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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자화상을 통해 보는 작가의 이야기

2023년 06월 02일 16시 55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그린 자화상은 작가 본인의 내면을 탐구하고 가치관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쓰이곤 하는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자화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자화상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와 표현기법까지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 나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예술가들의 자화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텐데. 예술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작품화하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인터뷰]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림이란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일이다." 인간이 거울을 통해서 비춰보는 것을 제외하고, 자기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게 바로 ‘자신의 얼굴’이죠. 자크 데리다의 말과 마찬가지로, 예술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 역시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일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자화상을 그려왔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화상을 통해 자의식을 확립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자화상으로 인해 무의식을 깨닫게 한다는 것, 세 번째는 힘든 시기에 흔들리는 내면을 자화상을 그리면서 이겨낸다는 건데요. 마지막으로는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의 진실 된 모습을 찾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많은 자화상 명작들이 작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려지기도 했는데요. 오늘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화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앵커]
자화상 하면 지난번에 소개해주신 프라다 칼로의 작품이 먼저 떠오르는데 다른 자화상들도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물론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굉장히 힘든 삶을 살면서도 예술혼을 끝까지 불태운 예술가죠. 특히 칼로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누워지낼 때, 칼로의 엄마가 침대 위에 달아준 전신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담기도 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대표적인 자화상 중에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1940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프리다 칼로가 목에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가시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요. 목 뒤로는 원숭이와 고양이가 모두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목걸이 끝에도 검은색의 새가 매달려있고요. 목을 자세히 보시면 뾰족한 가시 때문에 피가 흐르고 있거든요. 원숭이가 목걸이를 손으로 만지면서 당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불안한 분위기와 함께 프리다 칼로의 고통스러움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앵커]
말씀하신 것처럼 원숭이, 고양이 그리고 새가 등장하는데요. 이게 어떻게 해석이 될까요?

[인터뷰]
먼저 프리다 칼로가 멕시코 태생인데요. 프리다 칼로의 목에 걸린 목걸이 끝에 검은 새 모양의 펜던트가 달려있는데, 멕시코에서는 죽은 벌새가 행운을 상징합니다. 또, 고양이는 불운과 죽음을 의미하고요, 원숭이는 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복잡한 여성 편력 때문에 일생 동안 크게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작품 속에서는 원숭이가 리베라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또, 가시 목걸이가 마치 성경에서의 가시 면류관 같은 역할을 하면서 프리다 칼로 자신이 순교자처럼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칼로는 이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원인인 디에고 리베라 그리고 자신의 힘든 상황과 감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앵커]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자화상에서 프리다 칼로의 삶이 모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또 자신의 모습을 담는 다른 작가도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이번에는 자화상이 아닌 ‘자소상’을 다룬 작가를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자소상은 자신의 모습을 찰흙이나 석고 등으로 만든 조각을 뜻합니다.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권진규 작가입니다. 불멸의 조각가라고 불리 울만큼, 권진규 작가는 지금 세상에 없어도 그 작품들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고 할 정도로 미술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권진규 작가는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는데요. 질병으로 인한 늦은 중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합니다. 당시 프랑스 근대 조각의 거장이었던 앙투안 부르델에게 가르침을 받는데요. 이후 꾸준한 작업과 공모전 수상으로 인지도를 쌓습니다. 특히 테라코타 기법을 사용한 두상과 흉상 작업이 잘 알려져있습니다.

[앵커]
찰흙으로 자신의 얼굴을 빗는 건 자화상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요. 앞서 테라코타 기법을 사용했다고 하셨는데, 이게 어떤 기법일까요?

[인터뷰]
권진규는 특히 ‘영원성’에 주목했는데요. 테라코타 기법은 이런 권진규의 작품 의도를 표현하기에 딱 맞는 기법이었습니다. 테라코타는 ‘점토를 구운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선사시대 이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구운 토기류’가 바로 테라코타입니다. 굉장히 오래된 기법이죠. 권진규 작가는 주로 테라코타 기법으로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돌도 썩고 브론즈도 썩는데, 고대의 부장품이었던 테라코타는 신기하게도 잘 썩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테라코타는 1만 년 전의 것도 있죠.”

1960년대 한국 조각 계에 권진규 작가가 거의 처음으로 테라코타 분야를 선보였다고 알려졌습니다.

[앵커]
권진규 작가가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자소상을 많이 남겼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권진규 작가의 작품에는 특유의 형식과 특징이 있는데요. 대체적으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고, 당당하게 정면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긴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곡선도 돋보이는데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자소상에서도 이런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자신을 작품에 담는 이유 중에는 자의식의 확립도 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권진규 작가의 자소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가 인생 내내 인간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구해온 작가인데요. 그가 살아온 환경을 봤을 때에도, 이북 출신이지만 6.25 전쟁 시기에 일본에서 공부한 한국인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묻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권진규 작가의 자소상에 대한 그림이 나갔는데요. 이 중 대표적인 자소상은 어떤 게 있나요?

[인터뷰]
여러 자소상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사를 걸친 자소상'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권진규 작가의 특징인 얼굴을 똑바로 들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특유의 형식이 돋보이는데요. 한쪽 어깨에 걸쳐진 붉은색의 가사에서 작가가 자신을 마치 ‘승려’처럼 묘사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꼿꼿이 세운 고개와 차림새, 표정 등을 보면 세상을 초월한 듯한 존재처럼 보이는데요. 자신을 둘러싼 여러 힘든 상황들 속에서 속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앵커]
여러 힘든 상황들 속에서 속세를 벗어나고 싶다는 자유의지가 느껴진다라고 방금 말씀해주셨는데 이런 권진규 작가가 생을 안타깝게 마감했다면서요?

[인터뷰]
맞습니다. 권진규 작가는 51세의 나이로 자신의 작업실에 유언을 남긴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인생은 공, 파멸’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하죠. 화장해서 모든 흔적을 지워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하지만 권진규 작가의 부탁과는 달리 그의 수많은 업적과 명작들은 세상에 남아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살아생전에 영원을 그리던 작가 인만큼, 먼 미래에도 권진규 작가의 삶과 작품은 계속해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네, 오늘 '자화상' '자소상'에 대한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작가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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