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사이언스

위로 가기

[사이언스 레드카펫] 독특하고 섬뜩한 일상의 공포, 영화 '잠'…"렘수면행동장애는 치매·파킨슨병 전조증상"

2023년 09월 08일 16시 50분
■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한 주의 마지막인 매주 금요일, 영화 속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레드카펫' 오늘도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기자]
'사이언스 레드카펫' 양훼영 입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영화 '잠'입니다.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데다가 개봉 전부터 입소문을 탄 덕분에 '오펜하이머'를 제치고 23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는데요. 키워드를 통해 영화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섬뜩한 잠꼬대'입니다. 영화 '잠'은 잠꼬대, 나아가 몽유병으로 이어지는 수면장애를 소재로 삼았는데요. 잠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섬뜩하고 날카로운 공포를 이끌어 내는, 정말 독특하고 매력 있는 영화입니다. 행복한 신혼 생활 중인 현수와 수진. 어느 날 잠든 현수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상한 말을 합니다.

[오빠?]
[누가 들어왔어]

이날 이후 현수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얼굴을 긁고 생고기도 마구 먹지만 아침이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결국, 수면클리닉을 찾은 두 사람

[렘수면 행동장애를 앓고 있다 라는 뜻이에요]
[고칠 수 있는 거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해보지만

[넌 이제 신경쓰지마]
[이러니까 진짜 꼼짝도 못 하겠다]

증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고

[쭉 지켜봤다고? 안자고?]

매일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에 두 사람은 점점 변해갑니다.

[이딴 식으로 사람 괴롭히지 말고]
[나도 정말 미칠 것 같아]
[잘자]

이 영화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편안해야 할 '집'과 '잠'에서 공포가 찾아오는데요. 영화 속 상황은 물론 긴장감이나 공포 상황을 실감 나게 만드는 건 바로 이선균, 정유미 두 배우입니다. 두 사람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첩첩산중' '옥희의 영화' '우리 선희'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 네 번째 호흡을 맞췄는데요. 사랑스러운 신혼부부에서 불안과 공포, 광기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연기 또한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키워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봉준호 키즈'입니다. 영화 잠을 찍은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부 출신으로, 이른바 봉준호 키즈인데요. 봉준호 감독의 극찬으로 영화 '잠'에 대한 기대 또한 더욱 커지는 게 사실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연출팀에서 일했던 유재선 감독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연출팀에 들어가기 전, 영화 '잠'의 시나리오를 보여드렸고, 이를 읽은 봉준호 감독은 "이걸로 데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선균 / 영화 '잠' 주연배우 :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어떤 묘한 장르 영화? 어느 한 카테고리 안에 묶기 힘든 그러한 되게 심플하고 독특함이 있었고요]

봉준호 감독의 촉 대로, 유재선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봉준호 감독은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요. 신인 감독다운 신선함에 신인 감독답지 않은 영리한 전개는 영화 잠이 가진 최대 장점인데요.

[정유미 / 영화 '잠' 주연배우 : 각자만의 장르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극장에 오셔서 그 점을 각자의 기분과 순간의 느낌으로 봐주시면 충분히 재밌지 않을까]

열린 결말을 가진 탓에 '노 스포일러' 운동까지 펼치고 있는데, 나만의 결말을 찾기 때문에 더 공포스러운 영화로 남게 됩니다.

[유재선 / 영화 '잠' 감독 : 제 영화 잠을 시작하고 만들고 촬영하다 보니 제가 배우분들과 소통하는 방식, 스태프분들과 이야기하는 방식, 촬영하는 방식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옥자에서 (봉준호) 감독님의 어깨너머로 관찰했던 부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감독님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도 계속 모사하고 따라 하려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만들기 관련해서는 감독님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지 않았나….]

[앵커]
'잠'이라는 이름처럼 몽롱한 분위기의 영화였는데요, 양훼영 기자와 함께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이어서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이 판정받은 질병이 '렘수면 행동장애'잖아요. 이 병이 뭔지부터 살펴봐야겠죠?

[기자]
렘수면을 먼저 살펴 보면 급속 안구 운동의 줄임말로, 깨어있는 것에 가까운 얕은 수면을 의미하는데요, 몸은 잠들었지만 뇌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상태로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이름 붙은 것입니다. 총 수면의 약 20~25% 정도가 렘수면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는데요, 흔히 우리가 꿈을 꾸는 시간이 바로 렘수면 상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신은 깼지만, 몸은 안 움직이는 상태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가위눌리는 경험도 렘수면 상태일 때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꿈속에서 아무리 전력질주를 해도 몸은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꿈속 행동을 그대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벌떡 일어난다거나 자면서 벽을 치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렇게 잠을 자면서 꿈속의 행동을 실제로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행동을 렘수면 행동장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앵커]
행동을 보면 잠꼬대나 몽유병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렘수면 행동장애는 다른 건가요?

[기자]
잠꼬대는 렘수면 상태에서 벌어지는 것은 동일합니다. 주로 어린아이들이나 젊은 층에서 관찰되고, 일반적인 대화를 하듯 조용히 말하는 경우가 많고, 일어난 후에 거의 기억을 못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렘수면 행동장애의 경우 평균적으로 목소리가 크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깨고 난 뒤 꿈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면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몽유병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몽유병은 렘수면이 아닌 서파수면, 비렘수면 중 느린 뇌파 수면 단계에서 진행되는데 그러니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단순 행동을 반복하거나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먹기 등 매우 정교한 행동을 하는 게 일반적. 그리고 몽유병도 잠꼬대와 마찬가지로 일어나면 밤 동안 있었던 일을 기억 못 합니다. 렘수면 행동 장애같은 경우에는 꿈속의 행동을 기억하는 게 차이가 있습니다.

[앵커]
환자 본인들도 크게 불편할 것 같고 함께 자는 사람도 무서울 것 같은데요, 렘수면 행동장애가 치매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면서요?

[기자]
렘수면 행동장애가 치매는 물론 파킨슨병의 전조증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렘수면 중에는 뇌 속 뇌간이라는 부위가 운동마비 조절 부위를 작동시켜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데, 렘수면 행동장애는 뇌간이 손상되거나 뇌간 부위에 흑색물질이 많이 생겨나거나 이상 반응이 생기거나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뇌간 손상 후에 주변 뇌 부분에 손상이 일어나는 것이 신경 퇴행성 질환의 전조 증상이 된 것이고요, 이렇게 됐을 경우에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의 경우 갑자기 렘수면 행동장애를 겪게 되면 파킨슨병이나 치매를 의심해볼 필요 있습니다.

실제로 분당서울대병원 수면센터에 방문한 렘수면장애환자들을 10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환자군의 9%가 렘수면행동장애를 진단받은 지
3년 만에 파킨슨병 또는 치매 판정을 받았고 해외에서는 렘수면 행동장애환자가 5년 뒤 45%, 10년 뒤 80%가 파킨슨병 또는 치매로 진전된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앵커]
잠버릇이 고약하다 정도가 아니라 질병과 연관이 있을 수 있으니 병원에 방문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럼 렘수면 행동장애 치료는 어떻게 하나?

[기자]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렘수면 행동장애는 완치가 어렵다고 합니다. 증상이 경미 할 때는 수면 환경을 바꿔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고 증상이 심해지면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침대보다는 바닥에서 자는 게 좋고, 다른 사람과 수면 공간을 분리하는 것도 필요하고 전문적인 내용은 병원을 찾아 꼭 진단을 받아보고 치료와 함께 전문가 상의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앵커]
오늘 렘수면 행동장애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사실 잠자는 사람은 혼자 증상을 알아차리기가 어렵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족 같은 주변인의 관찰이 더 필요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양훼영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거의모든것의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