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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넌 너무 예민해"…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

2023년 05월 30일 17시 15분
■ 김지은 / 상담심리사

[앵커]
기질적으로 예민한 성격은 주변 자극들을 잘 받아들여 상황판단이 빠르고 섬세함이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본인을 피곤하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에서는 예민한 사람에 대해서 내가 예민한 성격인지 체크 해보고 민감함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사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너무 예민하다’는 말은 평상시에 긍정적인 뉘앙스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자주 사용되는 것 같은데요. 사실 예민한 것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면서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까다롭다, 예민하다, 유별나다, 민감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이상한가? 고쳐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쉬운데요. 사실 일정 비율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기질적으로 민감하게 태어납니다.

심리학적으로 민감성이라는 특성에 처음으로 주목한 학자인 일레인 아론은 이런 사람들을 영어로 “Highly Sensitive Person”, 줄여서 HSP 라고 불렀는데요. 우리나라 말로는 매우 민감한 사람, 초민감 자, 초민감인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민감한 신경계를 타고나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5~20% 정도라고 합니다.

심지어 고등동물에게서도 이러한 민감성을 타고나는 비율이 인간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이 비율은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성별과도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보면, 민감성이라는 것이 우리가 고쳐야 할 문젯거리라기보다는 마치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달리기를 잘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태어나는 어떠한 특성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럼 내가 민감한 사람인지 아닌지 해당되는지 알 수 있는 예시가 있을까요?

[인터뷰]
내가 매우 민감한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일레인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책에 수록된 체크리스트에서 몇 가지를 가져와 봤습니다
이런 문항들이 있는데요.
- 나는 주위에 있는 미묘한 것들을 인식하는 것 같다.
- 통증에 매우 민감하다.
- 바쁘게 보낸 날은 침대나 어두운 방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 들어가 자극을 진정시켜야 한다.
- 밝은 빛, 강한 냄새, 거친 천, 또는 가까이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같은 것들에 의해 쉽게 피곤해진다.
- 풍요롭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갖고 있다.
- 사람들이 불편해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해지는지 알고 있다.
-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짜증이 난다.
- 폭력적인 영화, 드라마 장면을 애써 피한다.
-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긴장을 한다.
- 생활의 변화에 의해 동요된다.
- 섬세하고 미묘한 향기, 맛, 소리,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긴다.

이런 체크리스트가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같은 자극을 얼마나 크고 강렬하게 느끼는지, 또 그 자극에 의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촉발되는지 보면 내가 얼마나 민감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저도 보면서 공감되는 항목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이런 민감성을 가지고 있으면 쉽게 피로해지고 힘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민감성이 높은 것의 장점도 있을까요?

[인터뷰]
그럼요, 사실 매우 민감하게 타고나는 사람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피로해지고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자극이 아주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크거나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나는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지?”라고 자책하게 되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민감한 신경계는 타고나는 부분입니다. 내 의지로 자극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극이 그냥 나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겁니다.

아주 미세하고 미묘한 변화까지 감지하는 이런 특성은 본인을 피로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굉장한 이점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더 많이 흡수하고 좀 더 자세히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성찰을 잘 하고, 배운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도 배울 수 있으며, 조심성, 정확성, 속도, 그리고 작은 차이를 포착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섬세한 동작에 뛰어나기도 하고, 창조적이고 창의적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런 민감한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
아주 민감한 사람은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강점들을 갖고 있지만, 또한 이 강점들이 동시에 취약성이 되기도 합니다. 양날의 검인 셈입니다. 아주 섬세하게 자극을 변별할 수 있다는 말은, 동시에 그 자극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큰 소리나 강한 빛, 심한 냄새, 붐비는 장소 같은 자극들에 더 크게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상태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민감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는 “쟤는 작은 일에 왜 저렇게 과민반응이야?”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죠. 하지만 사실 그 사람들에게 작은 자극인 것이, 아주 민감한 사람에게는 작은 자극이 아닙니다.

따라서 내가 아주 민감한 사람에 해당한다면, 자극에 무뎌져야 한다고 본인을 채찍질할 것이 아니라 본인을 섬세하게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스스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점검해주며 물리적으로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포함이 되겠고요. 자주 긴장하는 편일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들을 연습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방송에서 말씀드렸던 경계 설정도 아주 중요합니다.

[앵커]
자신을 먼저 잘 알고 잘 돌봐줘야 장점도 발휘할 수 있다는 부분을 짚어주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아주 민감한 사람들은 자극을 줄이려면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을까요?

[인터뷰]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앞서 말씀드린 설명을 들으면 그렇게 생각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주 민감한 사람들이 반드시 자극을 피해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민감하게 타고난 많은 사람들이 자극을 조절하기 어려워서 많은 상황을 그냥 피해버립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복잡한 곳에 나가지 않고, 힘들고 거친 일을 하지 않는 등 여러 방식으로 이러한 회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회피 행동을 통해서 잠깐 안전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어도, 완전히 안전감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회피를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나의 행동반경이 좁아지면서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못해.” 하는 우울한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심화 되면 “저걸 하고 싶어도, 나는 너무 민감한 사람이어서 견디지 못할 거야.”라는 식으로 아주 제한된 삶을 살게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극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에 받는 자극의 양을 조절하고, 자극받은 신경계를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앵커]
그러면 자극의 양을 조절하더라도 정말 힘든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터뷰]
정말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이 정도는 견뎌야지.”라고 말했던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내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나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이 긴장하고 있거나 과도하게 각성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나면, 긴장을 이완하고 각성 수준을 낮추기 위한 여러 방법을 그 순간에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시 그 자리를 떠나 산책을 하고 돌아온다든지, 심호흡을 한다든지, 물이나 차를 마신다든지,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같은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살짝 바꾸는 것도 방법입니다. 조도를 약간 낮추거나, 소음을 차단하는 것처럼 물리적인 자극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더라도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무시해버리면, 당연히 대처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미 이전 방송에서 감정의 기능에 대한 설명들을 많이 들으셨을 텐데요. 감정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감정 자체를 무시하려고 해 버리면, 그 감정을 오히려 조절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그러니깐 내가 나를 알고 적극적으로 돌봐줘야 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나는 좀 민감하고 예민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본의아니게 상처를 받는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민감하게 타고나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5~20%입니다. 다시 말하면 80~85%는 크게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인데요. 당연히 자신보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만약 나는 아주 민감한 사람인데 나의 연인이나 배우자는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덜 민감한 쪽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하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민감한 쪽에서 맡아서 할 수 있겠지요. 또 더 민감한 쪽이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쉬는 시간이 필요할 때, 덜 민감한 쪽이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때는, 이 사람들이 나와는 경계 설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나의 경계를 잘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다 들어주거나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한계를 설정하여 압도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일주일에 며칠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약속을 잡아도 괜찮은지 미리 생각하고 약속을 하는 것, 그리고 일이 많을 때는 평소보다 더 휴식에 신경 쓰는 것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앵커]
오늘은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고요. 김지은 상담심리사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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