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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풍요로운 과일을 화폭에 담다…오치균, 윤병락 작품

2023년 08월 11일 16시 09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탐스러운 과일을 보면 풍요로움과 행복감이 절로 느껴지는데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과일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내는 두 명의 한국 작가가 있습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과일을 소재로 그리는 두 명의 작가와 작품 그리고 작업 방식까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과일을 소재로 그리는 두 명의 한국 작가를 소개해주신다고 하는데, 일단 가을이 생각나는 과일이죠? 먼저 감을 주로 그리는 작가를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맞습니다. 제가 경매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이 작가가 그린 감나무 작품이 참 인기가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바로 오치균 작가입니다. 캔버스에 붓이 아닌 손가락을 이용해 지두화를 그리는데요.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려서 주로 감나무나 서울, 산타페 등을 소재로 그립니다.

특히 오치균 작가는 대학원 시절을 보낸 뉴욕과 산타페, 한국의 사북 등 추억이 있는 지역의 풍경을 작품 속에 그려내는데요. 지금 같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갈 때쯤 생각나는 가을 하늘의 색감을 아주 잘 표현하는 작가로, 미술 시장에서도 인기도가 높은 작가입니다.

[앵커]
그런데 왜 오치균 작가가 감을 주제로 그렸을까요?

[인터뷰]
네, 오치균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2000년대 중반부터 '감 시리즈'를 작업하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당시 '감'은 힘든 시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충청남도 산골에서 자란 오치균 작가는 가정환경이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이 시절 고향 집 앞마당에 큰 감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치균 작가는 이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 일이 당시 생활고를 해결하는 일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는데요. 오치균 작가는 이런 자신의 기억 속의 감을, 두꺼운 물감을 켜켜이 쌓으면서 보다 생동감 있고 다채롭게 표현했습니다.

[앵커]
작품이 물감이 아주 두껍게 쌓여있을 거 같거든요. 작업 과정도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오치균 작가는 '임파스토'라는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데요. 유화를 두껍게 쌓아 작업하는 게 임파스토입니다. 특히 앞서 '지두화'를 그린다고 했는데, 말대로 물감을 붓 대신 손가락으로 찍어 두껍게 쌓아올리는 겁니다. 때문에, 오치균 작가의 작품은 이렇게 이미지로 봐도 좋지만, 실제로 보면 좀 더 입체감과 강렬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앵커]
그럼 오치균 작가의 대표작 하나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사실 오치균 작가의 산타페나 사북 시리즈도 굉장히 좋은데요. 오늘은 감 시리즈를 다뤘기 때문에, 오치균 작가가 2010년에 그린 <감>이라는 작품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느껴지는데요. 아무래도 나뭇가지 뒤의 청명하고 맑은 하늘의 색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뭇가지 사이에 공간이 탁 트여있는데, 그 뒤로 높은 하늘의 색감이 너무나 인상적이고요. 그와 조화롭게 강렬한 주황빛의 감들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오치균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감나무가, 이제는 그 기억에서 나와서 마치 조선 시대에 바깥 풍경 대신 산수화를 바라봤던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에게 상쾌함과 풍요로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국내 많은 컬렉터들이 오치균 작가의 감나무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앵커]
그림을 보니까 가을 냄새까지 나는 느낌이 듭니다. 오치균 작가의 감을 소개해주셨는데, 사과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가 있다고요?

[인터뷰]
네, 아마 이 작가의 작품도 굉장히 많은 분들이 아실 것 같은데요. 탐스러운 사과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작가, 윤병락 작가입니다. 작가는 2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사과'라는 소재를 연구하고 화폭에 담아왔는데요. 사과밭과 포도밭이 많은 영주에서 태어나 영천으로 자란 윤병락 작가는, 미대 진학 후 전시와 미술대전, 아트페어 등 활발하게 활동하며 입지를 쌓았습니다.

특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사과 그림'을 통해 자신이 탐구한 '공간'에 대해 표현하는데요. 궤짝 위에 넘치도록 쌓인 사과를 위에서 바라본 독창적인 화면 구성으로, 회화와 설치를 아우르며 작업합니다.

[앵커]
저희가 얘기 나눴던 세잔의 사과도 그렇고 애플사의 로고도 그렇고, 이번에 윤병락 작가의 사과도 그렇고, '사과'가 큰 영감을 주는 소재가 아닐까 싶은데요. 윤병락 작가는 왜 사과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을까요?

[인터뷰]
네, 말씀하신 것처럼 애플사의 로고나 폴 세잔의 사과 그림뿐만 아니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뉴턴의 사과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이 사과가 참 많은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사과 그림 하면 윤병락 작가가 가장 유명하죠. 윤병락 작가가 처음 사과를 그린 건 2003년 이후라고 하는데요. 작가에게 사과는 "유년 시절 기쁨을 동반하는 고향의 향수가 어린 과실이다. 햇빛, 비, 바람 등 자연의 수혜 속에서 결실을 맺은 사과는 수확의 기쁨이자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어느 날 궤짝 위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는 사과의 모습을 보고 공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궤짝 밖으로 새어 나온 사과의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네모난 전형적인 캔버스가 아니라 변형캔버스로 공간을 확장하기 시작한 겁니다. 사과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소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사용해 그렸는데요, 긴 시간 동안 하나의 대상에 집중한 끝에 완판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고요. 윤병락 작가의 사과 그림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가정에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다거나 사업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앵커]
저도 작품을 보면서 마음이 든든해져서 그런지 하나쯤 걸어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그런 반응이 있었군요. 윤병락 작가의 사과 그림을 제대로 한번 보고 싶은데요. 어떤 작품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인터뷰]
네, 윤병락 작가가 사과를 주로 그리지만, 그림들이 다 굉장히 다르거든요. 저는 그중에서 작년에 그려진 <가을 향기>라는 작품을 가져와 봤습니다. 최근에는 궤짝에서 굴러나온 듯한 변형캔버스 작업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 보여드리는 작품은 전형적인 윤병락 작가의 작품 스타일이거든요.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붉은색의 사과들이 궤짝 위로 넘칠 듯이 쌓여있고요. 그 중심에는 나뭇잎이 달린 가지 하나가 위트있게 올라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판화인데요,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사과들이 모자람 없이 복스럽게 쌓여있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배부른 것 같습니다. 앞서 작가가 공간에 대해 탐구했다고 했는데, 사과가 어떤 네모난 틀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그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작가는 사과의 위치를 보다 확장되게 배치함으로써 화면을 넘나들고 회화와 설치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변형캔버스라고 하셨는데,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은데요. 윤병락 작가의 작업 방식은 어떻게 되나요?

[인터뷰]
네, 평소 윤병락 작가는 작업할 때 직접 제작한 변형캔버스를 사용하는데요. 궤짝 밖으로 나온 사과의 모양대로 나무 합판을 잘라 제작하고, 그 위에 전통 한지를 캔버스의 천처럼 덧붙인다고 합니다. 그 위에 유화로 작업하는데요, 한지와 유화의 특성이 잘 어우러져 무겁거나 탁하게 묘사되지 않고 실제 사과처럼 사실적으로 묘사 되는 겁니다. 저도 윤병락 작가의 작품을 자주 봐왔는데요, 실제로 보면 정말 한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앵커]
우리 정서가 느껴져서인지 더 눈길이 가고 친근하게 느껴지는데요. 얼마 전 입추이기도 했는데, 가을이 더 기다려집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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