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남태평양의 섬 '타이티'에서 방랑자 생활을 했던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 누구나 들어보셨을 텐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 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폴 고갱의 대표작과 생애, 그리고 가슴 아픈 사연까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폴 고갱 너무나 익숙한 이름인데 그런데 이 사람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면서요?
[인터뷰]
네, 폴 고갱은 페루와 타히티를 포함해서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작업하던 방랑자이자 타고난 예술가였습니다. 고갱은 1848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는데요, 한 곳에서 지내기보다는 방랑벽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일찍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에 가족과 함께 페루에서 잠시 이민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페루에서의 기억이 고갱에게는 ‘평생 나를 사로잡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렬하게 남습니다.
또 열일곱 살 무렵부터 선원생활을 하면서 배를 타고 항해를 하기도 했는데요. 몇 년 후 파리에 다시 돌아온 고갱은 지인의 소개로 증권 관련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이때 당시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화풍이 대두 되면서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는데요. 고갱은 미술품을 좋아해서 조금씩 작품을 모으다가,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후 드가와 피사로 등의 대가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전시에 출품을 하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앵커]
그러니까 그림을 좋아해서 그리게 되면서 화가의 길을 걸은 그런 재능이 많은 화가였지 않나 싶은데요. 당시에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사조가 유행했다고 하셨는데, 고갱도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았을까요?
[인터뷰]
네, 고갱 또한 주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초기에는 인상주의 기법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점차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법을 확립하기 때문에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됩니다. 고갱이 마르티니크라는 지역에 여행을 갔을 때 인도인들과 교류를 하게 되는데요. 이때 접한 이국적인 인도의 전통 미술에 매료되면서, 자신이 속해있던 유럽 미술 화풍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거든요. 이때부터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역마살이 제대로 낀 작가가 바로 고갱이었는데요. 그런데 고갱이 여행한 나라 중에서도 특히 ‘타히티’를 좋아했다면서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고갱에게 ‘타히티’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인데요. 고갱이 마르티니크나 파나마 등의 지역에서 만났던, 이국적인 전통과 예술에 점점 빠져들게 되면서 그 나라의 사람들과 문화에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고갱은 당시 유럽에서 성행하던 화풍이 인공적이고, 너무 외적인 묘사에만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반대로 원시 미술에 대해서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법 또한 변화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유럽에서 습득한 것들과 이별하겠다고 선언하고 ‘타히티’로 떠나게 되고요. 1895년 이후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히티를 포함한 비 문명권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작업을 하게 됩니다.
[앵커]
고갱이 타히티 그리고 페루 이런 곳에서 지내다 보니까 유럽에서 있는 화가들이 그린 인물들과 조금 다른 인물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떤 작품이 대표작일까요?
[인터뷰]
아무래도 타히티에서 영감 받아서 그린 그림들도 잘 알려져 있죠. 그 중에서 '타히티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작품에는 두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검은 머리와 붉은 색감의 옷이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고갱은 타지에서 만난 여인들을 모델로 작업을 많이 했는데요. 이국적인 화풍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사람들이나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기도 했습니다.
왼쪽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나른해 보이는 모습과 해변가의 배경이 잘 어우러지는데요, 반면에 오른쪽의 여인은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게 좀 더워 보이는 복장이죠. 이때 타히티가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인데요. 그 여파로 이런 복장 같은 문명들이 마구 밀려들어 왔을 겁니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모습이 우울해 보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일렁이듯 리듬감 느껴지는 선들과 색감이 표현되어서 열대지방의 더운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입니다. 1891년에 그려졌고요,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장 중입니다.
[앵커]
말씀을 들어보니까 고갱은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찾아다닌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늘 행복했을까요?
[인터뷰]
그건 아닙니다. 고갱이 한때 증권 관련 일을 하다가 갑자기 화가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했을 때, 가족이 있었거든요. 다섯 명의 아이와 아내가 있었는데, 작가로 전향하면서 생계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아내와 여러 가지 트러블이 생깁니다.
결국, 고갱은 아내와 결별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꿈을 펼치게 되는데요. 고갱이 타히티에 머물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거든요. 편지 내용은 고갱의 딸이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고요. 고갱은 크게 자책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고갱의 인생에서 정말 힘든 시기였는데요, 가족의 비보뿐만 아니라 타히티에서 작업은 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거든요.
고갱은 딸의 사망소식을 듣고 약 한 달간 그림 하나를 그리게 되는데, 1897년에 제작된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입니다. 가로로 굉장히 긴 작품인데요. 한 폭의 캔버스 안에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배경은 어둡고 드라마틱 합니다.
그림의 오른쪽을 보면 누워있는 아기가 보이고요. 중간 부분에는 젊은 나이로 보이는 인물이 있습니다. 가장 왼쪽에는 나이 든 노인이 앉아있는데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생애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작품입니다. 고갱은 작품에 주로 여성들을 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남성보다는 여성의 생애 주기를 나타낸 것으로 보여집니다.
[앵커]
작품 속에 인간의 생을 담았지 않나 싶은데요. 딸의 비보를 듣고 그린 이 작품이 고갱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인터뷰]
고갱의 대표작으로도 손꼽히는 이 작품은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작업했다고 알려졌는데요.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고갱은 산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렇다고 작가로서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함이었는데요.
결론적으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는 실패를 하게 됩니다. 고갱이 느끼는 감정이 캔버스로 쏟아져나와서 이 작품이 그려졌고, 이걸 그리는 동안 수 많은 생각들이 오갔을 텐데요. 목숨을 끊으려는 그 직전까지도 작업을 했던 걸 보면 고갱에게 예술은 고통을 토해내는 과정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앵커]
고통이 걸작이 되는 게 예술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은데요. 또 고갱 하면 고흐라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거든요. 둘이 절친했다면서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둘은 함께 작업실을 공유할 정도로 한때 절친하기도 했고요, 특히 고흐가 귀를 자르는 사건에도 고갱이 관련이 있을 정도로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사이이기도 한데요. 고갱이 처음 고흐와 고흐의 동생이자 미술애호가이기도 했던 테오를 만나게 되면서 절친하게 지내게 되거든요. 이후에 둘은 고흐의 작품 '노란 집'에 등장하는 노란색 벽의 건물에서 함께 머물면서 깊게 교류하고 또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둘이 크게 다투는 일이 벌어지죠. 이때 고흐가 귀를 자르게 된 건데요. 화풍뿐만 아니라 성격적으로 너무 상극이었던 둘은 친했던 만큼 불같이 다투게 됩니다. 다툰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이 일로 인해서 고갱이 고흐를 떠나게 됩니다.
[앵커]
이런 고갱의 삶을 주제로 한 책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책인가요?
[인터뷰]
네, 굉장히 유명한 책이죠. '달과 6펜스'인데요.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가 고갱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쓴 책입니다. 특히 서머싯 몸은 직접 타히티를 방문하기도 하면서 고갱의 발자취를 좇는데요. 그 과정에서 고갱이 타히티에 남겨놨던 그림을 발견해 아주 낮은 값에 구매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달과 6펜스'는 꿈을 찾아 떠나면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고갱의 삶을 다루면서 큰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이 책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먼저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본래 직업과 가족까지 뒤로하며 예술에 생을 바친 고갱의 삶이 잘 나타나는 책 인만큼,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앵커]
삶 자체가 예술이었던 것 같은데요. 고갱이 그토록 좇았던 자유가 무엇인지 작품을 보면서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사이언스 인 아트'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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