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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눈을 뗄 수 없는 '복수극'…열광하는 이유는?

2023년 02월 28일 17시 50분
■ 조연주 / 미디어심리학자

[앵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가해자들을 복수로 응징하는 이야기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오늘 '한 길 사람 속은?' 에서는 사람들이 '복수'에 열광하는 이유와 또 복수극의 순기능, 그리고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복수극 참 짜릿하죠. 그런데 유쾌하거나 희망적인 이야기보다는 조금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들이 많아서 보고 나면 찝찝하기도 한데요. 사람들이 이런 복수극을 보게 되는 심리는 뭘까요?

[인터뷰]
인간의 뇌는 강렬하고 새로운 자극을 원합니다.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들을 보면 이전에도 등장했던 소재였지만 그것을 우리의 현재 상황에 맞게 풀어내서 새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어요. K-드라마 장르물의 대표적인 특징은 '인간'과 '사회적 메시지'입니다. 한국 드라마는 냉담하고 추악한 캐릭터조차 인간화해서 시청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장르물의 형태를 빌려, 직설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죠. 최근 인기를 얻은 K-드라마들은 단순히 사회에 대한 비판을 넘어 공통적인 지향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추악한 진실 속에서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점인데요. 드라마는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신해서 말해주는 창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앵커]
K-드라마가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서 말해주는 역할을 하신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무래도 최근에 화제였던 드라마 '더 글로리'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인터뷰]
네.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들은 사건에 대해 아무리 소리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실화에 기반해서 만든 드라마가 그 역할을 대신 해주는 데요. 곧 시즌2 공개를 앞두고 '더 글로리'가 연일 화제입니다. 끔찍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오랜 시간이 흘러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죠. 드라마에 등장한 장면이 17년 전 실제 사건이라고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일이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 TV에 출연해서 자신이 당한 폭력에 대해 고백하며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요. 이렇게 평생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 하지 못한 복수를 드라마에서 대신해주는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앵커]
'대리 만족, 카타르시스 때문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복수심은 인간과 동물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욕망이자 기본 감정입니다. 침팬지도 자신에게 나쁘게 대한 동물에게 폭력으로 응징하며 복수를 할 줄 아는데요. 인간도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이 발달했기 때문에 사적 복수를 줄이고 국가와 제도에 처벌 권한을 넘겼다는 점이 다릅니다.

인간이 복수심을 느끼는 것은 결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수심이 없었다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사람과 반드시 복수하는 사람 중에서 복수하는 사람이 생존에는 훨씬 유리합니다.

그런 사람은 복수하겠다는 위협만으로도 악인들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복수심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자기 권리를 방어하며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 해왔습니다. 복수심은 악인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도덕적 지표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해주기도 합니다.

[앵커]
복수가 원초적인 욕망이긴 하지만 그걸 실행하기가 어렵고, 또 실행한다고 해도 많은 걸 오히려 잃을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도 복수를 하려는 심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복수가 잃은 것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복수를 통해 부수적 상실감, 자부심이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수의 끝에는 '그 어떤 영광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드라마 대사처럼 사적인 복수는 성공한다 해도 아무 이득이 없습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명예뿐이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복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 감행하는 것이죠.

또한, 국가나 법의 제도가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정의 실현을 위해 복수를 선택하기도 하는데요. 정의로운 사회는 국가가 개인의 복수를 공정하게 대신해줍니다. 그러나 어떤 정부도 완전하게 공정할 수는 없고, 내가 잃은 것을 완벽하게 복원시켜주지도 못합니다.

복수극이 사람들의 선호를 받는 이유가 쾌감 때문인데요. 인간은 복수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쾌감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뀝니다. 복수가 끝난 뒤 당사자에게 남는 것은 죄책감과 허무감뿐입니다. 이처럼 복수의 쾌감은 순간적이고, 복수 드라마 역시 상당수가 비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앵커]
복수가 쾌감은 있을지라도 결국은 잃는 게 더 많다는 말씀인데요. 그런데 복수극은 세계 어디에서나 많이 쓰이는 주제잖아요. 다른 나라의 복수극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복수극이 갖는 특징은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미국 매체에서는 'K-복수극(K-Drama Revenge)'이라고 소개하면서 한 장르로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영향력이 더욱 크게 부각된 것은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콘텐츠와는 차별화된 점 덕분입니다. 해외 작품들도 사회 문제를 다룬 것은 많았지만 인종 차별과 마약 범죄처럼 거대 담론이나 문제와 연결된 것이 많았어요. 학교나 직장, 군대처럼 매일 봐야 하는 사람들, 매일 함께 활동해야 하는 조직 안의 이야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K-드라마는 그 틈을 파고들어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을 다뤘다는 점이 차별점입니다. 또, 복수극이지만 복수라는 목표와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것도 매력으로 꼽힙니다. 서사와 분위기, 캐릭터가 흥미롭고 공포에서 멜로, 미스터리까지 스토리의 방향이 자유롭게 틀어지는 매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앵커]
이런 복수 드라마들에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드라마 한 작품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회 구성원 개인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죠. 복수 드라마의 긍정적인 기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유 없이 당한 억울한 일을 해결해주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부재했다는 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줍니다.

둘째, 드라마 속 사건의 가해자가 드라마를 보며 언젠가 자신의 이름이 불릴지 긴장하고 과거를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잠재적 가해자들이 사회적인 관심으로 인해 하려던 공격을 멈추면 다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기능으로 법과 제도가 모든 것을 해내지 못할 때 문화의 힘을 빌려 K-콘텐츠가 조금씩 이뤄 나간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앵커]
복수심이란 무언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왜 복수극을 보게 되는지 여러 심리를 알려주셨는데, 하지만 많은 사람이 보는 콘텐츠인 만큼 우려되는 점도 분명히 있겠죠?

[인터뷰]
그럼요. 더욱 커지는 사회적 파급력을 생각하면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학교 폭력부터 가정 폭력, 군대 내 폭력, 직장 내 괴롭힘까지 사회 곳곳에 만연한 폭력 문제가 소재로 자주 활용되면서 오히려 피해자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더욱 비열하게 공격할 수 있는데요. 선정성과 폭력성의 표현에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아예 낼 수 없거나 내더라도 곧 묵살되는 힘없는 약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드라마처럼 실제로 복수를 계획하는 것도 어렵고요.

또 수많은 패러디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들의 상처가 깊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건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나의 아픔과 상처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에 불과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웃음을 주는 방법이 누군가의 아픔을 건드려야만 가능한 건 아니니까요. 최대한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적정선을 지켜야겠습니다.

[앵커]
사실 복수 드라마가 마냥 판타지가 되는 게 제일 좋겠죠. 복수극의 파급력으로 사회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아픔을 건드릴 수 있으니 신중한 표현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한 길 사람 속은'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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