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숙 /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앵커]
자유로운 시장경제 속에서 우리는 소비자로서 수많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소비자의 성향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지만 그 중 두 개의 비교군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얼리어답터' '슬로우어답터' 라는 개념인데요. 이 둘 중, 내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생각해본다면 올바른 소비 습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은 소비자로서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얼리어답터와 슬로우어답터에 대해서 함께 짚어보려고 합니다. 임지숙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얼리어답터부터 알아볼게요. 얼리어답터, 우리가 꽤 많이 쓰는 말이긴 한데요, 어느 정도의 구매 성향을 가진 사람을 얼리어답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여러분은 새로운 휴대폰 시리즈가 나온다는 기사를 접하실 때 어떤 마음 상태가 되시나요? 나오기 전부터 어떤 기능이 새로 탑재될지, 카메라 성능은 어떤지 기사를 검색해보고 출시일이나 예약판매를 찾아보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누리시는지, 아니면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단순한 정보로 넘기시나요? 전자에 속하는 분들이라면 얼리어답터(Early adoptor)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얼리어답터는 1950년대에 나온 말이지만, IT의 혁신과 맞물려서 대중화되다 보니 특히 전자기기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단어죠. 우리가 흔히 삐삐라고 불렀던 pager가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보편화 되어 핸드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1990년대 후반까지 이동 통신계를 풍미한 휴대 통신기기였는데 지금 20~30대 분들은 아마 그게 뭐야?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MP3나 PDA도 추억 속의 물건이 된 지 꽤 되었죠.
그만큼 기술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서 나름의 프레임, 즉 틀을 가지게 되는데 소비자로서의 나를 ‘얼리어답터’라는 틀로 규정하게 되면 신제품을 남들보다 빠르게 구매, 평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제품의 특성을 알려주려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앵커]
그렇다면 자신을 얼리어답터로 규정한다는 건 남보다 앞선 소비 행위를 통해 나를 차별화하려는 심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내가 쓰는 상품으로 나를 드러내게 되죠. 결국 물건을 산다는 것은 의사결정의 과정인데, 의사결정의 우선순위에서 나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타인과 차별화되는 특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새로운 제품을 빠르게 취하고 사용하면서 ‘앞서나가고 선진적인 나’의 고유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선진적인 집단을 일컬을 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태도, 의견, 행동에 영향을 주는 ‘오피니언 리더’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트렌드 세터’, ‘얼리어답터’라는 말이 더 많이 회자 되었고 이러한 표현들은 ‘소비자’로서의 프레임으로 앞서나감을 드러내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특히, 얼리어답터는 스마트기기와 발전과 함께 급격히 확산 되다 보니‘새롭고 복잡한 기기도 잘 다루고 신기한 기능도 잘 아는 지적인 정보통' 이미지와 ‘빠른 변화에도 순조롭게 적응’하는 라이프스타일로 무장하게 되어서 기업들도 ‘얼리어답터’를 통한 긍정적 홍보 효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들의 리뷰와 평점 등은 ‘사회적 증거’로 작용하면서 ‘얼리어답터’에게 영향을 받는 대중들에게 파급력을 발휘하게 되는 거죠.
[앵커]
네, 이렇게 교수님 말씀 들어보니깐 얼리어답터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클 수 있겠네요.
[인터뷰]
네. 이러한 영향력을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밴드웨건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데요. 곡예나 퍼레이드의 맨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처럼 얼리어답터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어요. 이러한 밴드웨건 효과를 편승 효과라고도 하는데, 마치 서부 개척시대에 금광이 발견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처럼 유행에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심리가 얼리어답터의 선택을 따라 소비행위로 이어져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리어답터들이 사용한 제품을 신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심리를 반대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얼리어답터들의 ‘타인들과 차별화 하고자 하는 심리’에 주목해서 쉽게 살 수 없는 제품을 나만 누린다는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데요. 이러한 현상을 ‘스놉현상’ 혹은 ‘백로효과’라고 합니다. VVIP 마케팅이나 ‘고가의 스페셜 상품’을 별도로 내놓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스놉현상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휴대전화에 **에디션 등으로 협업한 고가의 제품을 한정판으로 내놓으면 까마귀들 속에서 나 홀로 ‘백로’가 되는 것 같은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죠.
[앵커]
어떻게 보면 나의 속의 이유가 얼리어답터가 유행의 편성하는 그런 부정적인 측면이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 얼리어답터의 그림자에 헝그리어답터가 있습니다. 이들은 둘 다 신제품을 빠르게 구매하여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편이지만, 단순히 신제품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성을 고려한 선택을 하는 것을 전제하는 얼리어답터와는 달리 헝그리어답터의 경우는 자신의 지출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밥값과 차비까지 아끼면서도 사고 싶은 고가의 아이템은 실용성 여부를 막론하고 반드시 구매한다는 소비성향을 보입니다.
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고가의 외제차를 구매하고 또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기존 제품을 중고로 내다 팔아 구매 비용을 일부 충당하면서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헝그리어답터의 특성인데요.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라이프 스타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가 나타난다는 고전적인 심리학의 프레임에 도전할 정도로 어떤 제품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사용하느냐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강력해진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앵커]
얼리어답터가 가지는 이미지 때문에 상대적으로 새로움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소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뒤떨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까 우려되는데요.
[인터뷰]
학문적으로 엄밀히는 얼리어답터의 반대는 late majority 즉, 늦게 합류하는 다수 혹은 느림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leggard(혁신지체자, 지각 수용자)로 보는데요. 이와는 달리 통상적으로는 슬로우어답터(slow adopter)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들은 너무 빠르게 바뀌는 기술과 복잡한 기능을 따라가기 위해 허덕이는 것을 싫어하고 유행이나 시류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과 가치에 집중 하고자 하는 관성적인 소비경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슬로우 어답터의 특성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고유한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MZ세대의 슬로우 라이프 특성과 맞닿아있는 또 다른 거대한 소비집단입니다. 슬로우 어답터들은 느긋하고 천천히 제품을 구입 하여 사용하고, 또 구입 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기 때문에 제품 구매에 실패할 확률이 적고 굉장히 안정적 이예요. 예전에는 주로 나이 대로 젊은 세대를 얼리어답터, 노년기 분들을 주로 슬로우어답터라고 규정해버리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세대로 나눠서 보지는 않습니다.
[앵커]
왠지 옛날에는 다들 갖고 있는 제품을 내가 갖고 있지 않으면 좀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럼 슬로우어답터가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은 아니라는 이야기네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얼리어답터들은 보통 제품의 상징성이나 새로운 제품 구매 자체에 가치를 두어서 브랜드충성도도 높은 편이고 기능의 복잡성 등은 감수하려는 특성이 더 높다면, 슬로우어답터는 단순하고 대중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고 제품으로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프레임 자체가 약합니다. 즉,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을 통해 내가 원하는 기능에 집중하는 거죠. 사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은 디지털 기기를 비롯 새로운 상품에 대한 수용도는 높지만 거기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는 어려운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에 내가 원하는 기능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기에 이미 충분히 검증된 심플한 제품을 선호합니다. 굳이 최고사양의 신제품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최신사양이 나오면 그 이전 버전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사서 안정적으로 누리는 것을 더 가치롭게 여깁니다.
[앵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그 속도를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요. 그것보다 나의 속도에 맞춰서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오늘 깨닫게 됐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임지숙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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