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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들의 연구실] 시각장애인에 빛을 주는 인공 망막…한국과학기술연구원

2023년 12월 13일 11시 42분
■ 임매순 / KIST 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앵커]
우리나라 대표 연구자들과 함께 다양한 연구분야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코너, '국대들의 연구실' 시간입니다. 최근 질병뿐만 아니라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황반 변성과 같은 망막 질환으로 시력을 잃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공 망막 기술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오늘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임매순 책임연구원 모시고 인공 망막 기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박사님, 인공 망막이라고 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시력을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정확히 어떤 기술인가요?

[인터뷰]
우선 인공 망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인공 심장, 인공 췌장같이 체외에서 인공적으로 장기를 배양하거나 공학적인 기술로 제작하여 기존의 장기를 떼어내고 새롭게 이식하는 것을 떠올리실 수 있는데요. 저희는 실명한 망막의 신경 세포를 자극할 수 있는 마이크로 전극 장치를 인공 망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흔히, 망막을 각막과 헷갈리시는데요, 라식이나 라섹과 같은 시력 교정술을 받으실 때 깎아내는 눈앞 쪽에 있는 투명한 조직은 각막이고요. 각막을 통과해서 안구 안으로 들어간 빛이 안구 뒤편에서 상을 맺는 복잡한 신경 조직이 망막입니다. 안과 의사 선생님들께서는 안구 안쪽에 발라져 있는 얇은 벽지 같은 조직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합니다.

[앵커]
그러니깐 설명을 들어보니깐 막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막을 자극하는 전극장치를 만드신다는 거잖아요, 이걸 '인공 망막'이라고 부르는 건데요, 어떤 원리인가요?

[인터뷰]
망막에서는 간상 세포와 원추 세포라고 하는 광수용체 세포들이 빛을 검출해서 전기화학적 신호로 변환합니다. 그리고 양극 세포와 신경절 세포들이 해당 시각 신경 신호를 추가적으로 처리해서 뇌로 시각 정보를 보내게 되는데요. 망막 색소 변성이나 노인성 황반 변성과 같은 망막 변성 질환에 걸리게 되면 빛을 검출하는 광수용체 세포들이 파괴되어 실명에 이르게 됩니다. 다행히도, 해당 질병들이 광수용체 이외의 세포들은 상대적으로 덜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도체 공정 기술로 제작한 마이크로 전극을 망막 표면에 이식하고, 망막에 살아남아 있는 세포들을 전기적으로 자극하게 되면 인공 시각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앵커]
이런 인공 망막 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터뷰]
여러분들께서도 상상하실 수 있듯이, 실명하시게 되면 독립적 생활이 매우 어렵고 개인의 삶이 질을 나쁘게 만드는 등 큰 손실을 초래합니다. 미국에서는 시각 장애에 의한 사회적 경제 부담이 매년 17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 200명 중에 한 명 꼴로 시각 장애를 갖고 있으며, 인구 고령화에 따라 노인성 황반 변성 등 현재 기술로는 치료 불가능한 망막 질환이 많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런데 인공 망막 기술도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기존 기술도 있을 것 같거든요, 현재까지 연구된 기술도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2010년대에 미국, 독일, 프랑스의 회사들이 각각 독자적인 인공 망막 장치를 개발해서 임상시험을 거쳐 상용화까지 성공한 바가 있습니다. 세 개 회사의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총 500명 이상의 시각 장애인분들에게 이식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보급되었던 미국 제품의 경우에는 2017년에 국내에서도 여섯 분의 환자에게 이식된 바가 있습니다.

마이크로 전극을 이용하는 인공 망막 장치의 경우, 하나의 전극에 전류를 흘려주게 되면 하얀 밝은 점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류의 크기, 자극 반복 횟수 등에 따라 해당 하얀 점의 크기 및 밝기 등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요. 그렇게 구현할 수 있는 밝은 점의 배열을 통해 인공 시각을 표현하고 있는데, 모니터의 화소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미국 제품의 경우에는 그 화소의 개수가 총 60개였고, 독일 제품의 경우에는 총 1,500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컴퓨터용 모니터나 텔레비전의 화소 수가 최근에는 백 만개를 가뿐히 넘어가는 것을 떠올리시면 어느 정도 품질의 인공 시각이 가능한지 상상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우리가 상상하는 선명한 상이 보이는 수준의 기술은 아니였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요, 이 기술을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어떤 한계가 있었나요?

[인터뷰]
우선, 인공 시각의 경우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시력까지 회복되느냐가 제일 중요할 텐데요. 지금까지 보고된 최고 회복 시력이 0.043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1.0을 정상 시력으로 보기 때문에, 정상 시력의 대략 4% 정도 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습니다. 그마저도 환자마다 성능 차이가 매우 심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시각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청각이나 촉각 등이 발달하시고, 익숙한 장소에서는 다양한 일들을 혼자서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인공 시각은 실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기 어려운 수준인 것 같습니다.

[앵커]
0.4도 아니고 0.43정도. 그렇다면 박사님께서 개발하시는 인공 망막 기술은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계신가요?

[인터뷰]
보다 성공적인 인공 망막 장치 개발을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 자극을 더 좁은 영역에 가둘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서 공간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해당 기술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소금물처럼 전도성이 높은 액체로 채워져 있는 안구 내에서 전류를 흘려주면 매우 빠른 속도로 멀리까지 퍼져 나가버리기 때문인데요.

최근 저희 연구실에서는 단국대 전자과 연구실과 공동 연구를 통해 새로운 3차원 구조의 전극을 이용하면 좁은 영역의 망막 신경 세포들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해외 우수 저널에 그 결과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 자체적으로도 화소 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고밀도 3차원 전극을 반도체 공정 기술을 이용해 제작하는 중입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마이크로 전극을 이식하는 외과적 수술이 필요 없고 전기 자극보다 높은 해상도와 세포 선택성을 갖는 광유전학 자극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런 인공 망막 기술이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려면 넘어야 할 산도 있을 것 같고 풀어야 할 과제도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걸까요?

[인터뷰]
앞에서 말씀드린 자극의 해상도를 높이는 기술 이외에도 인공적인 자극에 의해 생성되는 신경 신호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망막의 신경절 세포들은 각각의 고유한 신경 신호 패턴을 이용해서 뇌로 시각 정보를 보내는데요. 해당 신경 신호 패턴은 개별 세포들이 뇌에게 말하는 언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실명하기 이전의 망막에서 신경절 세포들이 몇십 년 동안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한국어로 뇌에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인공 시각을 위해 자극을 했더니 해당 세포들이 갑자기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뇌에 방송을 하게 되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단일 세포 수준에서 원래 고유의 언어, 즉 자연스러운 신경 신호를 정밀하게 복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실에서는 얼마나 자연스러운 신경 신호 형성이 가능한지 분석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해 여러 세포에서 신경 신호를 대량으로 기록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앵커]
뭔가 불이 탁 켜지듯이 잘 보일 줄 알았지만 설명을 들어보니깐 복잡한 과제가 남아있었네요, 그렇다면 이 기술을 언제쯤 실제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물론 저희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실제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임상 시험에 직접 적용되기 전까지는 사람과 비슷하게 망막에서 고해상도 중심부 시야를 담당하는 황반을 갖고 있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해당 기술의 안전성 및 시력 회복 유효성을 면밀하게 검증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앵커]
인공 망막 기술이 환자의 삶을 궁극적으로 나아지게 해주려면 앞으로 어떤 연구가 더 이루어져야 할까요?

[인터뷰]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수준의 인공 시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융복합 공동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다학제 공동 연구를 위해서 '인공 시각 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기초 신경 과학부터 마이크로 나노 소자 제작, 인지 심리학에서 안과 망막 전문의 의사 선생님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여러 연구자들을 초빙해서 매달 전문가 세미나를 진행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공 시각이라는 연구 주제가 매우 도전적인 주제이다 보니 긴 호흡의 연구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의 단편적인 연구만으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여러 문제점들을 의미 있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앵커]
우리가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가장 큰 경로가 시각인데요. 오늘 설명해주신 인공 망막이 시력을 잃은 분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키스트 뇌과학연구소 임매순 책임연구원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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