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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취재파일] 인간의 활동은 지구 지층까지 바꿨다…인류세 도입 과정은?

2023년 01월 16일 17시 03분
■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다양한 분야의 과학 이슈를 과학 기자의 시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이언스 취재 파일' 시간입니다.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기자]
최근 일어나는 이상 기후를 겪다 보면, 인간이 지구를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 느낄 수 있는데요. 인간의 활동은 기후뿐 아니라 공룡 화석처럼 지층에도 새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지금을, 인간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친 시대, 인류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와 관련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인류세, 이름도 생소하게 느껴지는데요. 우선 인류세가 무엇인지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아요. 인류세가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기자]
인류세를 정의하기 이전에 우선 학창시절 배웠던 지질시대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짚어봐야 하는데요. 앵커분들은 지금이 혹시 어떤 시대인지 아시나요?

[앵커]
글쎄요, 쥬라기 정도만 기억이 나는데 ..

[기자]
그렇죠,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은 저도 인제 이번 기사를 취재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배운 건데 지질학적 시대 구분은 크게 대, 기, 세 순서로 이뤄집니다. 지질 시대는 화산 폭발 같은 지질학적 변동이나 생물학적 변화 등에 의해 세분화 되는데요. 예를 들어 중생대와 신생대를 구분하는 건 공룡 멸종이죠. 기나 세를 구분하는 건 퇴적암에 새겨진 화석 이름으로 정하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신생대 4기 홀로세'로, 마지막 빙하기 이후 현재까지 만 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몇백 년 사이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데요. 인간의 활동이 마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 것처럼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 흔적이 지층에도 남기 시작한 겁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인간에 의한 새로운 지질 시대, 인류세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1980년대 미국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류세라는 단어가 유명해진 건 2000년 입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이 인류세 명명을 제안하면서부터인데요. 크뤼천은 지구시스템 변화를 연구하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나 토양 속 질소 함량 등이 홀로세 관측 범위를 벗어난 것을 확인했는데요. 이후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해 "우리는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말해 유행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후 인류세의 강력한 증거로 꼽히는 기후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상징적인 단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앵커]
그럼 이제 앞으로 홀로세를 지나서 인류세로 바뀌는 건가요?

[기자]
아직 인류세로 바뀐 건 아닙니다. 지질시대를 정하는 절차는 굉장히 복잡하고 엄격한데요. 전 세계 지질학자들이 활동하는 국제지질과학연맹이라 단체가 있는데요. 여기에 국제층서위원회라고 지질시대 명명 권한을 가진 그룹이 있습니다. 국제층서위원회는 2009년, 34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인류세워킹그룹을 구성해 인류세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는데요. 과학자들은 인류세의 개념을 정의하고, 기준을 만들어야 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정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하나의 의견으로 모이질 않았습니다.그래서 인류세워킹그룹이 꾸준히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지난 2019년 투표를 통해 인류세 시작점만 1950년으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앵커]
사실 인류가 아주 예전부터 있었는데 왜 하필 인류세 시작 시점이 왜 1950년인가요?

[기자]
지구환경의 변화가 지각에 새겨질 정도, 그러니까 흔적을 정확히 남겨야 하나의 지질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거든요. 이전까지의 인간 활동은 46억 년 지구 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녔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몇백 년 사이에 지구 환경은 급변했잖아요. 그 중에서도 1950년이 결정적인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의견입니다.

1950년에는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25억 명을 넘어섰고, 이에 따라 산업화, 농약 사용 증가 등 인간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핵폭탄 실험이 시작되면서 이전에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방사성 동위원소가 광범위하게 퍼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한 1950년을 인류세 시작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깐 인류세의 시작점이 1950년으로 정해진건데 지층에서 인류세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물질에는 뭐가 있을까요?

[기자]
인류세 시작점을 1950년으로 정한 것과 달리 아직 인류세 대표물질은 하나로 합의된 상태는 아닌데요. 현재 가장 유력한 물질은 방사성 동위원소입니다. 플루토늄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지구 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요. 화석연료가 탈 때 생기는 탄소 동위원소인 탄소14, 비료의 질소 동위원소 등이 인류세를 대표하는 물질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도 대표물질로 논의되고 있는데요. 순수한 알루미늄은 자연에 극히 소량만 존재하지만, 우리는 지난 100년 넘게 엄청난 양의 알루미늄 금속을 생산해 각종 주방 도구부터 자동차, 항공기까지 많은 제품을 만들고 있죠. 플라스틱 또한 마찬가지죠.

플라스틱은 발명된 지 반세기 만에 지구는 물론 인간까지 중독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썩지 않는 성질 때문에 지구 지층 곳곳에서 플라스틱이 발견되는 것은 물론 미세플라스틱은 바다와 빙하, 우리 몸에서도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 쓰레기로 많이 버려지는 물질들이 인류세 대표물질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류세의 또 다른 대표물질로 닭뼈가 될 것이라는 재밌는 의견도 있습니다.

[앵커]
닭뼈는 상상하지도 못한 물질인데요. 거론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기자]
공룡 뼈가 백악기 대표 화석이 된 것처럼 인류세 대표 화석에 닭뼈가 될 거라는 건데요. 2018년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공동연구팀은 학술지에 식용 닭이 인류세의 대표 물질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치킨 싫어하시는 분 별로 없을 정도로 닭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요, 매년 650억 마리의 닭이 식용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인간이 먹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해 과거의 닭과 현대의 닭 뼈가 크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지구 상 많은 쓰레기 매립지와 거리에서 닭 뼈가 화석화되고 있다면서 먼 훗날 인류세 지층에서는 닭 뼈가 많이 발견될 거라고 밝혔습니다.

[앵커]
저는 뭔가 왠지 이게 가장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닭이 살았던 시기는 이전에는 없었잖아요. 그리고 인류세를 정의하려면 시작점과 대표물질 말고도 기준지역도 있어야 한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인류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준지층 한 곳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골든 스파이크, 황금못이라고 부르는데요. 지구 환경의 변화, 기준 물질 등 해당 시대를 잘 설명하는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인류세워킹그룹은 2019년 인류세 표준지층 후보지 12곳을 공개했었는데, 조사를 통해 최종 후보 9곳을 선별했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크로포드 호수의 진흙층을 비롯해 일본 규슈섬 벳푸만의 해양 퇴적물, 호주 플린더스 산호해의 산호, 발트해 고틀란드 분지의 해양 퇴적물, 남극 팔머 빙핵 얼음,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빌 호수의 퇴적층, 중국 지린성 쓰하이룽완 호수의 진흙, 폴란드 수데테스산맥 늪지의 토탄, 마지막으로 멕시코만 웨스트 플라워가든 뱅크의 산호 등입니다.

[앵커]
지금 사진으로도 나갔는데 현재 인류세 후보지를 두고 내부 투표가 진행 중이라고요?

[기자]
네. 인류세워킹그룹은 현재 내부 투표를 통해 조금 전 보여드린 9곳의 후보지 중 표준지층을 정할 계획입니다. 지역별로 인류세를 대표할 물질이 지층에 얼마나 잘 드러났는지, 후대에도 인류세 시작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지층을 찾고 있는 건데요. 인류세워킹그룹에서는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인류세 시작점과 표준지, 대표물질 등이 담긴 권고안을 작성할 예정입니다.

작성된 권고안은 상위기구인 층서학소위원회와 국제층서학위원회, 국제지질과학연맹 순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단계별로 60%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특히, 최상위 단계인 국제지질과학연맹은 2024년에 부산에서 열릴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될 예정입니다. 최종 승인되면 인류세 시작을 정의하는 지구 표준층서구역으로 지정 하게 되고요. 홀로세와 인류세가 나뉘는 지점에 '황금못'이라는 표지를 막고 보존하게 됩니다.

[앵커]
왠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름까지 붙이니까 인류가 지구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실감 나는데요. 더 책임감도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이언스 취재파일', 양훼영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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