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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자식과 고령의 부모님, 효과적인 대화 방법은?

2023년 01월 10일 17시 32분
■ 김지은 / 상담심리사

[앵커]
천륜 관계로 맺어진 부모와 자녀는 당연히 서로 친밀해야 하므로, 일찍이 부자유친이라는 말도 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행동, 말투 등의 이유로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대화 소통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고령의 부모님과 어떻게 잘 대화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사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부모와 자녀 간의 사이가 멀어진다고 하니깐 씁쓸하지만 하지만 분명한 현실이잖아요. 해법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우선 고령의 부모님과 대화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자녀는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서 정서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는데요. 이것은 성인으로 발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발달 단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점점 더 나이 들어갈수록 보살핌이 필요해지는데요. 그렇다 보니 성인 자녀들은 다시 부모와 가까이에서 교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부모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한 번 심리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했는데 다시 가까운 거리에서 교류하게 될 때,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이 불거져 나오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때 고령의 부모님과 올바르게 대화를 하지 못한다면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는데요.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원만해지려면 대화가 정말 중요합니다.

[앵커]
그런데 젊은 부모님보다 고령의 부모님과 대화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자식들은 대부분 부모가 노인이 되면 '한창때'는 지나고 쇠약해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노인이 된 부모는 움직임도 예전보다 둔해지고, 체력적으로도 예전만큼 강하지 않고, 기억력도 예전보다 떨어집니다. 게다가 한 번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이야기하던 주제에서 벗어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자녀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일은 아무리 몇 번씩 얘기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소해 보이는 일에 역정을 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경험하다 보면 자녀는 부모를 쇠퇴한 사람으로 여기고 은근히 무시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이 드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다. 부모가 어린애도 아닌데 자녀가 다 해줘야 한다." 등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부모가 노인이 되면서 노인이 거쳐야 하는 심리적인 발달 과정을 겪기 때문에 발생하게 됩니다. 이 발달 단계에 대해 자녀 세대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앵커]
효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자녀가 무조건 부모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주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인터뷰]
그렇지 않습니다. 효심 이야기도 하셨는데 자녀를 애정 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받아주지 않는 것처럼 무조건 부모에게 맞추기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닌데요. 예를 들어보자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아동 발달 단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향상된 것을 느끼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3살짜리 아동과 대화를 할 때 30살의 성인과 대화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입니다.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쓸 때, 그 행동을 멈추게 만들기 위해서 "그만해!" 하고 큰소리로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아이에게 화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효과적인 훈육 방식을 사용해야 합니다. 즉 아이의 행동을 무조건 다 받아주지는 않지만, 아이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눈높이 대화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부모의 요구를 다 받아주기 어려울 때 그것을 무조건 다 들어드리려고 무리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나이 든 부모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를 알아보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앵커]
왜 그렇게 행동하시는지 알아보려면 앞 전에 말씀하셨던 노인 발달 단계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설명해 주시죠.

[인터뷰]
인간의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을 정립한 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9단계 발달이론을 제시했는데요. 이 이론에 따르면 60세 이상이 되었을 때 8단계인 노년기에 진입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발달과업은 바로 '자아완성' 대 '절망'입니다.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의미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업이라는 것을 바로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사람이든, 직업이든, 사물이나 장소, 또는 자신의 체력이나 특성, 정체성 등 자신에게 중요했던 많은 것을 떠나보내는 상실의 경험이 늘어납니다. 이때 그 상실의 경험들 속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유지하고, 충분한 애도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과정입니다. 나이 든 부모가 이런 발달과업을 경험하는 중이며, 이 때문에 성인 자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종종 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앵커]
그냥 부모님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되실 수 밖에 없는 그런 변화가 있구나 라고 이해를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고령의 부모님이라 해서 모두가 어려운 건 아니고 대응하기 어려운 부모님의 유형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인터뷰]
그레이스 리보와 바바라 케인의 책 '나이 든 부모와는 왜 사사건건 부딪칠까?'에서는 우리 부모님의 까다로움 수준이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실려 있습니다. 이 체크리스트에서는 부모의 까다로운 행동 유형을 의존적 행동, 외골수적 행동, 자기중심적 행동, 통제적 행동, 자기 파괴적 행동, 두려움으로 나타내는 행동으로 각각 분류하고 있습니다.

[앵커]
유형의 이름만 들었을 때는 정확히 감이 오지 않는데, 행동의 예시들이 있을까요?

[인터뷰]
체크리스트에서 제시한 문항의 일부를 잠깐 같이 보겠습니다. 첫 번째인 의존적 행동의 예시는 '누군가(특히 자녀)에게 딱 붙어서 그 사람이 모든 것을 해주길 바란다, ‘자녀와 떨어져야 할 때는 신체적으로 아프거나, 싫다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가 있습니다.

두 번째인 외골수적 행동의 예시로는 '매사에 부정적이며 늘 불행하다고 불평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가 있습니다.

세 번째 자기중심적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무관심하면서도 자신이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등이 있고,

네 번째 통제적 행동은 ‘죄책감을 일으키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조종한다, '자신이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적대적으로 대한다.' 등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자기 파괴적 행동의 예시로는 '술이나 마약, 약에 중독됐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하겠다는 협박을 한다.’ 등이 있고,

마지막 여섯 번째 두려움으로 나타내는 행동의 예시로는 ‘미신이나 의식을 중요시한다.’, ‘병원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마법 같은 치료법을 찾는다.’, ‘현실에서든 상상 속에서든 건강 문제에 집착한다.’ 등이 있습니다.

[앵커]
예시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익숙한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는 모습 같은데요. 그렇다면 만약 부모님이 까다로운 유형에 속한다면 자녀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인터뷰]
자녀와 부모 사이에 거리가 있어도 부모가 자녀의 도움이 필요해지면 자녀가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보다 어쩔 수 없이 더 가까워지는데요. 그러다 보면 자녀는 자신이 힘들어했던 부모님의 행동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심지어는 부모의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서 그 행동들이 더욱 심해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욱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의 행동이 문제라고 해도, 그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라 자녀입니다. 심지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더 큰 역량도 자녀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기존의 익숙한 대응방식에서 벗어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면, 좀 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변화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앵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인터뷰]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공감하기입니다. 부모의 행동을 즉각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일단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입니다. 행동에 대해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기보다는, 그 아래에 있는 감정을 알아주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반응한다면 대화의 방향을 다르게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난 외롭게 혼자 지내는데 너희끼리만 여행을 갈 생각이냐?"라고 말할 때 "우리 가족끼리 가는 여행은 진짜 오랜만이라고요!" 라고 맞받아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멈추고, "적적하시죠."라고 부모의 감정에 먼저 공감한 다음, "대신 수시로 전화 드릴게요."라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이 잘 통하지 않을 수 있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부모도, 자녀도 점점 더 좌절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생각과 대화방식이 다를 순 있어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으니까 그 진심을 믿고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를 갖는 게 좋겠네요. <한 길 사람 속은>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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