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구상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원
[앵커]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유전자 가위는 의학 혁명을 이룰 수 있는 도구인 만큼 이 가위를 설계하는 기술 역시 경쟁이 치열한데요. 국내 연구진이 AI를 활용해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안전하고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오늘 '과학의 달인'에서는 4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프라임 편집기'는 기존 모델과 어떤 점이 다른지, 또 이 기술을 설계할 수 있는 AI 모델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유구상 연구원 나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앵커]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셨다고 하는데요. 먼저 '유전자 가위' 기술이란 어떤 기술인가요?
[인터뷰]
우리가 쓰는 표현 중, "가위질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단순히 자른다는 의미로도 쓸 수 있지만, 넓게 보면 자유자재로 재단한다는 의미로도 쓰기도 합니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를 단순히 자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더 넓은 의미로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도구를 말합니다.
조금 더 명확한 표현으로는 유전자 편집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초기의 유전자 가위 기술은 단순히 정해진 위치의 유전자를 자르는 것만 가능했지만, 점차 발전하면서 현재는 원하는 위치의 유전자를 지우거나 추가할 수도 있고, 유전자 안에 있는 오타를 수정할 수도 있는 기술입니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설계암호문입니다. 잘못된 설계도를 가지고 지어진 집은 물이 새거나 무너질 수도 있는 것처럼, 유전자가 망가진 생명체는 아프거나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습니다. 유전자 가위는 이런 설계도의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기술로써 많은 유전병 들을 치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기술입니다.
[앵커]
유전자 가위 기술이 1세대, 2세대, 3세대 이렇게 나뉘던데, 단계별로 3세대까지 어떻게 나뉠까요?
[인터뷰]
말씀하신 대로, 유전자 가위는 크게 1세대부터 3세대까지로 나누곤 합니다. 3가지 기술 모두 우리가 지정한 유전자를 정확히 찾아가서 그 위치의 유전 정보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각 세대마다 어떻게 특정 유전자를 정확히 찾아가는 방법과 목표 유전자를 자르는 방법이 다릅니다.
1세대와 2세대는 각각 징크핑거 (Zinc finger) 유전자 가위, 탈렌 (TALEN) 유전자 가위라고 부릅니다. 1세대, 2세대 유전자 가위는 그 원리가 비교적 유사한데요, 우리가 원하는 목표 유전자를 찾아가기 위한 정교한 단백질을 조립해서 원하는 위치를 자르는 기술입니다.
우리가 높은 성능의 유전자 가위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 조건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1, 2세대 유전자 가위는 각 조건 마다 정교한 단백질 조합을 매번 만드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3세대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 (CRISPR) '유전자 가위' 라고 부르는데요, 이전 세대의 기술에 비해 훨씬 손쉽게 유전자 가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유전자 가위가 목표 유전자를 찾아가는 전략이 이전 세대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복잡한 단백질이 아니라 RNA라고 불리는 간단한 물질이 사용됩니다. RNA는 단백질에 비해서 설계하고 생산하는 것이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유전자 교정 연구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유전자 교정 분야에서 사용되는 유전자 가위의 99% 이상은 3세대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3세대 기술까지 설명해주셨는데, 4세대를 '프라임 편집기'라고 부르더라고요. 4세대는 어떻게 개선됐나요?
[인터뷰]
크게 2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장점은 매우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가위가 잘못 작동해서 우리 몸의 정상 유전자를 망가뜨린다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전자 가위의 안전성은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초기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를 완전히 절단했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해서 우려하는 연구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프라임 편집기는 유전자를 완전히 절단하지 않고도 유전자 교정이 가능한 기술입니다. 기존에 비해 안전한 기술이기 때문에 향후 유전자 치료제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장점은 기존의 유전자 가위보다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유전자 가위들은 모두 유전자를 제한적으로만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떤 유전자가 위는 자르는 것만 가능하고, 어떤 것은 유전자의 한 가지 종류의 글자만 인식할 수 있는 등의 제한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프라임 편집기는 이런 제한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종류의 유전자 교정을 하나의 유전자 가위로 가능합니다.
[앵커]
네, 그렇다면 프라임 편집기는 어떤 원리로 유전자 교정이 가능한 걸까요?
[인터뷰]
프라임 편집기 같은 유전자 가위는 마치 작은 나노로봇 같은 생체물질입니다. 이 프라임 편집기는 크게 2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원하는 유전자 위치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프라임 편집 가이드 RNA (prime editing guide RNA; pegRNA)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위치에 붙어서 유전자 교정을 일으키는 프라임 편집기 단백질입니다.
이 2개의 부품이 만나서 합쳐지면 비로소 완성된 프라임 편집 유전자 가위가 만들어집니다. 이 유전자 가위는 우리 몸의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를 찾아가서 정해진 위치에 정확하게 달라붙습니다. 그리고 설계된 새로운 유전 정보를 합성해서 그 자리에 끼워 넣습니다.
특히, 프라임 편집기는 이렇게 새로운 유전정보를 아예 그 자리에서 합성해버린다는 것이 기존 기술들과의 차별점인데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그 자리에서 유전 정보를 새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종류에 제한되지 않고 유전자 편집이 가능한 아주 강력한 기술입니다.
[앵커]
정말 만능 편집기네요. 그렇다면 개발하신 기술이 이 프라임 편집기를 AI를 활용해 설계하는 기술이라는 건데요. 우선 많은 DNA 서열정보 데이터 확보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학계에 보고된 측정 데이터 중 이번 연구가 가장 큰 규모의 데이터라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현재 제가 있는 연세대학교 김형범 교수님 연구실은 대량의 유전자 가위 효율을 측정하는 기술이 가장 뛰어난 그룹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 방의 기술력을 이번 연구에서 최대한 집중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기존의 우리 연구실이 보유하고 있던 데이터 종류보다 582배 많은 프라임 편집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스위스 연구진이 발표한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데이터보다도 약 3.4배 큰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앵커]
프라임 편집기는 컴퓨터로 코딩하듯이 유전자 가위로 이용할 수 있는 건가요?
[인터뷰]
컴퓨터 코딩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몇 가지 기본 지식과 저희가 개발한 모델을 이용하면 프라임 편집기는 우리가 흔히 쓰는 워드 프로세서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 모델은 우리가 원하는 유전자 위치와 바꾸고 싶은 유전 정보를 입력하면 1-2분 내로 가장 효과적인 프라임 편집기를 선택해서 알려줍니다. 프라임 편집기의 정보를 알면, 이를 실험실에서 합성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연구자들에게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프라임 편집기를 세포나 동물에 전달해줍니다.
주로 연구용으로 사용할 때에는 바이러스에 프라임 편집기 정보를 담아서 감염시키는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만약 미래에 연구용이 아닌 실제 사람에게 전달한다면, 백신을 주사하듯이 프라임 편집기를 몸 안에 전달할 것 같습니다.
[앵커]
AI 예측 모델 덕분에 매번 실험하지 않아도 효율성의 측면에서 아주 혁명적인 변화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게 되면 유전자 가위 기술 상용화의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이번 연구로 인해 프라임 편집기를 이용하는 것이 많이 간편해졌지만, 이를 직접 질병 모델 치료를 위한 연구에 적용하거나 직접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분야의 연구입니다. 유전자 가위가 정말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몸 안에 직접 들어가도 안전할까, 이런 질문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앵커]
이 기술이 개발 완료되면, 어떤 질병 치료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나요?
[인터뷰]
정말 많은 종류의 유전 질환에 대해서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이-삭스병 (Tay-Sachs disease)이 있습니다. 이는 HEXA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겼을 때 발생하는 유전성 신경 질환입니다. 발병 시기에 따라서 사망에 이르기도 하고, 시력을 잃거나 운동능력의 부족 등이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질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중 대표적인 것이 유전자 내의 특정 암호가 중복해서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우리 말로 치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라는 문장이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신다." 로 중간에 중복된 단어가 들어가서 잘못 쓰인 것이죠. 이런 경우는 중복된 정보를 삭제해주는 유전자 교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프라임 편집이 활용되기 좋은 사례입니다. 물론 아직 까지는 이 기술은 실험실 수준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실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앵커]
먼 미래로만 생각했던 기술이 실제로 상용화될 일이 머지않아 다가올 것 같은데요. 상용화에 대한 계획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인터뷰]
유전자 가위 기술은 정말 놀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발명된 지 약 10년 정도 지났는데요. 벌써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첫 번째 치료제가 조만간 판매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Exa-cel이라는 이름의 치료제인데요,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 승인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 차세대 유전자 가위인 프라임 에디터는 임상 단계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도 곧 치료제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신기술이기 때문에 효율과 안전성 문제는 검증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모든 연구자들이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일 것 같습니다.
[앵커]
앞으로 유전자 치료 분야에 대해서 전망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인터뷰]
3년 전, 유전자 가위 기술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도우드나 교수님은 향후 10년 정도 후에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제가 우리 삶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전자 치료 분야는 과학적 원리가 명확하고, 이미 동물 수준의 실험에서도 효과를 본 사례가 정말 많습니다. 모든 유전 질환을 100% 정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약물 치료가 불가능했던 유전 질환 중 많은 것들이 유전자 가위 기술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프라임 편집기를 비롯한 유전자 가위 기술은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큰 기술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뿐만 아니라, 식물, 박테리아 등의 다양한 유전자에도 적용 가능하고 이를 통한 새로운 사업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기술 발전에 많은 분들께서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말씀해주신 설명을 들어보니깐 의학의 아주 혁명적인 변화가 기대되는데요, 앞으로도 좋은 연구 성과 계속해서 전해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유구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원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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