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한 주의 마지막인 매주 금요일, 영화 속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레드카펫' 오늘도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기자]
'사이언스 레드카펫' 양훼영 입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영화 '뉴 노멀'입니다. '기담' '곤지암'으로 K-호러를 전 세계에 알렸던 정범식 감독의 신작인데요. 키워드와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일상이 공포'입니다. 영화 '뉴 노멀'은 6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에피소드별로 연쇄살인과 인신매매, 스토커 등 매일 뉴스에서 쏟아지는 각종 범죄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를 현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데이팅 앱으로 만난 두 남녀
[나 오늘 90% 나왔어]
[너 완전 내 이상형이야]
[난 82% 나왔는데]
카페 한쪽에서 현수도 데이팅앱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늦었는데 처음 만나면서 늦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상대가 말도 없이 늦는 바람에 잠깐 자리를 비우는데
[나는 노란색 가방 맸음]
[야 지금 밖에 누가 칼 맞았대]
소란스러운 소리에 밖을 나가보니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피해자는 노란 가방을 매고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잇따라 발생한 연쇄 살인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는 동네, 그리고 늦은 밤 갑자기 울리는 현관 벨
[누구시죠?]
[경보기 점검이요]
[점검 있다는 말 못 들었는데요]
[아 짜증 나네 진짜]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지만, 점검원의 예의 없는 행동도 거슬리는 데다가 시선마저 어딘지 불쾌합니다.
[혼자 사세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점검이 신경 쓰이는 찰나
[왜 안 울려요?]
[글쎄요 그냥은 알 수 없고 벗겨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좀만 기다리세요]
[오줌 싸고 나와서 제대로 해 드릴께]
정범식 감독은 K-호러 장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인 발굴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감독이기도 한데요.
곤지암을 통해 당시 신인이었던 위하준, 박지현, 박성훈 등이 그 예죠.
이번 뉴노멀에서는 신예, 그리고 새 얼굴을 발굴했는데 특히, 배우 하다인은 신인답지 않은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진짜 중학생의 모습을 담고 싶었던 감독은 정동원을 캐스팅해 첫 연기 도전을 성공적으로 만들었고요. 최지우와 표지훈 역시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을 끌어내 영화의 신선함을 더했습니다.
그럼 정범식 감독이 제일 잘하는 공포는 이번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두 번째 키워드로 알아보겠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귀신 없는 공포영화'입니다. 정범식 감독의 데뷔작인 '기담'은 한때 귀신 이미지 하면 기담 속 엄마 귀신이 나올 만큼 한국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그었는데요. '뉴 노멀'에서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귀신 없는 공포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 '곤지암'으로 한국 공포영화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정범식 감독 당시 한국 영화에는 낯설었던 페이크 다큐 방식으로, 관객이 공포를 직접 체험하는 '공포 체험'에 집중했던 게 흥행 포인트였는데요. 이번에도 정범식 감독만의 '공포 체험'이 유지됩니다. 귀신은 나오지 않고, 소스라칠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은 없지만 그 이상의 긴장과 스릴이 유지되고, 가끔은 너무 현실적이라 불쾌함마저 드는 데요.
감독은 코로나로 인해 영화 제작이 중단됐을 때 뉴스를 보다가 영화 '뉴 노멀'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감독은 왜 세상이 이렇게 됐나에 집중하기보단 이렇게 된 세상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는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귀신이나 초자연적 현상보다 길거리 칼부림이 더 무서운 세상에 사는 지금 우리가 바로 '뉴 노멀'입니다.
[최민호 / 배우 : 서스펜스 영화여서 굉장히 많은 분이 많이 무서운 거 아니야? 라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겠지만 중간중간 굉장히 재미있고 위트 있는 부분들도 있고, 그리고 점점 어떤 스토리가 나오게 될까 이런 궁금증을 많이 자아내는 그런 영화이기 때문에… ]
[표지훈 / 배우 : 일단 귀신이 나오지 않고요. 그리고 저희가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소름끼치는 부분이랑 굉장히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들어가 있으니까 좀 더 되게 무겁지 않은 스릴러의 느낌이어서 대중분들이 좀 편하게 보실 수 있는, 재밌게 보실 수 있는 스릴러가 될 것 같다…]
[앵커]
귀신이나 괴물 없이 공포를 어떻게 연출할까 궁금해지는 영화인데요. 양훼영 기자와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좀 더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뉴 노멀'이라는 단어, 코로나19 이후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아요. 새 일상, 새 기준 이런 뜻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생활방역이 일상이 되면서 최근 뉴노멀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죠. 뉴노멀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한 표준을 말하는데, 2008년 세계 경제위기 때 처음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대폭 바뀐 시기, 그러니까 한 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변화, 1, 2차 세계대전, IT 버블, 2008년 경제위기, 코로나19 등처럼 이전 세상과는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평범함의 기준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국립국어원에서는 앵커 말씀대로 뉴노멀 대신 새 일상, 새 기준으로 순화한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앵커]
영화 '뉴 노멀' 속 새로운 평범함은 아무래도 일상 속 공포일 것 같은데요. 아까 잠깐 본 영상만 봐도 너무나 익숙한 사건이고, 그 익숙함에서 예측되는 두려움, 이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기자]
맞아요. 인간의 6가지 공통적인 감정 중 공포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타고난 감정입니다. 공포는 모두에게 똑같거나 거의 비슷한 자극으로 나타나는 감정이라는 거죠. 하지만 두려움은 이와 조금 다른 학습된 감정, 조건에 따른 복합적인 감정인데요. 이에 대해 알 수 있는 '어린 앨버트 실험'이 있습니다. 참고로 이 실험은 1920년도에 진행한 것으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행동심리학자 존 왓슨은 9개월 앨버트를 데리고 쥐에 대한 공포를 학습시켰습니다. 처음엔 흰 쥐를 안 무서워했지만, 흰쥐를 볼 때마다 등 뒤에서 망치로 철판을 내리쳐 아주 큰 소리를 내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를 7번 반복하자, 앨버트는 소리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흰쥐만 나타나도 울음을 터뜨렸고요. 이후 앨버트의 학습된 공포는 더 커져서 쥐뿐 아니라 토끼처럼 하얀 털이 난 동물을 보면 무서워했고, 더 나아가 털 난 짐승, 그리고 모피, 산타클로스의 수염 마스크 등도 무서워하는 걸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극의 일반화'를 통해 흰 색 털만 봤을 때 느끼는 두려움, 공포의 감정이 학습된 겁니다.
[앵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동 학대에 가까운 실험이라서 재현할 수는 없겠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떠오르는데요. 이 영화가 말하는 '공포가 일상이 된 새로운 세상'이라는 말도 좀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기자]
맞습니다. 두려움과 같은 학습된 공포는 위험 상황에 노출됐을 때 과거의 감정이 기억나면서 공포심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 영화를 굉장히 긴장하면서 봤는데요. 아무래도 비슷한 상황에서 벌어진 범죄들을 뉴스를 통해서 자주 접하다 보니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이런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를 봤고요. 그래서 귀신이 안 나와도 무섭다는 평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럼 이게 학습 된 후천적 공포는 뇌 속에 저장되는 거죠?
[기자]
네, 공포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 바로 대뇌 측두엽에 위치한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입니다. 편도체가 망가진 쥐는 고양이 앞에서 잡혀 먹일 때까지 약 올리는 행동을 하는데, 편도체가 망가지면 공포 감정을 느끼지 못해 소위 겁을 상실한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편도체가 망가져 두려움과 공포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거나 일상을 방해하는 수준까지 이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나 공포증인 포비아로 발전하게 됩니다.
[앵커]
공포증이 학습되는 거라면 반대로 이겨내는 방법도 있겠죠?
[기자]
행동 심리학적으로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용서인데, 사건의 담당자일 경우에 공포, 두려움의 상황에서 학습되는 것에 반대 방향으로 용서하면 이와 함께 만들어진 나쁜 기억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또, 운동하면 학습된 공포 기억이 덜 발현된다고 하고요. 마지막으로는 나쁜 기억을 억누르기보단 같은 상황을 좋은 기억으로 바꿔서 떠올리면 공포를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적인 치료법 이외에 공포 기억을 조절하는 세포를 찾아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 또한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요. 특히 얼마 전에는 기초과학연구원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이 기억 저장 세포와 주변 신경세포의 시냅스를 시각화하는 기술로 공포 기억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팀은 공포와 관련된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기저외측편도체의 억제성 뉴런 일부가 공포 기억을 만들 때 특이하게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는데요. 이 특정 뉴런을 억제하자 공포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났고, 반대로 활성화하자 불안 반응이 줄어들어 PTSD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냈습니다. 과거에는 공포를 느끼는 감정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는 연구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공포 기억 자체, 공포기억을 없애지 않으면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으니깐 지억 자체를 없애거나 기억을 되살아 나지 않는 과정을 끊어내는 연구들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네, 오늘은 '뉴노멀'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쨌든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학습된 게 굉장히 씁쓸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미래에는 더 좋은 기억이 저에게 학습돼서 새로운 뉴노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양훼영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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