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앵커]
과거를 떠올리면 박철민 앵커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글쎄요, 노래도 있잖아요. '그땐 그랬지~', 죄송합니다, 하하하.
첫사랑이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했던 감정이 어렴풋이 떠오르죠. 그렇지 않으신가요?
그렇죠, 참 신기한 게 예전에도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을 텐데, 떠올려보면 좋은 기억들이 더 남곤 하는데요.
오늘 '생각연구소'에서는 이와 관련된 우리의 심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가 ‘그땐 그랬지~’, 노래도 불러보고...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노래 잘 하시던데요.
[앵커]
네, 감사합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첫사랑이라는 게 과거에 애틋했던 기억 아니겠습니까?
저는 첫사랑 하면 환상적인 모습이 떠올라요.
하지만 실제로 첫사랑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환상과는 동떨어져 있는 현실에 안타까웠던 경험도 있는데, 이게 방송에 나가면 안 되는데 생방송이네요.
교수님도 이런 첫사랑 경험 있으시죠?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누구나 다 첫사랑은 있겠죠.
대게 아련하고 사실 첫사랑을 할 때는 사랑이나 그런 걸 잘 모르잖아요.
잘 이루어지기 어려운 건데, 제 생각에는 마음속에 두고 실제로 만나는 것보다는 좋은 기억으로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앵커]
이처럼 유난히 옛사랑에 관련한 영화나 작품들이 많고 또 큰 인기를 끌고 있고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그렇죠,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영화 중에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있었죠.
대학 시절에 풋풋했던 사랑, 나이가 들어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인데요.
그때 좋았던 기억이나 향수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고요.
또, 여러분 잘 아시는 드라마 시리즈가 있었잖아요. '응답하라 시리즈' 이때 1980년대나 1990년대의 향수를 다시 느끼게 하죠.
옛날에 있었던 삐삐나 다마고치 같은 것들이 나오고 먹거리, 라디오, TV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나와서 그때 가지고 있던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현상 자체가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네, 교수님 말씀 들어보니까 '추억'이라는 단어에는 힘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회상을 통해서 뭔가 발휘되는 게 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미디어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소비를 할 수 있게끔 하는 마케팅도 나오고 있죠?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그렇습니다. 과거의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마케팅을 '복고 마케팅'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레트로 마케팅'이라고 합니다.
원래 'retrospect'라는 말이 '회상'이라는 뜻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옛날의 기억들을 자극하고 추억을 되살려서 일종의 예를 들면 단종된 제품이 다시 나오는 경우도 있고요.
아니면 상품의 겉면 디자인 자체를 옛날 스타일로 바꾸는 거예요.
그럼 그 시절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억이 다시 올라오니까 실제로 구매하려는 욕구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도 있었을 텐데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걸까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일종의 생존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과거에 안 좋은 기억만 자꾸 생각하게 되면 살기가 힘들겠죠.
사람들의 생각보다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려고 하고 가능한 나쁜 기억을 억제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리키는 심리 법칙을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하는데요,
[앵커]
아, 무드셀라 증후군.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네, 발음하기 조금 어렵죠?
무드셀라라는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데요. 실제로 장수의 아이콘이에요.
실제 나이가 성경에서 보면 900살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실제로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심리를 보일 때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하는데요.
이 증후군이 사실 어떻게 보면 기억 자체가 왜곡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거를 좋게만 보는, 그래서 일종의 도피심리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면 '그때는 참 좋았는데'라든지 과거를 회상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시간을 돌릴 수는 없어요.
나이는 많이 들었고, 그러니까 생각 자체를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일종의 도피심리일 수도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러면 이 무드셀라 증후군이 도피심리의 일종이라면 이런 것들이 안 좋다고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가끔은 이로운 점도 있지 않을까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그렇죠,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옛날 안 좋은 기억이 다 올라오면 어떡합니까?
매일매일 삶이 너무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충분히 도움이 되는데 이것과 관련해서 심리학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2006년 미국 사우샘프턴대학 심리학과 연구팀이 6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인데요, 처음에 피실험자들에게 외로움 등 각종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을 읽게 했습니다.
책 내용 자체가 굉장히 부정적인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 같은 것들이 점화되는 상태가 되는 거죠.
이때 이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눕니다. 한 집단은 과거의 좋았던 향수 같은 것을 기억하도록 하는 집단이고, 나머지 집단은 그렇게 하지 않는 통제 집단이 되겠는데, '이 두 집단 중에 어느 쪽이 정서적으로 더 안정감을 느끼는가'라는 게 비교 포인트거든요.
실제로 해봤더니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집단이 훨씬 더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요. 미래에 대해서도 더 밝게 생각했다는 결론을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극복하는 데에서도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앵커]
향수를 떠올리고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면 그것이 미래까지도 도움이 된다는 거군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네, 두 분 예전에 좋았던 방송 생각하시면 되겠죠.
[앵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겠죠. ‘그때 그 시절’의 향수가 좋아도 매일 과거에 빠져 산다면 문제일 것 같은데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그렇죠, 저희가 '현실을 살아라'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현실을 충만하게 살아라,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게 되고 늘 좋았던 일종의 왜곡된 기억만 가지고 있게 되면 그걸 반복하게 되면 사실 현실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요.
그것도 상당히 도움이 안 되고요.
또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불안한 느낌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양쪽 다 도움이 안 돼서 심한 경우에는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희가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그 사람의 정신건강을 가늠할 때 중요한 잣대가 뭐냐면 '얼마나 현실검증력이 있는가',' 현재에 느끼는 이것을 얼마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잘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가'를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니까 더도 덜도 말고 과거의 좋은 기억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왜곡하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앵커]
저는 과거에 대한 왜곡이 좋은 쪽으로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쪽으로 왜곡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방송을 생각하면 '흑역사'라고 하죠. 그런 민망함이 생각나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그럼 앞으로의 방송을 생각하면 되겠죠. 이 방송이 좋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를 심하게 왜곡하면 안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과거에 대한 미화를 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어떤 것도 왜곡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중에 좋았던 것을 있는 그대로로 기억하는 건 도움이 되겠죠.
실제로 그런 것들이 도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게 필요하겠고요.
저희 심리학에서 '현실치료'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실치료에 입각한 4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잠깐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맨 처음 현실을 살 때 지금 현재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원하다'는 영어를 따서 'Want'의 약자 'W'.
둘째, 내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지금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하다'의 영어인 'Doing'의 약자 'D'.
그리고 실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현재 하는 행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평가해야 합니다. 그 평가의 'Evaluation'의 약자 'E'.
만약 이게 현재 효율성이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겠죠. 그때 'Plan'의 약자인 'P'.
이것을 이용해서 'WDEP'라고 하는 4가지가 있는데요.
사실 과거의 기억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은 정말 좋은 겁니다.
그것과 현실을 정말 열심히 살고 충만하게 사는 것 두 가지가 상호배치된 건 아니잖아요. 그 두 가지를 공존할 수 있게 한다면 우리 삶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셨던 현실치료의 4가지 단계 중에서 혹시라도 단계적으로 해야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중에서 하나를 빼먹는다거나 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을까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실제로 가장 중요한 단어는 'Want'예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따라가면 되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까지 가야만 실제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심리학의 조언입니다.
[앵커]
과거를 좋게 보낸 사람들은 그나마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과거의 부정적인 면만 붙잡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거든요?
[이동귀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바꿀 수 없잖아요. 이미 지나간 거잖아요. 그렇다면 흘려보내야죠.
부정적인 것들이 기쁨을 준다면 계속 파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계속 반복할 이유가 있을까요?
[앵커]
과거에 몸개그를 했던 게 생각나면 그걸 계속 반복하면서 '아, 창피했어' 보다는 '아, 내가 재미를 줬구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과거의 회상에 관해서, 그로 인해서 만들어진 징크스에 대해서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YTN 사이언스 서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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