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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언더독'을 응원하는 이유…'슬램덩크'에서 찾아보다

2023년 03월 28일 17시 05분
■ 조연주 / 미디어심리학자

[앵커]
최근 극장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요. 업그레이드된 영상과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평가인데요. 그 중 26년 만에 영화로 돌아온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 비결에는 추억을 소환하는 힘과 언더독 효과까지 더해졌다고 하는데요. 오늘 '한길 사람 속은' 에서는 언더독에 대해서 알아보고 왜 언더독을 응원하게 되는지 조연주 미디어심리학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가 조금 전에 '언더독'이라는 말을 언급을 했는데 언더독 효과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죠.

[인터뷰]
언더독(underdog)이란,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입니다.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를 더 응원하고 지지하는 심리 현상을 ‘언더독 효과’라고 하는데요. 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 즉 궁지에 몰린 개를 응원한다는 뜻에서 비롯됐어요. 약세 후보가 유권자들의 동정을 받아 지지도가 올라가는 경향으로 정치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스포츠와 문화·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고요. 반대 의미인 탑독 (Top dog) 혹은 오버독(overdog)은 ‘승리자’를 뜻합니다.

[앵커]
그러고 보니깐 스포츠를 볼 때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응원하는 건 아닐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언더독을 응원하는 이유가 뭘까요?

[인터뷰]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월드컵 경기에서 언더독의 반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축구 강국이거나 세계적인 선수가 있는 팀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언더독이 당연히 질 것이고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그 예상이 통쾌하게 깨지면서 오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때문에 사람들은 언더독을 응원하고 환호를 보냅니다. 언더독의 승리는 예상을 벗어날수록 더욱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역경과 시련, 불리한 환경을 이겨내는 극복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공 서사보다 치유 서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의미인데요. 성공할 것 같은 사람이 성공한 이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나 기회를 갖지 못한 자들이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에 더 많이 공감하고 치유를 받습니다. 비록 확률이 낮고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그 실제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약자가 강자를 이길 때 더 열광하고 그들의 승리에 더 큰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앵커]
앞서 말씀드렸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에도 이런 언더독 효과가 반영이 된 거라고 하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슬램덩크에는 노력과 열정, 좌절, 승리와 패배라는 인생의 축소판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원작의 큰 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인물도 그대로 등장하지만 포커스를 조금 바꾼 점이 눈에 띄는데요. 원작에서 주요 인물이 아니었던 송태섭의 비중을 늘렸습니다. 송태섭은 작은 키와 형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코트를 뛰면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이렇게 원작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에게 포커스를 맞춘 것은 우리 사회에 천재보다 범재의 존재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세상에는 강백호, 서태웅보다 송태섭 같은 평범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력뿐이고, 타고난 천재를 이길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슬램덩크는 패배하더라도 노력의 땀은 언젠가 승리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부족하고 아픔이 있는 이들이 모여 꿈을 향해 달려가는 언더독의 반란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을 기억하고 찾는 것 같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슬램덩크를 기억하는 3050 세대가 먼저 찾기 시작했지만 그 인기가 10대~20대까지 이어지면서 흥행했는데요. 이들이 슬램덩크를 찾는 이유에 언더독이 연관이 있을까요?

[인터뷰]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MZ세대 없이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데요. 실제로 슬램덩크가 연재될 때 태어났다고 하는 연령층도 꽤 있어요. 어떤 작품의 원작이 오랜 시간이 흘러 돌아오거나 리메이크 되면,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에게 추억 팔이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슬램덩크는 X세대에서 MZ세대까지 세대를 이어준다는 표현을 많이 듣고 있는데요. 슬램덩크의 원작을 알지 못했던 20대도 “왼손은 거들 뿐” “포기하면 그 순간이 시합 종료” "포기를 모르는 남자" 이런 명대사를 밈을 통해 접했는데, 그것을 영화로 다시 확인하는 재미도 있는 것 같고요. 요즘 찾기 어려운 언더독의 반란 서사에 매력을 느끼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천재적인 능력이 아닌 열정과 연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담긴 작품으로 폭넓은 세대가 찾게 되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러니깐 이걸 어렸을 때 실제로 본 사람도 있고 얘기만 듣다가 이제 본 세대도 있을 데 언더독 심리가 다양한 연령대를 한 번에 묶었다 이렇게 분석할 수 있겠네요. 폭넓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긴 했지만 그래도 나이 차가 있는 만큼 세대별로 느끼는 차이점도 있겠죠?

[인터뷰]
그렇죠. 우선 슬램덩크가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걸작으로 남은 것은 미완의 여운 덕이 큽니다. 완결 구조가 아닌 절정에서 끝난 미완성이었거든요. 심리학에서 미완성인 것에 더 관심이 쏠리는 것을 '자이가르닉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라고 하는데요. X세대는 오랜 시간이 흘러 돌아온 극장판을 통해 절정에서 끝난 원작에 대한 답답함과 기대감이 분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극장판은 거들 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리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요. 반면 MZ세대는 콘텐츠 자체의 재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화가 연재되던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흥행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측이 빗나갔죠. 오히려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관객층은 그 당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고요. 이전 세대의 낭만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즐기면서 세대 간의 간극이 ‘슬램덩크’를 통해 화합하게 된 재밌는 사연도 웹상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앵커]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층은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면서 감상 꼴이 달랐지 않았을까 느껴지는데요,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인터뷰]
공통점으로는 청춘들을 위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청춘은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성장통으로 인해 위태롭고 아픈 시기이기도 한데요. 관객들은 슬램덩크 등장인물들의 성장 과정에 크게 공감합니다. 이는 언더독에게 느끼는 동질감 같은 것입니다.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성공 스토리를 등장인물을 통해서 대리 경험하는 전형적인 감정이입이죠.

예전의 영웅 서사는 완전한 강자가 중심에 있었지만, 현재의 영웅 서사는 조금 다릅니다. 신체나 정신적으로 아픔을 가진 인물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언더독의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슬램덩크에서도 번번이 실패했던 것을 수천 번의 연습 끝에 성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어쩌면 우리도 각자의 마음속에서 매일의 경기를 치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앞에는 넘기 힘든 장벽이 놓여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장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경기는 끝나지 않은 것‘이라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에 감명받고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우리도 각자의 마음속에서 매일의 경기를 치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참 여운이 있게 느껴지는데요, 조금 전에 '송태섭'을 언급을 하셨는데 이 '송태섭'처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터뷰]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감독은 코트 위 강자들의 태연한 얼굴 뒤에도 각각의 삶이 있고 아픔과 상실, 실패, 그리고 살아가면서 누구나 통과하는 길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불안한 순간에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해 애써 강한 척하지만 한 번쯤 위태로운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힘든 순간을 극복하고 포기하지 않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절실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농구가 없었다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그 시간 들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텐데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삶의 의미를 주는 몰입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실하게 몰입하는 순간 인간의 뇌는 한계의 벽을 뛰어넘고 기쁨을 느낍니다. 몰입의 순간을 자주, 오래 느낄수록 행복하고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1등이나 최고가 아니더라도 언더독처럼 포기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할 때 타인도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오늘 말씀을 나눠 본 '언더독'에 관한 심리가 말씀하신 것 처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힘든 시기를 견디고 계신 분들에게 오늘 이야기가 꺾이지 않는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길 바랍니다. 조연주 미디어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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