐습니다. 고야가 1775년부터 태피스트리 공방에서 장식디자이너로 일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는 풀밭에 앉은 소녀와 초록색 양산을 들고 햇빛을 가려주는 소년이 등장하는데요. 당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젊은 여성을 '마하', 남성을 '마호'라고 불렀거든요. 마하와 마호의 이런 옷차림이 마드리드에서 크게 인기였다고 합니다. 집시풍에 가까워 보이는 가벼운 옷차림인데요, 당대 콧대 높은 귀족들까지 따라 입을 정도로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고야의 초기 작품을 보면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주제가 아니라, 이처럼 밝고 에너지 넘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요. 고야의 작품 중에서 의외로 인기가 많아서 관광객들이 이 작품 관련 굿즈도 많이 구매해간다고 합니다.

[앵커]
햇빛까지 상세하게 표현이 되어있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그런데 후기에는 좀 어두워지는 거 같아요.

[인터뷰]
고야의 후기 작품은 방금 본 초기작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어둡고 무겁습니다. 특히 '검은 그림'이라고 불리는 시리즈가 있는데요. 고야는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런 불안함이 작품에서 '광기' 같은 주제로 풀리는데요. 고야는 오랜 시간 궁정화가로 인정받고, 많은 귀족들에게 후원도 받으면서 어찌 보면 배고픈 예술가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1810년대인 말년 때는 공직에서 물러나 마드리드의 한 농가를 작업실로 개조 해 고독하게 살았는데요. 75세의 나이에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외로움 속에서 14점의 '검은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자신의 작업실 벽에 회반죽을 이용해 그려졌는데요. 이런 작업 과정을 봤을 때, 고야는 이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려는 생각은 없던 것으로 보이고요. 그림에 대한 일말의 해석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검은 그림은 고야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후, 소유주에 의해서 철거되면서 캔버스 지지대로 옮겨졌고요. 이 검은 그림들 역시 프라도 미술관에 상설 전시되어 있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신 후기의 '검은 그림'들이 고야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 한 점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아마 미술사에 관심이 많거나, 공부했던 분들이라면 잘 아실 그림인데요.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하는데요. 광기에 사로잡힌 한 남성이 아이를 잡아먹는 섬뜩한 장면입니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이 아이는 자신의 아들인데요. 둘은 부자지간으로, 사투르누스와 그의 아들입니다. 사투르누스는 로마 신화에서 시간과 농경의 신으로 등장하고요.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화 속에서 크로노스는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권력을 얻는데요. 이후 신탁에서 '너도 너의 자식에게 죽임을 당할 거다'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는 대로 삼켜버리기 시작합니다.
고야는 이런 내용을 작품에 담은 건데요, 사실 고야뿐만 아니라 당대 많은 화가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을 작품 속에 담았고, 이 이야기 역시 여러 예술가의 작품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야의 작품은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생생한 표정 등이 잘 드러나 있는데요. 광기 어린 눈빛과 분위기가 이미 이성을 잃고 마치 한 마리의 짐승 같은 모습을 너무나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고야는 당시 어지러웠던 자신과 스페인의 사회적 풍경을 이런 식으로 작품을 통해 풍자하곤 했습니다.

[앵커]
조금 전에 봤던 소년 소녀가 나왔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아주 어두운 그림이었습니다. 이런 프란시스코 고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바로 '고야의 유령'이라는 영화인데요. 유럽의 18세기, 절대 왕정이던 시대에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중세 시대 때 종교 재판이 성행했는데요. 스페인 종교 탄압으로 인해 고통받은 한 여성의 삶을 궁정화가였던 고야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입니다. 나탈리 포트만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당시 타락한 가톨릭의 그늘과 부패, 잔혹함을 목격한 고야가 교회에 대한 광신주의를 비판하면서 그림에 담았거든요.

특히 그중에서 '카를로스 4세 가족'을 그린 작품은 미화라고는 전혀 없는, 현실적인 표현을 넘어서서 과장되게 풍자한 면도 있습니다. 이런 고야의 시선과 당시 시대적 상황을 영화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작품이니까요, 한 번쯤 꼭 보시길 추천해드리는 명작입니다.

[앵커]
그림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림 속에 숨어있는 그 시대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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