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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이야기] 움직일 수 없는 식물…어떻게 역병과 싸울까?

2022년 03월 18일 17시 17분
[앵커]
코로나19라는 감염병과 싸우기 위해 우리 인류는 환자를 격리하고 백신을 접종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왔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 사이에 역병이 돌면 식물들은 어떻게 대처할까요?

식물도 이런 역병과 싸울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발전시켜왔다고 하는데요.

오늘 궁금한 이야기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이효종 / 과학유튜버]
안녕하세요. 궁금한 이야기의 이효종입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균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지키는 생체 시스템인 ‘면역 작용’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면역 시스템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병원균 또는 바이러스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지, 그리고 백신은 어떻게 우리의 면역활동에 도움을 주는지와 같은 지식들 말입니다.

진핵생물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속하는 우리 동물계 생명체들은 대부분 외부로부터 침입해 들어온 병원체에 대한 상세한 인식을 한 뒤, 그 병원체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대상을 제거해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체를 몸 안에 인식시키는 일이, 곧 면역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백신을 맞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죠.

그런데 우리와는 사뭇 다른 식물의 경우는 어떨까요?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식물에 대한 몇몇 대 역병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일랜드 대 기근으로 점철되는 감자 역병의 사례, 그리고 하와이 섬의 파파야 대란과 같은 사례들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오늘날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빠르게 백신을 개발하고 치료제를 개발하여 면역에 도움을 주는 우리의 상황과는 다르게, 식물의 질병에 관해서는 특별히 손 쓸 만한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우리는 ‘식물병원’이라는 곳을 찾아볼 수 없죠. 오늘은 왜 식물병원이 없는지, 그리고 ) 식물은 동물과 다르게 자신의 몸을 외부 병원체로부터 어떻게 보호하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면역체계에서 선행되는 절차가 있습니다. 우선 ‘병원균’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동물과 식물이 다른 점은 인식한 대상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 따른 차이일 텐데요, 일반적으로 동물은 침입한 병원균의 정보를 ‘기억’하고 기억된 정보를 바탕으로 대상을 제거하는, 즉 정보를 파악한 뒤 특정한 대상에 특이적으로 면역작용을 하는 후천면역 시스템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은 침입한 병원균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판단만 하면 최대한 빠른 대처를 통해 더 이상 병원균이 퍼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초기 대응에 초점을 둡니다. 즉 선천면역 시스템에 특화되어 있죠.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항상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세균이나 곰팡이, 난균, 심지어는 곤충에게까지 늘 공격을 받다보니 공격이 들어온 시점에서의 대응이 더 중요한 것이죠.

동물의 경우와는 다르게, 식물에서 나타나는 면역반응은 상당히 극단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더 이상 병원균이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자신의 세포 일부를 괴사시켜버리거나,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자신의 일부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죠. 보통 병원균들이 식물 조직 내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식물 세포와 맞닥뜨리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테면 세균의 경우 편모와 같은 구조를 그 예로 꼽아볼 수 있습니다. 식물은 병원균의 선천적 구조, 즉 병원균의 모양을 식물 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 수용체들을 이용해 인식합니다. 침입 대상이 병원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우선 약한 형태의 면역반응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PTI ; Pathogen-associated Molecular Pattern Triggered Immunity’라고 부릅니다. 식물 면역의 1차 방어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PTI는, 대부분의 병원체들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독성이 강한 병원균들은 식물의 1차 방어선인 'PTI'를 ‘억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식물의 체내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신속하게 PTI 반응을 억제하기 위한 억제 단백질을 분비합니다. 이것을 ‘이펙터 ; Effector’라고 부릅니다. 이펙터에 의해 PTI가 억제되고, 병원균이 식물 세포 안으로 들어오면 이제부터는 식물에게 감염에 의한 ‘질환’이 나타나게 됩니다. 병원균이 보유하고 있는 단백질이 식물 세포 내부로 침투해,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해를 가하기 때문에 식물 입장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렇다면 식물은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요? 사실 식물은 이미 면역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물들은 독성 병원균이 PTI를 억제하기 위해 분비한 ‘이펙터’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식물이 이펙터를 감지했을때 발동되는 매우 강한 면역 반응이 바로, ‘ETI ; Effector-triggered Immunity’라고 부르는 식물의 2차면역 반응입니다.

여기에서 식물과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동물의 면역에서 2차면역 반응은 외부로부터 침입한 병원균의 정보를 ‘기억’ 하고, 이에 해당하는 ‘항체’를 만들거나 또는 병원균으로 면역세포들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병원균을 제거합니다. 즉, 병원균이 일단 ‘침입’해 몸의 면역체계가 스스로 정보를 만들고,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른바 후천적 면역 시스템인것이죠.

그런데 식물의 경우에는 태어날 때 부터 ETI, 즉 식물의 2차면역 반응을 나타나게 만들 이펙터 단백질, 즉 병원균의 단백질이 체내에 이미 저장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태어날때부터 병원균 단백질을 지닐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답은 바로 유전정보에 있습니다. 병원균이 식물에 침입하고, 병원균이 분비하는 이펙터 단백질을 인식하면, 유전정보로 이펙터 단백질이 남게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그 유전정보를 전승하는 것이죠. 쉽게 말해, 동물의 2차 면역 시스템은 병원균이 체내에 들어와야 병원균의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체계인 반면, 식물의 2차 면역 시스템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DNA에 기록된 정보를 기반으로 발현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문에 식물은 어느 특정한 병원균으로부터 ‘치료’, 또는 ‘예방’이라는 개념의 의료 행위를 이행하기 매우 어렵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것이 바로, 식물병원이 없는 이유입니다. 만약 식물계에서 유행하는 질병이 신종 질병이라면, 이미 성장한 식물들에게 있어서는 전파와 확산을 막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외에 어떤 방법으로도 새로운 질병을 막을 수 없는 것이죠.

이에 해당하는 피해 사례를 우리나라에서도 몇 차례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수년 전 농가의 절규와 아우성으로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상병’에 관해서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당시 사과, 배와 같은 과일을 재배하던 농가들은 한 그루라도 ‘화상병’이 발병한 게 확진이 되면 그 과수농가는 바로 폐원을 시켜야 할 정도이지요. 과수의 구제역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그 파괴력은 어마무시했죠.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식물에게 가해지는 새로운 병원균에 대한 피해를 선제적으로 막을 기술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식물의 질병에 관한 연구를 이행하는 학문을, 우리는 식물병리학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식물병리학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중요합니다. 식물의 2차면역에 관한 연구가 유전자 가위 기술의 발달에 따라 크게 진보되기 때문이죠. 앞서 설명한 대로, 식물의 2차 면역은 ‘선천적 면역’의 특성을 가집니다. 이는 DNA에 병원균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하죠.

유전자 가위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DNA 안에 병원균의 정보를 넣는 일이 번거롭고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전자 가위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 태어나는 작물들에게 면역정보를 넣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들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식물 중 ‘까마중’이라는 한해살이풀이 있습니다. 까마중의 어린 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성숙한 뒤에 열리는 작은 열매는 약재로도 쓰이는 예로부터 잘 알려진 식물들 중 하나인데요, 산들에 넓게 자라 다양한 환경 속에 노출된다는 특징 때문에, 이들은 자연선택적으로 수많은 면역 정보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까마중과 같이 특정한 식물이 자연 환경에서 얻은 2차 면역 정보를, 면역을 보유하지 않은 식물의 새로운 세대에 입히는 방식으로 유전자 가위기술을 사용하는 것이죠.

우리와는 많이 다르지만 항상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 식물. 식물의 병을 연구하는 것은, 비단 과학적 탐구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환경문제를 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인류의 커다란 노력들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상 궁금한 이야기였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