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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ZOO] 강한 송곳니가 무기…아프리카의 '초식 맹수' 하마

2023년 08월 30일 16시 36분
■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동물의 다양한 생태와 습성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ZOO', 이동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이번 주에는 어떤 동물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까요?

[기자]
오늘은 아프리카의 맹수로 알려진 하마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마 하면 물에서 얼굴을 내놓고 다니거나 입을 벌리고 있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실 텐데요, 실제로 하마의 이름 자체가 hippopotamus라는 고대 그리스어인데, 강속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고대인들은 물속에 있는 하마를 보고 말을 떠올린 것 같은데요, 하마가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이 이름의 원뜻을 그대로 살려, 강하(河)자에 말 마(馬)를 써서 하마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보면 하마는 '우제류'입니다. 그러니까 말보다는 '소'에 가깝다고 해야겠죠.

[앵커]
그러니깐 이름과 다르게 오히려 강 속의 소에 가까운 건데, 하마는 물속에 있지만 빠르게 헤엄치는 모습은 못 본 것 같아요?

[기자]
네, 하마는 사실 물에 잘 뜨지도 못하고 헤엄도 잘 못 칩니다. 그래서 깊은 물보다는 주로 늪지대에서 하마를 볼 수 있는데요, 하마의 발가락 사이에는 물갈퀴처럼 얇은 막이 있고 콧구멍도 물속에서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헤엄을 친다기보다는 물속에서 땅을 발로 차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또 하마는 사나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초식동물입니다. 낮에는 이렇게 물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헤엄을 치며 생활하다가 밤에는 땅 위로 올라와서 풀을 뜯어 먹는데요, 보통 풀이나 과일, 나뭇잎 등을 하루에 50~60kg까지도 먹는다고 합니다.

[앵커]
하마가 헤엄을 잘 치지도 못하고 게다가 초식동물이라니 정말 의외네요. 그런데 우리가 하마 하면 쩍 벌린 입을 먼저 떠올리는데요, 아마 하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죠?

[기자]
맞습니다. 하마의 턱은 우리가 문고리에 쓰는 경첩처럼 맞물려 있는데요, 보통 150도 정도 너비로 벌릴 수 있고요, 최대 180도까지, 거의 수평에 가깝게도 벌릴 수 있습니다. 악어나 고래, 뱀과 같은 동물들도 하마처럼 비슷한 구조의 턱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입을 크게 벌릴 수 있는 것인데요, 사람의 턱이 45도 정도 벌어진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앵커]
아무리 초식동물이라지만 이렇게 커다랗게 벌린 입이 정말 위협적인데요, 그래서 하마를 맹수, 포식자 이렇게 인식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기자]
실제로 수컷 하마에게 턱은 엄청난 무기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포유류는 대부분 수컷이 짝짓기를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암컷보다 덩치가 큰 편인데요, 하마는 육상에서 세 번째로 덩치가 큰 포유류지만, 암수의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몸집이 아니라 턱과 커다란 송곳니가 무기이기 때문이죠.

영국 연구팀이 이런 하마의 턱과 송곳니에 대해 연구해 봤는데요, 하마 수컷의 몸무게는 암컷보다 5% 정도 더 많이 나갔지만, 턱의 무게는 44% 정도 차이가 났고요, 커다랗게 발달한 송곳니 무게는 수컷이 무려 81%까지 더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수컷의 송곳니는 암컷의 2배에 가까워 1개가 2kg에 달하기도 했는데요, 먹이를 먹을 때 쓰는 다른 이빨은 암수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앵커]
암수의 덩치 차이는 다른 동물들 처럼 크지는 않은데 수컷 하마가 몸집을 키워서 위협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무기를 키웠다는 거네요?

[기자]
그렇죠. 여기에는 하마가 사는 환경과 생리적 구조가 영향을 주는데요, 하마는 보통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어서 몸집 자체로는 큰 위력을 보이지 못하죠. 그래서 입을 벌릴 때 보이는 턱과 이빨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표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마는 물에 떠서 생활하기 때문에 체중을 지탱하거나 몸의 열을 식힐 필요가 없어서 에너지 소비량이 다른 동물보다 적은 편인데요, 이 때문에 빠르게 먹이를 먹은 뒤에 오랫동안 소화하는 신체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소화 속도가 떨어지니까 체중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거죠. 결국, 끊임없이 영역 싸움을 하고 짝짓기 경쟁을 하기 위해서 수컷 하마는 몸집이 아닌 턱과 이빨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것입니다.

[앵커]
단순히 위협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하마의 송곳니가 발달한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네요. 또 저는 동물 관련 영상을 보면서 하마가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이것도 적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인가요?

[기자]
위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이웃을 구별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인데요, 호수에 사는 하마의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이 하마가 속한 무리와 속하지 않았지만 같은 호수에 있는 이웃 무리, 그리고 다른 호수에 사는 무리에게 들려줘 봤습니다. 그랬더니 하마가 속한 무리와 이웃 무리에서는 별다른 공격성을 띠지 않은 반면에, 완전히 다른 호수에 사는 무리에서는 강한 반응을 보였는데요, 영역표시의 일종인 배설물을 뿌리는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하마가 다양한 형태의 울음소리를 내는 만큼 의사소통을 위해 울음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봤는데요, 특히 하마의 울음소리는 1km 밖까지 퍼지기 때문에 같은 호수에 사는 다른 무리 하마들도 서로의 울음소리에 익숙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앵커]
또 하마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도 알려주시죠.

[기자]
네, 또 흥미로운 사실은 하마가 붉은색의 땀을 흘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하마의 땀을 채취해서 분석해 봤는데요, 그 결과 하마의 땀은 자외선을 차단하고 세균 번식을 막아서 피부를 보호해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털이 없지만 탁하고 끈끈한 성분의 땀이 우리가 쓰는 선크림처럼 자외선을 흡수해서 차단하는 건데요, 하마가 물속에서 하루 종일 눈과 코를 내놓고 일광욕을 즐기는 동안 이 땀이 피부에 달라붙어서 강한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또 하마의 땀에는 '히포수도릭 산'이라는 색소가 들어있어서 붉은색을 띠는데요, 색이 진해지면서 동시에 강한 산성으로 변해 피부에 생긴 상처의 감염을 막고 세균 번식도 막아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하마의 땀 성분을 사람이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하마의 땀은 냄새가 정말 지독하다고 합니다. 또 하마는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상업적인 목적으로는 활용할 수 없다고 하네요.

[앵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하마가 멸종위기종으로 되어 있어서 현재 하마는 아프리카에서 주로 볼 수 있나요?

[기자]
네, 하마의 송곳니와 고기를 얻기 위해 밀렵이 증가하면서 하마 개체 수는 계속해서 감소했는데요, 현재 전 세계 하마 개체 수는 13만 마리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중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하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하마가 남미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마약왕인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살아있을 당시 하마 4마리를 들여와 키웠는데요, 그가 죽고 나서 이 하마들이 인근에 있는 강과 호수로 넘어가 아주 빠르게 번식한 것입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이렇게 늘어난 하마가 200여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원래 하마가 살지 않던 곳에 이렇게 갑자기 외래종이 들어오게 되면서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앵커]
하마가 전혀 살지 않던 곳에 큰 덩치의 하마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생태계에는 불청객인 셈인데요, 어떤 영향은 없을까요?

[기자]
이 부분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요, 먼저 호주 연구팀은 남미의 하마처럼 새롭게 유입된 대형 초식동물들이 오히려 자연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팀은 10만 년 동안 인간이 멸종시킨 대형 초식동물과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온 외래 초식동물의 형질을 비교해 봤는데요, 그 결과 몸무게와 소화력 등 새로 유입된 초식동물의 64%가 멸종한 동물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외래종이 멸종된 동물을 대신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맥락에서 콜롬비아에 나타난 하마는 만 년 전에 멸종한 대형 라마를 대신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는데요, 하마의 몸무게가 대형 라마와 비슷하고 소화 방식이나 보행 방식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또 하마가 생태계에 피해가 아닌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는데요, 하마가 뭍에서는 멸종한 라마처럼 풀을 뜯고, 물에서는 멸종한 코뿔소 종처럼 배설물로 수중 생태계를 비옥하게 한다는 거죠.

결국, 하마가 생태계를 교란한다기보다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주장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반대 의견은 어떤 건가요?

[기자]
앞서 언급한 하마의 배설물이 문제라는 것인데요, 하마는 물속에 배설한 뒤 꼬리로 퍼뜨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마의 배설물에는 단백질과 함께 다양한 유기물질이 들어있어서 주변에 사는 물고기와 곤충 등에게는 중요한 영양공급원이 되는데요, 그래서 하마의 배설물은 하천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구팀이 케냐 마라 강의 하마가 수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봤더니 이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마라 강에는 하루 36톤의 하마 배설물이 유입되는데요, 연구팀은 이 때문에 강이 오염되고 산소가 줄어들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미생물이 하마 배설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가 줄어들고, 또 이때 생기는 암모니아와 황화물 등이 물고기에 해를 입힌다는 거죠.

가뭄 때는 상황이 더 나빠지는데요, 건기에 산소가 부족한 물이 하마 웅덩이에 모이게 되는데 이 물이 비가 와서 하류로 내려가게 되면 갑작스러운 산소 고갈 상태가 돼 물고기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마 배설물로 인해 물속 생태계의 불균형이 이어지면 언젠가는 생물 종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앵커]
오늘은 하마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아주 익숙한 동물이지만 생각보다 몰랐던 게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동은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이동은 (d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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