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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이야기

2023년 01월 13일 17시 05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얼굴과 목을 가늘고 길게, 눈은 아몬드 형태로 그린 초상화로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인데요. 모딜리아니는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 명성이 높아진 비운의 화가이기도 합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20세기 초 활동한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사후에 더 주목받았다라고 하니까 안쓰러운 마음도 드는데요. 모딜리아니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부터 해주시죠.

[인터뷰]
네, 모딜리아니는 살아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작품이 유명해진 비운의 화가 중 한 명이죠. 모딜리아니는 어린 나이부터 예술에 흥미가 있었고요, 어머니는 모딜리아니의 잠재력을 일찍이 알아보기도 했는데요. 14살에 리보르노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요. 18살 때 피렌체 미술학교에 들어가 조각가를 꿈꾸다가 1년 뒤에 베네치아 미술학교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게 됩니다. 23살에 나이로 프랑스의 독립미술가협회인 앙데팡당에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이듬해에 '앙데팡당전'에 6점의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모딜리아니는 프랑스 화단에서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데요, 그중에는 피카소도 있었습니다. 당시 모딜리아니를 포함한 젊은 예술가들은, 세잔의 영향을 받아서 각자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17년, 몽파르나스의 한 카페에서 잔 에뷔테른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요. 같은 해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개인전을 열게 되는데요,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출동해 전시를 중단하게 됩니다.

[앵커]
지금 설명해주신 내용을 들어보면 모딜리아니의 삶이 어느 정도 평탄한 삶이었던 거 같은데 그런데 경제적인 어려움이 굉장했다고요?

[인터뷰]
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은 사이에는 딸이 있었는데요. 양육이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고 합니다. 잔과 딸은 친정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모딜리아니는 살아있는 동안은 가족을 지키지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살아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모딜리아니가 사후에 급격히 주목받게 되면서 명성과 함께 작품가 또한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는데요. 어느 정도냐면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현재 전 세계 경매 최고 낙찰액 4위와 5위를 나란히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앵커]
죽기 전에 작품이 인정받는 모습을 봤다면 좋았을 텐데 좀 안타까운 거 같습니다. 조금 전에 모딜리아니가 프랑스에서 참여했던 '앙데팡당'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게 정확히 뭘까요?

[인터뷰]
앙데팡당은 '독립적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당시 프랑스 독립미술가협회를 칭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있었듯이, 프랑스에는 정부가 주최하는 미술전람회가 있었는데요. 심사가 엄격했다고 합니다. 앙데팡당은 이에 대항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람회고요, '무심사, 무상'이 원칙입니다.

심사도 시상식도 없이 소정의 참여비만 있으면 작품을 낼 수 있었던 대중적인 전시라고 보면 됩니다. 이 앙데팡당 전시가 기존의 미술계의 권력이나 전통을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신인상주의나 나비파, 입체주의 등 중요한 미술사조와 미술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앵커]
심사도 없고 상도 주지 않는다. 정말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이제 모딜리아니의 작품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인터뷰]
모딜리아니는 폴 세잔의 영향을 받았다고 앞서 설명을 드렸는데요. 세잔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딜리아니 또한 인물을 그릴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그렸습니다. 워낙 데생 실력이 탁월했기 때문에 인물을 그릴 때는 가늘지만, 힘이 느껴지는 선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인데요.

조각가인 자크 립시츠는 모딜리아니에 대해 작업할 땐 마치 신들린 사람 같았고, 데생을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았는데 이미 그린 듯이 수정하는 법도 없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가늘고 긴 얼굴과 사슴처럼 길고 가녀린 목, 아몬드 형태의 눈 모양입니다. 어떤 인물화들은 눈동자 없이 텅 빈 눈으로 묘사된 작품들도 있는데요. 모딜리아니가 그린 인물화는 마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조각가들과 교류하면서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또 아프리카의 토속미술 등에 매료되어 아프리카 가면처럼 생긴 조각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아 모딜리아니 특유의 초상화 화풍이 생겨난 겁니다.

[앵커]
말씀 듣고 모딜리아니 그림을 보니까 정말 조각해놓은 것처럼 그렸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은데요. 앞서 피카소를 포함한 많은 예술과들과 어울렸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한 사람만의 영향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았을 거 같거든요. 어떤 예술가들이 있을까요?

[인터뷰]]
네, 모딜리아니의 예술 인생에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루마니아 출신의 콘스탄틴 브랑쿠시라는 조각가인데요. 브랑쿠시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헨리 무어 등과 함께 20세기 현대조각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죠. 브랑쿠시는 모딜리아니와 친분을 쌓으며, 모딜리아니에게 조각을 권하게 됩니다. 브랑쿠시는 추상 조각의 거장인데요. 작품들을 보면 사물의 모습을 굉장히 단순하게 형상화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의 주요한 핵심만 남겨두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과감하게 버리는 게 특징인데요.

모딜리아니는 이런 브랑쿠시와 교류하면서 영향을 받아 잠시 회화를 떠나고 조각에 몰두하게 되는데요. 아쉽게도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발목을 잡게 됩니다. 조각하는 작업 과정에서 돌가루가 날리게 되는데, 이 돌가루가 모딜리아니의 약했던 폐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던 겁니다. 모딜리아니는 결국 조각을 접게 되지만 조각하는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인물화 묘사에서 나타나 특유의 스타일을 완성하게 됩니다.

[앵커]
그래서 그림에 조각 같은 느낌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이렇게 얘기하면 될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모딜리아니의 대표작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모딜리아니가 그린 수많은 여인 초상화 중 대표작은 아무래도 잔 에뷔테른을 그린 작품이겠죠. 이 작품은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이라는 작품인데요. 1918년에서 19년경에 그려졌습니다.

세로가 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것이 모딜리아니의 특징이죠, 긴 얼굴과 가느다란 목, 텅 빈 눈을 묘사한 게 눈에 들어옵니다. 코와 손가락, 팔목도 가늘고 길게 그려졌죠. 또 얼굴보다 훨씬 큰 모자를 쓰고 있는데요. 모자의 챙과 마찬가지로 둥글게 그려진 어깨에서 부드러운 분위기, 그리고 균형미가 느껴집니다. 캔버스의 중심부에 위치한 얼굴과 목, 손으로 이어지는 세로 선에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곡선미가 돋보여서 딱딱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율동감을 줍니다. 검은 모자와 옷, 갈색의 머리와 배경이 차분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모딜리아니가 잔 에뷔테른의 머리에 검은 모자를 그린 것은, 평소 잔의 소박한 모습과 우아한 자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잔 에뷔테른이 모딜리아니가 사랑했던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림까지 그렸다고 하니까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결말이 아름답지는 못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둘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사는 동안 열렬히 사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둘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되는데요, 잔 에뷔테른은 부르주아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당시 가난하게 살던 모딜리아니와의 만남을 집안에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은 함께 살게 되는데요. 모딜리아니는 잔 에뷔테른을 모델로 많은 대표작을 그렸고요. 둘이 살아생전에는 아쉽게도 이 작품들이 인정받지 못했었죠. 모딜리아니는 주변의 예술가들, 피카소와 같은 작가들이 명성을 얻는 동안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양육하기도 힘들 정도로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잔 에뷔테른은 딸을 데리고 부모의 집으로 가게 되는데요. 이때 부모는 모딜리아니를 문전박대하고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건강이 더욱 악화 된 모딜리아니가 사망하게 되자, 그 소식을 듣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잔 에뷔테른은 이틀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둘은 짧은 인생 동안 서로 의지하며 열렬히 사랑했고, 그 결과 잔 에뷔테른을 담은 다수의 작품이 대표작으로 손꼽히게 됩니다.

[앵커]
지금 나와 있는 이 아름다운 작품에 이런 구구절절한 정말 애절한 사연이 있었다는 점 모르고 있었는데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사이언스 in art'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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