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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는 단어인데…" 면접 때 말문이 콱 막히는 이유는?

2017년 05월 24일 16시 05분
■ 이동귀 /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앵커]
면접 볼 때 당황해서 답변을 제대로 못 한 경험이 있나요?

예전에 다른 방송사 면접에 갔는데 꼭 진행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아침마당'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갑자기 긴장해서 그런지 제목이 기억 날듯 말듯 하는 거죠.

그렇게 우물쭈물하다가 '열린 마당'이라고 답한 적이 있죠.

굉장히 당황했을 것 같은데요.

근데 이런 일 겪는 분들이 종종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오늘 '생각연구소'에서는 내 말문이 꽉 막힐 때 알아야 하는 심리 법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와 함께 합니다.

교수님도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거나 학회 같은 데 가서 발표하시는 일이 많으시잖아요.

교수님도 이런 경험이 종종 있으시죠?

[인터뷰]
예전에는 많이 떨었죠.

그런데 익숙해지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기엔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앵커]
굉장히 평온하게 말씀하셔서 놀라운데요.

[인터뷰]
저도 실수를 가끔 하긴 해요, 최근에 한번은 '동물병원'이라고 얘기해야 할 상황에서 '가축병원'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 쳐다보더라고요.

제가 실수한 거죠.

[앵커]
권재일 앵커랑 비슷한 경험인 것 같은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죠.

분명히 알던 단어인데 그 이름이 맴돌기만 하고 떠오를락 말락~ 괴로울 때가 있잖아요

이런 현상을 의미하는 심리 법칙이 있다고요?

[인터뷰]
우리가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분명히 아는 단어인데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입 근처에서 맴돌고 얘기가 안 되는 것,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설단현상' 이라는 게 있습니다.

설단의 단은 소맷단 할 때의 '단' 이거든요, 끝이라는 뜻이에요.

혀끝에만 맴돌고 더 진행이 안 되는 거죠.

그것을 설단현상이라고 합니다.

[앵커]
이게 어떤 현상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데요, 저희가 화면을 준비했거든요?

먼저 화면으로 함께 보실까요?

심리학자 브라운, 맥닐 교수의 실험 처음 보는 단어를 외워 보세요.

레미제라블, 차이코프스키 그런데 학생들이 단어를 말하지 못했어요.

"어....어..레미레..레...그게...."

입속에서만 맴도는 현상, 이게 설단현상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무래도 낯선 단어 같은 경우에는 이럴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저희도 과학 뉴스를 하다 보면 굉장히 낯선 용어들이 한 번에 외워지지 않고 가물가물할 때가 있거든요.

설단현상, 이 심리실험은 어떤 것을 이야기한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하버드 교수들이 연구했어요.

브라운과 맥닐 교수가 실험했는데요.

사실 이 현상 자체는 원래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라는 사람이 이미 발견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떤 거냐면 뭔가 생각이 날듯 말듯 하면서 안 나는 거잖아요.

아까 '레미제라블'을 외울 때 '레미'만 생각난 것처럼요.

입안에서 뭔가 단서가 있긴 있는데 완전하게 조합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영어로 'tip of the tongue' 즉 혀 끝에서 빙빙 돈다는 뜻이거든요.

이런 현상이 생기는 데 문제는 반복되면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점이죠.

[앵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할 때 보면 대체로 긴장된 상황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면접장에서라던가, 발표할 때라던가요.

설단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 따로 있나요?

[인터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면접 상황이 대표적인 예죠.

잘 보여야 하고 잘 수행해야 하는데 막상 직접 할 때는 불안해지잖아요.

특히 불안할 때 어떻게 되냐면 자신의 기억 단서들이 충분하지 않으니 발표 불안이 동반되면서 심리적, 신체적으로 위축돼요.

신체적으로는 '심계항진'이라든지 이런 것을 동반하게 되죠.

심장이 빨리 뛰고 땀도 흘리고 목소리도 떨리고, 이렇게 되면 우리의 주의라고 하는 것이 신체 증상으로 확 몰려가게 되는 거거든요.

예전에 외웠던 기억력 쪽으로 가는 게 아니니까 이 단어를 끄집어낼 때 일종의 버퍼링이 걸린다고 할 수 있죠.

[앵커]
사실 제가 예전에 설단현상이라는 걸 전공 공부하면서 배운 적이 있는데, 얼마 전에 설단현상이라는 말을 설명하다가 설단현상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억력이 망가진 게 아닌지 걱정했는데, 기억력과는 상관이 없나요?

[인터뷰]
이게 기억을 전혀 못 하는 것과 설단현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관련된 힌트를 줬을 때 단서를 들었을 때 딱 '아!' 이렇게 알게 되면 이건 설단현상이고요.

이렇게 힌트를 줬는데도 생각해내지 못하면 기억 자체, 저장 과정 자체가 문제 있는 거거든요.

[앵커]
평상시 분명 잘 아는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 나가면 머리가 하얘진다거나 발표를 못 한다거나 이런 현상도 분명히 있잖아요.

이런 현상은 어떤 심리가 숨어있는 건가요?

[인터뷰]
심리학적으로 얘기할 때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잘해야 한다는 것, 자신이 잘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기초점적 주의가 생기게 됩니다.

주의가 자신의 내부를 향해서 계속 들여다보인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일종의 자의식이 계속 활성화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자신이 떨리는 현상 같은 것도 금방 알게 되죠.

제가 생방송 하면서 떨리는 것을 자꾸 의식하게 되면 떨리면 목소리도 더 떨리게 되고, 자꾸 주의는 그쪽으로 가면 머릿속은 하얗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늘 있는 일이긴 하지만요.

[앵커]
그런 경우에 맞닥뜨리게 되면 호흡도 빨라지고 긴장도 많이 하게 되는데 누구나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잖아요.

이게 반복되다 보면 반복되면서 공포심 같은 것도 학습되는데 이런 것도 극복해야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터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긴 하고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제안은 세 가지 정도 됩니다.

첫 번째는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자신에게 가장 친하고, 편한 사람을 떠올리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라든지 가족이나 친구, 이들에게 말할 때 불안하고 떨릴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실제로 불안하면 안 된다고 되새기는 자기 언어가 있어요.

계속 불안하면 안 된다고 하면 놀랍게도 불안 쪽에 매달리는 효과가 있어요.

그러니까 끈끈이한테 붙잡혀 가는 느낌이 있거든요.

[앵커]
'이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비슷한 건가요?

[인터뷰]
그렇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예전에 흰곰 같은 것도 그렇죠. 흰곰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흰곰 생각이 올라갔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생각 자체를 너무 그쪽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불안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세 번째는 어떤 분들은 아예 통째로 외워버리자는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분은 PPT 같은 것도 밑에 다 써놓지 않으십니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겠다는 말까지요.

이렇게 리허설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때로는 과잉 부담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중간에 누가 질문 하나만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싹 다 하얗게 잊어버리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중요한 포인트만 기억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앵커]
혹시 일상생활 속에서 설단현상, 발표 불안을 막기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어떤 팁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인터뷰]
물론 연습을 많이 하고 익숙해지고 경험하고 체험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제가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약간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심리학에는 역설적인 효과가 있는데, '실수하면 절대 안 된다, 불안하면 안 된다, 잘해야 한다'라는 마음 때문에 불안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차라리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불안해하고 떨건 마찬가지라면 불안해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 불안 해보도록 노력하는 거예요.

[앵커]
아, 더 불안해지도록요?

[인터뷰]
이걸 심리학적으로 역설적 의도라고 합니다.

[앵커]
그러다 기절하면 어떻게 하죠?

[인터뷰]
기절할 정도로는 하면 안 되겠죠?

옛날에 보면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고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면 어차피 목소리가 떨린다 싶으면 불안하기 시작한 거죠.

그때 불안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떨 수 있는지 더 떨어보자', 손에 땀이 난다면 어차피 땀이 나는 거니까 손에 땀을 쥐어짜서 손수건이 젖을 정도로 땀 내보자고 생각하는 거죠.

다만, 이런 것들이 혼자 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전문 상담사와 함께한다면 더욱 효과를 낼 수 있죠.

[앵커]
저희도 생방송을 하다 보면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받게 되는데 오히려 얼마나 틀릴지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면 더 편해질 수 있을까요?

[인터뷰]
그렇죠, 실제로 그렇게 해서 파격적인 결과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몸이 기억하게 해야 해요.

[앵커]
오늘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생각연구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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