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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추상 표현주의의 창시자…바실리 칸딘스키의 대표작

2023년 09월 01일 16시 22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러시아 출신의 화가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법학자의 길을 걷다 우연히 모네의 작품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아 30세의 늦은 나이에 미술 공부를 시작한 작가인데요. 작가의 감정이나 작업 과정에 집중해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한 추상회화분야에도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칸딘스키의 대표작과 추상표현주의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추상회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칸딘스키에 대해서 알아볼 텐데요. 먼저 추상표현주의가 뭔지 알려주시죠.

[인터뷰]
네, 추상표현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러니까 1940년대에서 50년대 사이에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조입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술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온 시기인데요. 이전에는 미술이 유럽 중심이었다면 추상표현주의가 전개될 때 서양 미술 역사상 미국이 최초로 중심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은 미국 moma의 초대 관장이자 미술비평가였던 알프레드 바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요. 알프레드 바가 오늘 소개할 작가인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추상표현주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추상표현주의는 한 마디로 '형태는 추상적이지만 표현주의의 사조를 이어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앵커]
추상적이지만 표현주의의 사조를 이어간다고 하셨는데, 표현주의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려주시죠.

[인터뷰]
네, 표현주의는 모네나 고흐 같은 인상파의 시대가 지나면서 독일에서 전개된 미술 사조인데요. 대표적인 작가로는 뭉크나 에곤 실레 등이 있습니다. 내면에 잠재된 인간의 감정과 표현 욕구를 작품에 담은 것이 바로 표현주의인데요. 예를 들어서 뭉크의 '절규' 같은 작품을 보면, 작품 속의 음울한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데요. 이런 작품이 바로 표현주의의 예시입니다.

[앵커]
추상표현주의라는 개념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들어봤고, 그렇다면 칸딘스키는 어떤 작가였는지 알아볼까요?

[인터뷰]
바실리 칸딘스키는 원래 법학과를 전공한 수재였지만, 모네의 '건초더미'라는 작품을 보고 크게 영감을 받는데요. 이때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독일로 넘어가서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하는데, 초기에는 화려한 색감의 풍경화나 러시아의 민속화 등에서 영감을 받고 작업하는데요. 이후에 점점 구상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생김새와는 상관없이 형태와 색채 그리고 선을 가지고 다양하게 확장합니다.

또, 1922년부터 현대 조형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바우하우스'에서 회화와 미술 이론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요. 디자인과 예술 사조를 깊이 있게 연구하면서 작품에서 건축적 구성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앵커]
칸딘스키가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요. 왜 이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뷰]
네, 칸딘스키가 모네의 '건초더미' 작품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을 하는데요. 모네는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죠. 바로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의 형태와 색감을 화폭에 담는 게 인상주의의 특징입니다. 모네의 건초더미 시리즈를 보면 똑같은 건초더미도 시간대에 따라서, 해가 뜨고 짐에 따라서 시각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는데요. 우리가 어떤 사물을 생각할 때 정지된 어떤 한 장면만 떠올리잖아요. 이전에는 그림도 사물의 한 장면을 화폭에 담는다고 봤다면, 모네는 같은 사물도 빛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을 때마다 다른 모습을 남긴다는 것에 주목한 겁니다. 칸딘스키는 모네의 이런 시도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아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겁니다.

[앵커]
그리고 조금 전에 칸딘스키가 바우하우스에서 강의도 했다고 하셨는데, 바우하우스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디자인 쪽에서 많이 나오는 이름 같거든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바우하우스는 14년이라는 어찌 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운영이 됐지만, 건축과 디자인의 모든 뿌리를 만들고, 색채와 선에 대한 정의를 내린 전설적인 곳입니다. 1919년에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가 미술과 공예를 병합해서 이 바우하우스를 설립하게 되는데요. '바우하우스'라는 단어는 '집을 짓는다'라는 뜻을 가진 하우스 '바우'라는 단어를 도치시켜 만든 겁니다. 설립 초기에는 공예 학교의 성격이 강했지만, 이후에 예술과 기술을 통일시키면서 교육 과정도 그런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칸딘스키는 1922년부터 1933년까지 이 바우하우스에 있었는데요. 안타깝게도 당시 나치가 이 바우하우스의 교육 방식이 너무 전위적이라는 이유로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교수진도 계속 바뀌고, 지역도 3번이나 바뀌는 등 여러 고초를 겪는데요. 결국, 완전히 폐쇄됩니다만 이후에 이 바우하우스에 있던 유명 교수진들이 갈 곳이 없어지자 미국에서 이주를 도와주고, 하버드나 예일 같은 유명 대학에 교수진으로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바우하우스 출신들을 보면 간결하고 실용적이지만 도형미가 돋보인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칸딘스키도 그 중 한 명 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칸딘스키가 음악과도 친밀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추상표현주의가 '표현주의'그러니까 내면의 감정을 작품으로 나타내는 특징이 있죠. 칸딘스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인 철학이나 음악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특히 표현주의음악의 거장, 아놀드 쇤베르크와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실제로 칸딘스키는 아마추어 음악가로 봐도 될 정도로 피아노와 첼로를 잘 연주했다고 하고요.

쇤베르크는 반대로 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쇤베르크는 12음 기법이라는 현대음악을 창시하기도 했는데, 12음 기법은 기존의 화성학에 규정되지 않았던 낯선 화성을 사용한 기법입니다. 칸딘스키가 뮌헨에 있을 당시에, 한 연주회에서 쇤베르크의 음악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는데요. 쇤베르크의 음악을 듣고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쇤베르크의 음악을 듣고 표현한 작품이 궁금한데요.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연주를 보고 충격과 설레임을 동시에 느끼는데요. 며칠간 벅찬 마음으로 지내다가 '인상 3'이라는 작품을 그리게 됩니다. 작품을 보시면 중간에 검은색의 형태가 크게 그려져 있는데요. 이 작품에는 '콘서트'라는 부제목이 있거든요. 검은 형태는 무대 위의 피아노를 표현한 겁니다. 그 옆에 알록달록 그려진 형태는 관객들이고요. 노란색으로 넓게 칠해진 부분은 음악 소리를 표현한 것을 해석됩니다. 칸딘스키가 이 연주를 보면서 강렬하게 느꼈던 감정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앵커]
두 대가의 만남이네요. 또 칸딘스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이 있을까요?

[인터뷰]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를 보면 대체적으로 선의 사용이 조금 계산적이면서도 제한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하지만 색채에는 감정을 담아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거든요. 이 작품은 '구성 8'이라는 작품입니다. 칸딘스키는 약 30여 년간 '구성' 시리즈를 그렸는데요. 총 10점 제작되었습니다. 그중에 이 작품은 바우하우스에서 교수로 있을 때 그려졌는데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느낌의 선이 주로 표현되어있습니다.

특히 작품 왼쪽 상단에 존재감이 큰 원이 그려져 있는데요. 이 큰 원과 화면에 퍼져있는 다른 원들이 뻣뻣한 직선이나 삼각형의 각들과 대립 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칸딘스키의 이런 뛰어난 조형성은 마치 음악이 화면에서 들리는 듯한 에너지를 주기도 합니다.

[앵커]
오늘은 칸딘스키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뒤늦게 자신의 꿈을 찾아서인지 더 자유롭게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한 작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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