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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쉿!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우리가 비밀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

2023년 05월 16일 16시 21분
■ 임지숙 / 상담심리학자

[앵커]
우리는 친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곤 하는데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 에서는 우리가 비밀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비밀을 자꾸만 공유하고 싶은 심리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임지숙 교수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일상에서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거다”, 혹은 ‘너만 알고 있어!’라고 하면서 비밀을 공유하는 데 하지만 결국은 다 새잖아요. 비밀을 지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요. 이러한 심리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인터뷰]
벤자민 프랭클린은 “두 사람이 죽으면 세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텐데요. 사실 비밀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인지적, 정서적인 이유 들이 있습니다. 우선 에고 부스트(ego boost) 즉, 자아가 고양되는 경험 때문에 비밀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데요.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스릴과 흥분은 중독성이 있어서 비밀을 공개할 때 상대방이 놀라움을 표현하는 순간에 우리는 스릴과 흥분을 만끽하게 됩니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새로운 이야기의 전달자일 때 그것은 자존심을 매우 고양 시키는 일이 되어서 사기가 올라가고 나 자신이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에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유혹적입니다.

또한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요. 제가 ‘지금부터 절대 머릿속으로 북극곰을 떠올리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면 어떠세요? 말을 들으면서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 하얀 북극곰이 떠오르실 겁니다. 즉 우리 인간은 공유하지 말하는 이야기를 강조하여 들으면 더욱 공유하고 싶은 강박적이고 불안한 충동이 자극되는 존재예요. 비밀을 말하지 말아야지 생각할수록 비밀에 몰입하게 되고 더욱 입 밖으로 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되기 쉽습니다.

[앵커]
지금도 북극곰만 떠올리는 것 같은데요. 역설적이게도 결국은 비밀을 강조할수록 사실은 우리가 지키기가 어려운 거네요?

[인터뷰]
맞습니다. 또한 우리 뇌는 많은 일들을 저장하고 기억도 해야 하고, 삶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늘 바쁘거든요. 그런데 비밀을 알고 있지 않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비밀을 누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매번 의식적인 에너지를 쏟아야 해요.

즉, 의식의 흐름대로 물 흐르듯이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비밀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혀서 에너지를 쏟아서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뇌의 인지처리 과정에 부담을 주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인지적 에너지를 계속 쓰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도 해요.

제가 전공한 심리상담은 내담자의 이야기에 대한 비밀보장이 첫 번째 원칙이기 때문에 늘 여기에 에너지를 많이 쓰고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런 의식적 노력을 놓치지 않아야만 비밀을 잘 유지할 수 있거든요.

[앵커]
그런데 의지력이나 신뢰만으로 비밀이 지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비밀을 사람들이 지키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터뷰]
비밀을 갖는 것은 스스로에게 수치심, 죄책감, 걱정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게 할 수 있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립되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진정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할 수도 있고요.

5,000명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콜롬비아 대학교 Slepain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어느 한 시점을 잡아서 물었을 때 약 97%의 사람들이 어떤 순간이든 적어도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평균적으로는 13개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밀의 내용은 주로 관계문제나 부정행위, 타인의 신뢰를 저버린 것 등과 관련되는 것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비밀에 대해 계속 반추하면 well-being의 수준이 낮아지고 신체적 건강까지도 악화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유익합니다. 단순히 카타르시스와 안도감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필요한 정서적 지원이나 유용한 도움이 되는 조언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비밀에 대해 반추하는 일이 줄어들고 well-being 향상될 수 있거든요.

[앵커]
들어보면 누군가와 비밀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점점 비밀을 유지하는 건 어려워지는 것 같은데, 이런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터뷰]
누군가와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그만큼 비밀을 나누는 것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끼고 또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신뢰의 증거라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서로가 공유하는 비밀이 존재할 때, 더 공고하고 깊이 있는 관계도 가능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비밀은 보통 ‘best friend’와 나누게 되잖아요. 그래서 비밀을 만들지 않는 쪽보다는 누구와 비밀을 나눌 수 있을지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쪽에 방점을 두게 됩니다.

사실 SNS가 발달하기 전에는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Stranger on a train phenomenon)’도 비밀을 나누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되기도 했습니다. 낯선 장소에서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나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고 또 다시 만날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비밀을 나눌 수 있는 거죠. 하지만 고도로 네트워크가 발달한 지금은 이러한 이방인 현상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앵커]
비밀누설을 참는 것이 어려운 것이 사람의 심리라고 봤을 때 누군가와 비밀을 공유해야 할 것 같은데 누구와 비밀을 공유해도 좋을지의 기준도 있을까요?

[인터뷰]
조금 더 복잡한 기준을 말씀드리기 전에 남자 혹은 여자 중 누가 더 비밀을 잘 유지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앵커]
남자가 더 잘 지킬 것 같아요.

[인터뷰]
맞습니다. 그런 사회적 편견이 있는데요, 2009년 영국에서 18세에서 65세 사이의 3,000명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47시간 이상 비밀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83%의 여성이 자신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변했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했죠.

그러나 2014년 영국에서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여성이 비밀을 더 쉽게 털어놓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남성들이 평균 2시간 47분, 여성들이 평균 3시간 반 정도 비밀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그 차이는 40 여분에 불과했지만, 편견을 뒤집는 결과였습니다.

이 연구에서 역시 놀랍게도 92%의 남성들이 스스로를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답했고요. 즉, 우리는 남녀를 떠나 스스로는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대부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존재하는 것을 기본적으로는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앵커]
여자가 비밀을 더 잘 지킨다고 나왔지만 3시간이란 점이 놀라운데요. 비밀을 꼭 말한다면 어떤 상대가 좀 안전할까요?

[인터뷰]
오늘 이야기 드린 것들을 생각해보면, 사람이 비밀을 지키기 어려운 존재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선구안을 가진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2018년에 앞서 말씀드렸던 Slepian 교수가 퀸즐랜드 대학의 Kirby 교수와 함께한 연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비밀을 공개하는 사람들은 공감, 배려와 함께 단호함을 갖춘 사람들이었어요.

사람들은 공손함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예측 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규칙과 규범을 존중하고 공손한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규범준수를 하는 이들에게 나의 비밀은 부정적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을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열정적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진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단호함이 주요한 요인인 것은 신뢰와 관련이 있었는데요. 단호한 사람들은 장애물에 직면해도 실제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신뢰감을 준다고 합니다.

즉, 공감과 배려 뿐 아니라 단호함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주변 분들과 비밀을 공유하시는 것이 좀 더 믿을 만한 선택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앵커]
과연 많은 공감과 배려, 그리고 단호함을 갖춘 사람이였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임지숙 상담 심리사와 함께했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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