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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생명의 화가' 노은님의 생애·작품…추모전까지

2023년 05월 26일 17시 04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파독 간호사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지만, 대학교수를 넘어 세계적 화가로 길을 걸어온 노은님 작가. 마치 동화 속 그림 같은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했죠. 오늘 '사이언스 in Art' 에서는 노은님 작가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모전까지 이야기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프랑스의 중학교 교과서에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고요.

[인터뷰]
네, 프랑스 중학생들의 문학 교과서에 '해질 무렵의 동물'이라는 작품이 카프카의 소설과 함께 실렸는데요. 바로 우리나라의 노은님 작가 작품입니다. 1990년에 프랑스의 한 관계자가 이 작품을 보고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이를 계기로 실존문학계의 대표적인 작가죠,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과 함께 노은님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게 됩니다.

작품 '해질 무렵의 동물'은 1986년에 그려졌는데요, 화면 가득 검은 동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국에서 꿋꿋이 버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노은님 작가의 모습 같기도 한데요. 이 시기의 노은님 작가 작품을 보면 강렬하고 굉장히 묵직한 느낌이 있는데, 당시 힘들었던 내면의 상황을 작업으로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점차 밝고 자유로운 화풍으로 변하게 됩니다.

[앵커]
프란츠 카프카, 굉장히 유명한 작가인데 그런 작가와 함께 소개되었다니 노은님 작가가 한층 더 궁금해집니다. 어떤 작가일까요?

[인터뷰]
네, 노은님 작가는 국내외 미술계와 더불어 많은 팬에게 사랑받는 작가죠. 하지만 지난해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죠. 암 투병 끝에 독일에서의 타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많은 분들을 아쉽게 했습니다.

해외 미술계에서 동양의 명상과 서양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는 찬사를 얻은 노은님 작가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는데요. 일찍부터 작가의 길을 걸은 건 아닙니다. 간호보조교육을 받은 후 1970년 독일의 함부르크로 떠나서 파독 간호사로 일하게 되는데요. 타지에서의 외로운 생활 속에서 ‘그림’이라는 꽃을 피워내게 됩니다.

이후 간호장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소규모 전시를 열게 되면서, 조금씩 작가의 길로 방향을 틀게 되고요.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하면서 꾸준히 정진하다가 1990년부터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합니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후에도 독일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국내외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앵커]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로 일하다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하게 된건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노은님 작가는 당시 이국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잠들고 일어나기를 반복해도 변한 게 없는 날이 계속되던 시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퇴근 후엔 집에서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은님 작가가 일하는 곳의 간호장이 작가의 집에 들렀다가, 작품을 보고 재능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병원에서의 소규모 전시를 통해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의 교수가 노은님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극찬을 하는데요. 한스 티만이라는 교수였는데 “화가로 30년, 교수로 30년 살면서 이런 재능은 처음 본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해보는 걸 추천하죠. 그렇게 노은님 작가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미대생이 됩니다.

힘들었던 시기에 작가에게 한 줄기 빛이었던 그림에 늦게나마 온전히 몰두하기 시작한 겁니다. 여담이지만 노은님 작가는 살아생전에 국내에서만 따라붙던 '파독 간호사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반기지는 않았다고 하는데요. ‘예술가에게 출신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앵커]
어려웠던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의 노은님 작가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백남준 화백과도 인연이 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백남준 화백은 노은님 작가에게 있어 중요한 조력자이기도 한데요. 백남준 화백이 함부르크 대학의 초대 교수로 재직 중일 때, 노은님 화백이 국내에서 첫 전시를 열도록 중간에서 주선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서 1982년에 국내 첫 개인전을 열게 되고요, 또 1985년에 독일의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백남준 화백이 자신을 공항까지 바래다주는 노은님 작가에게 ‘천천히 운전해라, 노은님씨랑 나랑 이렇게 죽으면 한국 미술사에 큰 손해다’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알려졌는데요. 백남준 화백이 평소에도 노은님 작가를 한국의 중요한 인재라고 생각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제 작품 얘기를 해볼 텐데 노은님 작가는 주로 자연물과 생명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고요?

[인터뷰]
노은님 작가의 작품들을 보시면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이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굉장히 순수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생명력을 담고 있는데요. 주로 새와 물고기, 꽃, 동물 등을 화폭에 담습니다.

노은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나는 그림 속에서 세상의 많은 것을 깨달았고, 큰 자연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 노은님 작가가 그림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타지에서의 지독한 외로움 때문이었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자리 잡으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향해 나아가려는 자유 의지와 한편으로는 악착같음이 존재했을 겁니다. 그 힘찬 한 발 한 발이 곧 작품 속의 역동적인 생명력과 에너지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앵커]
그림들을 처음 보지만 어쩐지 반가운 느낌이 드는 것 같은데요. 노은님 작가의 대표작도 소개해 주시죠.

[인터뷰]
네, 지금 제가 소개하는 작품은 노은님 작가의 '암초상어'라는 작품으로, 1990년 작입니다. 작가가 주로 그렸던 소재 중 하나인 물고기가 주제인 작품인데요. 화면 가득 청량한 푸른 빛의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검은 물고기가 있습니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밝은 작품인데요. 노은님 작가는 주로 검은색의 굵은 선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작품 또한 특유의 일필휘지 같은 자유로운 붓질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노은님 작가와 물고기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작가가 수족관서 눈이 먼 물고기를 보게 되는데요. 그 순간 이전에 그렸던 자신의 그림 속 생명체들이 눈이 없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날 이후 노은님 작가는 눈을 그림으로써 생명체에게 숨을 불어넣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그려내는 자연물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연구했고, 그 결과물로서 작가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투명한 생명력 느껴지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겁니다.

[앵커]
조금 전 물고기 그림을 보면 물고기의 자유로움을 나타낸 게 아니 였을까 이런 느낌이 들곤 하는데요, 지금 노은님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고요?

[인터뷰]
현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노은님 작가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은님 작가의 50여 년간의 작품 세계를 회고하는 전시인데요. 노은님 작가가 4번이나 방문했던 아프리카 여행에서의 영감을 작품으로 표현한 8.5 미터의 대작을 포함해 35점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독일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느낀 다양한 경험과 감정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전시니까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방문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네, 오늘 작품을 함께 나누면서 맑고 선한 긍정의 에너지 느낄 수 있었는데요. 아마, 노은님 작가가 바라던 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네, 오늘 작품을 함께 나누면서 맑고 선한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졌는데요, 노은님 작가가 바라던 바가 아니 였나 싶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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