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플랫폼 누아트 디렉터
[앵커]
오래된 유물이나 미술품은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진짜인지 가짜인지 여부를 가려내는
감정을 받게 되죠.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 된 오랜 작품들을 도대체 어떻게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지 궁금한데요. 사이언스인 아트!
오늘은 위작을 가려내는 과학적 감정 기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온라인 아트-플랫폼 누아트의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네,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은 예술 작품의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과학적 분석 방법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현장에서 위작을 가리는데 어떤 과학적인 기술이 동원되고 있나요?
[인터뷰]
네, 미술품 위작 논란은 늘 있어 왔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위작 기술도 더 고도화되기 때문에 그만큼 미술품 감정 부분도 전보다 더 개선되고,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앵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라는 말이 참 어려운데, 알기 쉽게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인터뷰]
일단 연대측정이라는 분석 기법이 있습니다. 암석이나 유물이 언제 형성됐는지나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순서를 알기 위한 지질학적 분석 기법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말 그대로 방사성 탄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입니다.
나무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몸까지 지구 상의 모든 생물체에는 탄소가 들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탄소로는 6개의 양성자와 6개의 중성자로 구성된 탄소12가 있고요. 지구 대기권 윗부분에서 높은 에너지로 인해 만들어진 탄소-14는 양성자 6개와 중성자 8개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 탄소-12는 시간이 지나도 그 양이 변하지 않는데, 반대로 탄소-14는 시간이 지나면 질소로 변하여 사라지게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즉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탄소-14와 그대로 남아 있는 탄소-12의 비율을 측정해 유적이나 유물의 나이를 측정하는 기술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기 중의 탄소-14와 탄소-12의 비율은 일정하다는 가정하에 탄소-14가 붕괴해서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하는 겁니다. 평균적으로 약 5700년마다 탄소-14의 전체 양이 질소로 변하게 되는데, 이걸 반감기라고 합니다.
[앵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하면 아무리 오래된 유물이라도 정확하게 몇 년인지 알아낼 수 있나요?
[인터뷰]
그건 아닙니다. 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은 아까 말씀드렸던 반감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혔는데요. 탄소-14의 반감기가 약 5700년 정도인데, 10번의 반감기를 거치면 시료에 남는 탄소의 양이 0.1%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 말은 10번의 반감기를 거칠 정도로 오래된 유물, 그러니까 약 6만 년이 넘은 시료는 찾기 어렵다는 건데요. 연대 측정을 위해 필요한 시료의 양도 생각했을 때 유물의 손상이라던가 이런 부분도 있고요.
다만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고 1970년대에 가속기 질량 분석기가 등장했는데, 보다 적은 양의 시료로도 더 정확하게 탄소-14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었고요. 또 이전보다 더 오래된 연대까지 밝힐 수 있을 만큼 발전은 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실제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사용해 미술품의 진짜와 가짜를 가려낸 사례가 있나요?
[인터뷰]
네, 있습니다. 몇백 년 동안 누가 그렸는지 몰랐던, 역사 속에 묻힐 뻔한 명작, <아름다운 공주>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 있습니다. 작품 <아름다운 공주>는 199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자 미상의 1800년대 초상화로 소개됐었는데요, 몇 번의 거래 끝에 한 컬렉터의 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침 이 컬렉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굉장한 팬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작품이 다빈치가 그린 그림 같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연구한 옥스퍼드 대학의 마틴 캠프 교수를 찾아갑니다. 과학적 분석을 통한 미술품 감정을 진행했다고 하는데요.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컬렉터의 예측대로 정말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 맞았구요. 500년 전에 펜과 잉크 그리고 파스텔로 그린 작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진 모조 피지에 그려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앵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란 것을 알아본 사람도 대단하고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아낸 과학도 신기한데 당시 분석 결과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이 작품을 분석했을 때 나온 여러 가지 결과 중에서 중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먼저 캔버스 역할을 한 모조 피지의 나이가 그렇고요. 이 모조 피지를 분석하면 언제 그려진 작품인지를 예측할 수가 있는데,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서 1450년에서 165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이 됐고요.
참고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부터 1519년까지 살았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과학 외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다빈치가 왼손잡이였다는 점이 있는데요. 잉크를 사용해서 스케치한 기울기나 밝기에서 왼손잡이의 특징이 나타났다고 하고요. 그 밖에도 특유의 디테일이라던가 다른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을 찾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앵커]
말씀을 들을수록 과학적으로 감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위작을 근절하기 위해 최근 들어 감정 기술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고요?
[인터뷰]
네, 아무래도 중요하죠. 미술품 감정이나 위작 논란 이런 부분들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고, 또 근절되어야 하는 이유 중에는 기본적으로는 예술적 가치의 부분이 당연히 있겠고요. 또 현실적으로는 이 위작 이슈가 자꾸 생기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술 시장이나 예술계의 안정에 저해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현실적인 우려 때문에 위작을 근절하려는 이유도 있겠고요. 현재까지 감정 방법의 개선이라든지 학술적인 부분, 위작을 감별하는 인공지능 같은 방법들이 지속해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의 위작 시비가 있었던 거로 아는데요. 대표적인 위작 논쟁 사례로 어떤 게 있는지 짚어주실까요?
[인터뷰]
네, 사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이중섭이나 천경자, 이우환 화백 같은 유명 화가들의 위작 논란이 있었는데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 같은 경우는 천 화백과 국립현대미술관 사이의 이야기고요.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1년부터 시작됩니다.
요약하면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움직이는 미술관>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는데, 그때 이 <미인도>라는 작품이 현대그룹 사옥에 전시되면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됩니다.
당시 이 작품이 포스터로도 제작됐는데, 천 화백이 지인을 통해 이 포스터를 알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자신이 그린 게 아니라고 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비상이 걸립니다. 천 화백은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면서 진품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하는데요, 또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요.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미인도는 천 화백이 오 모 씨에게 판 작품인데, 그 오씨가 당시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게 선물했고, 후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된 것이다'라고 그 과정까지 밝혔습니다.
이 논란 속에서 대중들도 굉장히 혼란스러워했고요, 국립현대미술관은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합니다. 그 결과, '진품'으로 판명됩니다만 천 화백은 이 결과가 사실이 아니라면서 절필 선언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8년에 작품 90여 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립니다.
[앵커]
그림을 그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데, 감정 결과는 진짜라고 하니까 무엇이 진실인지 참 혼란스러운데요. 그 사건은 그대로 종결된 건가요?
[인터뷰]
천경자 화백이 미국으로 떠난 지 16년이 흐른 2015년에, 국내에 천 화백의 타계 소식이 알려지는데요. 이 작품의 진품 여부에 대해서는 끝내 인정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떠났고요, 유족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합니다. 법적 공방 속에서 미술 전문가들의 안목 감정과 함께 X선, 원적외선, DNA 분석 같은 과학 감정들이 이뤄지는데요.
다시 한 번 진품이라는 판결이 나오고요. 유족들은 인정하지 않고 프랑스의 유명 감정팀에 의뢰하는데 그 결과 진품일 가능성이 아주 낮은 것으로 나왔거든요. 때문에 아직도 명확하게 결론지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법원 판결은 천경자 화백의 명예 훼손 여부만을 판단했고, 진품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앵커]
그런데 결론적으로 '미인도' 감정 건에는 오늘 소개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기법이 활용된 건가요?
[인터뷰]
당시에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감정팀을 통해서 여러 차례 감정을 요청했었기 때문에, 아마 탄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 외에 여러 감정 기법이 동원됐을 겁니다. 미술품 감정에는 작품에 따라서 안목 감정 그리고 과학 감정 등 여러 가지 기법이 들어가는데요.
분명한 건 탄소연대측정 하나만으로 위작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씀드리고요, 감정 전문가 한 분의 말을 빌려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정한 감정이란, 안목 감정으로 내려진 결론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예술과 과학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귀한 작품을 알아보는 순기능도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앵커]
네, 마지막 말씀이 인상 깊네요. 앞으로도 예술과 과학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사례들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온라인 아트플랫폼 누아트의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