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MZ세계평화공원과 남북과학기술협력’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지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온케이웨더 정연화기자
한반도 허리를 감싸고 있는 녹색의 띠 ‘DMZ(DeMilitarized Zone)’는 지난 1953년 발효된 정전협정서에 따라 서해안의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강원도 고성까지 펼쳐진 총 길이 248㎞에 이르는 비무장지대다. 군사분계선(=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를 지정해 4㎞에 달하는 완충지역인 DMZ를 뒀으며, 이 일대 휴전선 남쪽 5~20㎞에 별도의 민간인 통제선이 자리한다.
DMZ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남북 교류와 협력의 피할 수 없는 접점이자 통로다. 그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크게 훼손됐던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된 곳으로 향후 잘 보전시켜야 할 생물다양성 장소이기도 하다.
한반도는 평화와 경색 분위기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변하는 그야말로 긴장의 태세를 늦출 수 없는 곳이다. 이런 가운데 현 정부 들어 DMZ를 갈등하고 대립하는 장소가 아닌 화해와 신뢰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 ‘DMZ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나온 바 있다. 또한 인간과 자연환경이 모두 상생하고 협력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자는 목소리가 지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DMZ세계평화공원과 남북과학기술협력’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나왔다.
▲ 개회사 중인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정연화기자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DMZ학회가 공동 주최, 환경일보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제80회 한림원탁토론회 및 제3회 한국DMZ학회 학술회의가 함께 진행됐다.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손기웅 한국DMZ학회장, 이춘호 코리아 DMZ협의회 상임대표,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대표(전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자 150여 명이 참석했다.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개회사에서 “‘DMZ세계평화공원’ 구상은 암울한 남북관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제안된 전략이다. 더불어 남북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과학기술분야 교류협력의 거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이번 회의 결과를 수렴해 정부에 대한 정책건의도 할 예정인 만큼 참석자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손기웅 한국DMZ학회장도 개회사를 통해 “평화란 어려운 것이며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철조망으로 수 갈래의 담을 쌓고 무기를 든채 서로가 노려본다고 해서 평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평화에 대한 믿음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평화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한 결실이 ‘DMZ세계평화공원’으로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손기웅 한국DMZ학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정연화기자
이날 1부 회의에서는 ▶평화의 존재론적 의미와 구축전략 (장영권 한국평화미래연구소 대표) ▶DMZ와 군사안보 (문성묵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 ▶북한의 대남정책 측면에서의 DMZ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DMZ의 생태적 특징과 가치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 ▶한반도 생태통일과 동북아 생태평화를 위한 DMZ의 가치와 역할 (배문병호 생물다양성 한국협회 사무처장) 등의 주제로 5명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발표에 나섰던 장영권 한국평화미래연구소 대표는 “모든 국가 간에는 국경선이 존재하지만 한반도처럼 DMZ가 있는 곳은 없다. 이 지역은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아군과 적군이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당시엔 거의 모든 것이 초토화됐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60여 년간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전쟁으로 파괴됐던 자연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해 다양한 가치와 특성을 지닌 생명지대로 탈바꿈했다. 생태평화의 측면에서 한반도의 마지막 청정지대인 이곳은 희귀 동·식물과 어류가 서식하면서 다양한 생태계가 보존되는 등 생태계의 보고로 재탄생했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접점이자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DMZ, 남북한이 함께 평화공원으로 가꿔야”
▲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대표는 기조연설을 통해 이제는 DMZ(demilitarized zone)가 ‘데탕트 메이킹 존(détente making zone)’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화기자
과거부터 DMZ는 간헐적으로 생태학술 및 자연보존, 문화재 관리 등을 위해 몇 차례 실태조사가 실시됐다. DMZ 평화 구상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이며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남북정상선언 등을 통해 DMZ 평화 관련 제안을 했지만 북한에 의해 거절됐다. 육지 DMZ 평화지대와 해양 서해평화지대를 모두 추진했지만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해서만 북한과의 합의를 도출했다. 이명박 정부도 DMZ의 평화적 이용을 국정과제로 채택했지만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현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5월 8일 ‘DMZ세계평화공원’ 구상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한·중 정상회담, 광복절 경축사, 신년사 등을 통해 ‘DMZ세계평화공원’ 조성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지난 2001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한이 함께 손을 잡고 DMZ를 평화공원으로 가꿔나가야 한다며 남아공의 접경 지역에 조성한 평화공원의 성공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평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퉁 교수도 2010년 한국을 방문해 분쟁국인 칠레와 페루 사이에 평화공원 조성으로 인해 전쟁이 종식됐다면서 DMZ를 중립적이고 비군사적이며 생태보존적 평화공원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DMZ는 전 세계의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됐다.
▲ 장영권 한국평화미래연구소 대표는 한반도 내 DMZ세계평화공원 조성이 남북한의 경색을 해소하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연화기자
또한 장 대표는 “먼저 평화공원의 개념에 대한 구체적 정의가 필요하다. 전 세계 많은 평화공원이 과거에 대한 기억과 성찰의 공원으로 조성됐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평화공원이 있다. 이들 평화공원은 원자폭탄의 잔혹성을 알리는 한편 핵무기 없는 세계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이나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관련 시설에도 인간의 폭력성을 세계에 경고하는 일종의 평화공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파키스탄처럼 충돌과 대립의 현장인 시아첸 협곡에 국제기구가 개입해 평화공원을 추진하는 등 양국 사이의 접경지역의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반도 내 DMZ세계평화공원 조성이 남북한의 경색을 해소하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생명의 공생인 ‘생태평화’ ▶분배의 공유인 ‘경제평화’ ▶가치의 공존인 ‘문화평화’ ▶미래의 공영인 ‘정군평화’ 등의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 단계적이고 복합적으로 접근해야한다. 이와 함께 보다 정교한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MZ, 비무장지대 아닌 ‘데탕트 존’으로 만들어야”
▲ 발표 중인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 ⓒ정연화기자
한편 박진 아시아미래연구원 대표는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이제는 DMZ(demilitarized zone)가 ‘데탕트 메이킹 존(détente making zone)’이 돼야 한다. 더 이상 대립과 갈등이 아닌 환경 분야의 협력을 통해 긴장 완화와 신뢰를 보여주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DMZ세계평화공원 추진을 위해서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국, 중국의 적극적인 지지와 더불어 UN에서도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DMZ와 군사안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문성묵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DMZ는 북한 재도발의 억제 장치, 정전협정체제의 보루 역할, 유엔군사령관의 관할권이 존중되는 공간,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의 시험대로서 관찰 대상이 된다. DMZ의 일부 구역을 개방하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등 그동안 남북간 교류 협력의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북한의 반응과 속셈이 어떻든 DMZ는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비로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만큼 군사안보적 부분을 꼭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이 호응해 DMZ세계평화공원이 추진된다면 DMZ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할과 기능이 존중되는 가운데 성사돼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DMZ세계평화공원과 관련된 북한의 입장에 대해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은 DMZ세계평화공원의 경제적 활용도에 특히 관심이 있다. 영농 발전 등에서 관심을 크게 갖는 만큼 만약 경제적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면 DMZ세계평화공원 조성을 더욱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도 공원 조성에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DMZ는 분단이 시작된 곳이다. 통일도 거기서 시작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식환경의 훼손, 먹이부족 등의 이유로 동·식물들이 사라져가거나 변화되고 있어 생태계의 보고라는 말이 무색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최근 나오고 있다.
김승호 DMZ생태연구소장은 “현재 쿠웨이트-이라크, 세르비아-코소보 등 전 세계적으로 12군데의 DMZ가 존재한다. 설정 목적과 달리 무장된 경우가 있는데 한반도의 DMZ는 가장 중무장된 사례”라며 “특히 한반도 서부 DMZ의 생태적 환경을 살펴보면 동고서저의 서해안과 연결된 지형이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을 비롯해 서해와 합수되는 곳으로 북방계와 남방계가 교차되는 점이지대(transitional zone)다. 따라서 다양한 습지가 발달할 수 있는 만큼 DMZ생태계의 올바른 개발을 위해서는 남북접경지를 생태보존특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DMZ학회가 공동 주최, 환경일보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제80회 한림원탁토론회 및 제3회 한국DMZ학회 학술회의가 함께 진행됐다. ⓒ정연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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