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동물의 다양한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이동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동물을 만나볼까요?
[기자]
오늘 만나 볼 동물은 우리에게 영화 킹콩으로 잘 알려진 고릴라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고릴라 하면 일단 킹콩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데,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큰 덩치, 가슴 치면서 위협도 하잖아요.
[기자]
고릴라는 영장류 중에 몸집이 가장 큰 동물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위협적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릴라의 몸길이는 암컷이 150cm 정도, 수컷은 170~180cm에 달하는데요, 몸무게로 보면 수컷의 몸무게가 최대 270kg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김새와는 달리 고릴라는 비교적 온순한 동물인데요, 사람을 봐도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또 고릴라는 주로 채식을 하는데요, 버섯이나 대나무의 연한 잎 등을 좋아하고 과일 종류도 즐겨 먹습니다. 식물을 통해서 수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일부러 물을 찾아 먹지는 않는데 영양 보충을 위해서 작은 곤충이나 달팽이 등을 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앵커]
아까 조 앵커가 말씀드린 것처럼 고릴라 하면 가슴을 두드리는 그런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이건 어떤 행동인가요?
[기자]
'드러밍'이라고 하는 행동인데요, 얼핏 보면 단순히 화를 내거나 위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자신의 체격을 주변에 알리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분석해본 결과 고릴라는 덩치가 클수록 가슴을 두드릴 때 더 낮은 주파수의 소리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러니까 이 소리를 들으면 자신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주변에 알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암컷을 두고 경쟁하는 수컷들은 이렇게 가슴을 치는 소리로 서로의 체격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정보를 통해서 상대방과 물리적인 충돌을 해도 될지, 아니면 이쯤에서 후퇴해야 할지 판단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또 암컷에게도 이 소리는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을 선택하는 정보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앵커]
그러니까 시각적인 과시보다는 소리로 위험을 알리는 거네요? 그리고 영장류라고 하면 보통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고릴라도 닮은 점이 많다면서요?
[기자]
맞습니다. 지난 2012년에 과학자들은 고릴라의 게놈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고릴라는 인류의 조상과 1천만 년 전쯤 갈라졌고, 이후 600만 년 전에 사람과 침팬지가 다시 갈라지면서 지금과 같이 진화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또 사람과 고릴라의 유전자는 98%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유전자의 99% 가까이가 사람과 유사한 침팬지만큼 고릴라도 사람과 닮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앵커]
그동안 침팬지의 굉장히 유사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고릴라도 굉장히 유사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이런 게놈 해독을 통해서 또 어떤 점을 알 수 있나요?
[기자]
고릴라의 게놈 해독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이 확인됐는데요, 먼저 고릴라 피부의 케라틴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급속도로 진화했습니다. 케라틴은 우리 머리카락이나 손발톱에 있는 단단한 단백질 성분인데, 이렇게 케라틴을 형성할 수 있도록 빠르게 진화한 것은 고릴라가 네 발로 걷는 대신 주먹을 쥐고 걸을 수 있도록 단단한 관절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사람에게 치매와 심장 질환 등의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고릴라에서도 발견됐는데요, 하지만 이런 유전자가 고릴라에게는 병을 일으키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이런 유전적 특징을 이용하면 사람의 질병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앵커]
치매 유전자가 있지만 발병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들은 해독하면 사람에게 여러 가지 정보가 도움될 수 있겠네요?
[기자]
네, 실제로 고릴라를 대상으로 이런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골다공증 같은 것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연구팀이 고릴라의 다리와 팔, 척추뼈를 CT를 이용해 분석해 봤는데요, 고릴라도 노화가 진행되면 몸을 지탱하는 긴 뼈의 지름이 넓어지고 뼈의 벽이 얇아지는 등 사람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골다공증과 연관이 있는 뼈의 무기질 손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사람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골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고릴라는 수컷과 암컷의 골밀도에 큰 차이가 없었는데요, 연구팀은 고릴라가 뼈의 손실을 막는 호르몬 수치를 유지할 뿐 아니라, 활동 수준이 사람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더 강한 뼈를 자라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앵커]
고릴라 유전자가 사람과 비슷하다 보니까 사람과 같은 질병에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고릴라가 코로나 19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 거 같아요.
[기자]
맞습니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에 퍼졌을 때 영장류 가운데서 가장 먼저 감염된 동물이 고릴라였습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고릴라 8마리가 코로나 19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침과 콧물 증상이 나타나고 무력감을 보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두 완치되어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데요, 재미있는 사실은 고릴라의 경우 이렇게 전염병이 발생하면 다른 무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일종의 거리 두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것과도 비슷한데요, 고릴라와 같은 유인원은 호흡기 질환에 특히 취약해서 같은 집단에 있는 개체가 감염되면 전체에게 빠르게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찰 결과, 다른 집단으로의 확산은 아주 드물게 나타났는데요, 과학자들은 고릴라의 경우 집단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하지 않은 데다가 질병에 걸리면 1~2m 정도 거리를 두고 접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염병의 확산을 줄이는 습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앵커]
신기하네요. 그렇다면 사회성은 사람과 비교해서 얼마나 발달한 편인가요?
[기자]
고릴라의 사회적인 관계와 계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콩고공화국에 서식하는 서부고릴라를 대상으로 관찰해봤는데요, 고릴라에게는 직계가족 다음으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자주 만나는 먼 친척 그룹이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조부님이나 사촌 정도가 되겠죠. 그다음에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는 않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룹이 있었는데요, 이 그룹은 부족이나 마을과 같은 소규모의 공동체 같은 역할을 하는 그룹이었다고 합니다.
또 고릴라 사회는 보통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 가족들과 독신 수컷 고릴라로 이뤄져 있는데요, 이렇게 수컷 고릴라가 가족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독립할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다른 독신 고릴라들이 함께 무리 지어서 유대관계를 형성해 준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고릴라들은 일종의 '정기 모임'도 갖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고릴라들이 좋아하는 열매가 열릴 때쯤같이 모여서 먼 곳까지 열매를 따러 가거나 자신들만의 축제 같은 모임을 즐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앵커]
고릴라들도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거 같네요. 그만큼 집단 안에서의 유대관계가 굉장히 돈독한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고릴라의 사회성과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연구 결과가 있는데, 우리가 어릴 때 아주 힘든 경험을 하면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잖아요, 고릴라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과학자들이 어릴 때 부모를 잃거나 집단 내에서 갈등을 겪은 고릴라들을 관찰해봤는데, 6살 이전에 경험한 어려움이 많을수록 고릴라의 수명이 짧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역경을 버티고 성장했다고 해도 건강이 나빠지거나 새끼를 적게 낳는 등 성체가 됐을 때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6살 이전에 어려움을 겪고도 잘 자라는 경우가 확인이 됐다는 건데요. 어린 고릴라가 속한 집단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고통받는 개체를 고립시키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다른 고릴라들이 부모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사회적 관계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완충 기능을 충분히 한다면, 고릴라가 어린 시절 어려움을 겪었어도 여느 개체처럼 자랄 수 있다는 거죠.
[앵커]
사람과 비슷한 점이 무척 많네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동은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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