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강점기 대표적 시인 이상은 천재라는 평가와 함께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과 기법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요.
특히, 명확한 해석이 어려운 '오감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연구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연구팀이 물리학을 접목해 '오감도는 세상을 진단하는 도구'라는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했습니다.
임늘솔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뒤집힌 상태로 연속적으로 나열돼있습니다.
천재 시인 이상이 1934년에 발표한 오감도 시제 4호 작품입니다.
이상 자신이 의사가 돼 환자를 진단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외 해석은 분분합니다.
그런데 국내 연구팀이 물리학을 접목해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했습니다.
연구팀은 먼저, 숫자판을 원기둥으로 만들어 좌우가 뒤바뀐 숫자를 정상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어 원기둥을 도넛 형태로 말자 쉽게 규칙성을 찾기 힘들었던 수열이 자연스러운 형태로 읽혔습니다.
또, 수열을 연결하는 수많은 폐곡선들이 도넛 표면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즉, 이상은 경계면의 정보만으로 내부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전자기학의 핵심 원리인 '스토크스 정리'를 이용해 시를 쓴 겁니다.
[임혁준 / 광주과학기술원 3학년(제2저자) : 이전까지의 해석에서는 오감도 시제 4호 숫자판을 단순한 숫자의 배열로써 해석을 해왔지만 이번 해석을 통해 숫자판을 단순한 숫자 배열이 아닌 독자를 감쌀 수 있는 진찰의 도구로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연구팀은 도넛 내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표면을 지나는 무수히 많은 선은 MRI처럼 내부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해석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회 내부를 투시하고 진단하는 게 시인의 책무라는 것이 이상의 메시지인 겁니다.
[이태균 /광주과학기술원 3학년(제1저자) : 이상이라는 시인이 특수상대성 이론과 같은 물리학 개념을 시에 적용하는 것을 즐겨 했거든요. 이상의 오감도를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싶어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상의 오감도가 발표된 지 올해로 90년.
이번 연구로 이상은 문학 작품으로도 담기 어려웠던 식민지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물리학을 접목해 오감도를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 평면에 쓰인 시를 입체적으로 해석해 이상의 작품 연구에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YTN 사이언스 임늘솔 입니다.
영상편집 : 황유민
YTN 임늘솔 (sonam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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