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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들의 연구실] 전자레인지 원리로 땅속 병해충 잡는다…한국전기연구원

2023년 12월 20일 11시 43분
■ 정순신 /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앵커]
우리나라 대표 연구자들과 함께 다양한 연구분야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코너, '국대들의 연구실'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국전기연구원의 연구실을 방문해보겠습니다. 우리 농가에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연작장해'인데요, 밭에 같은 작물을 연이어 심으면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땅속에 생긴 세균이나 병해충인데, 최근 전자레인지의 원리인 '마이크로파'를 이용해서 농약 없이도 이런 병해충을 제거하는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정순신 책임연구원 모시고 자세한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연작장해'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요, 정확히 어떤 문제를 말하는 것인지 설명부터 해주실까요?

[인터뷰]
연작장해란 말 그대로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계속 재배할 경우 작물의 생육에 장해가 나타나 수량과 품질이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주로 그 작물을 좋아하는 특정 병해충의 발생이 가장 심각합니다. 초기에는 농약 사용이 병해충 감소에 효과가 컸지만, 농약에 저항성이 강한 병해충이 생기면서 효과가 떨어지고 농약 오남용으로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여러 작물을 번갈아 재배하면 연작장해가 줄겠지만, 농민이 다른 작물을 번갈아 재배하면 전문성이나 판로 개척이 힘들어 연작장해를 알면서도 한 가지 작물만 재배하는 것이고, 더욱더 강하고 비싼 농약에 의존하는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앵커]
농작지 효율성을 저하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인삼 재배지가 가장 심각합니다. 인삼 수확 후 땅속에는 인삼 뿌리 썩음 병균이 남아 있는데 이 병균은 1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땅에 다시 인삼을 심게 되면 6년근이 되기 전에 인삼이 거의 전멸하기 때문에 10년이나 경작을 못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내 땅이 있는데도 높은 토지 임대료를 주고 새로운 땅을 찾아야 하고, 산이나 임야 등에 새로운 경작지를 개발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선충 피해도 심각합니다. 십수 년 전 강원도 태백과 삼척의 접경지역에 있는 소규모 고랭지 배추밭에 관리급 씨스트선충이 발생했는데, 현재는 강원도 여러 시군으로 발생 면적이 확대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김장철 배추 생산량이 감소하여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시설 재배지의 40% 이상이 선충에 감염되어 있고, 참외, 토마토, 오이, 가지 등 대부분의 농작물이 토양 병해충에 의한 연작장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앵커]
그냥 멀쩡해 보이는 땅을 그냥 놀려야 하는 그런 문제라는 말씀이신데요. 박사님께서 개발하신 기술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건가요?

[인터뷰]
병해충의 생활사를 보면, 수확 후 작물이 없는 기간에는 알이나 번데기 등 다양한 보호형태로 토양에서 휴식기를 보내고, 작물이 자라면 토양 속에서는 뿌리에 피해를 주다가 토양 밖으로 나와서는 잎과 줄기 등에 피해를 줍니다. 이 때문에 토양은 병해충의 온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방제 기술은 작물을 심기 전 마이크로파로 토양 깊은 곳까지 고온으로 가열하여 병해충을 사멸함으로써 연작장해를 해소하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고온에 저항성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가열 방제가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곤충은 50℃, 선충은 60℃, 병균은 80℃ 이상에서 죽습니다.

[앵커]
말 그대로 땅을, 밭을 전자레인지처럼 데운다고 이해하면 될 거 같은데, 그 큰 땅을 전자레인지에 넣을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이용하는 건가요?

[인터뷰]
전자레인지와 마찬가지로 마이크로파의 파동은 물 분자를 진동시키고 진동하는 물 분자 간의 마찰로 인해 열이 발생하여 가열되는 원리입니다. 토양은 입자, 공기,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분에는 식물 양분인 칼슘, 마그네슘, 칼륨, 미네랄 등이 이온(ion) 형태로 녹아 있습니다. 음식물 속에 있는 수분과 이온 때문에 마이크로파 가열이 잘 되듯이, 토양 속에 있는 수분과 이온 때문에 토양도 마이크로파 가열이 잘됩니다.

[앵커]
땅도 마이크로파의 영향을 잘 받아서 가열이 잘 된다는 말씀이신 거군요. 기존에도 비슷한 기술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인터뷰]
기존 기술은 파동의 회절 현상 때문에 마이크로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서 땅속 깊이 가열하지 못합니다. 마이크로파를 방사하는 안테나에 가까운 곳은 마이크로파가 강해서 가열이 잘되고, 먼 곳은 마이크로파가 급격히 약해져서 가열이 잘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술은 파동의 반사와 중첩 현상을 복합적으로 이용해 마이크로파가 퍼지지 않고 결이 맞게 모이도록 함으로써 땅속 깊이 가열할 수 있습니다. 토양 표면뿐만 아니라 깊은 곳에서도 마이크로파가 충분히 강해서 가열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앵커]
그렇다면 마이크로파가 땅속으로 퍼지지 않고 한 곳에 모을 수 있다면 한 곳만 집중적으로 열을 가할 수 있는지도 궁금한데, 이게 어떤 원리로 가능한 걸까요?

[인터뷰]
마이크로파가 사방으로 퍼진다고 해서 모든 부분이 가열되어 온도가 높아지는 건 아니고 한정적인 부분만 고온으로 가열됩니다. 그래서 기존 기술은 안테나에 가까운 표면 위주로 좁은 면적을 10~15cm 깊이까지 가열합니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마이크로파가 진행하는 경로를 제어하여 원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표면부터 땅속 30cm 이상 깊이까지 고온으로 넓게 가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마이크로파를 퍼지게 한 뒤 반사 시켜 땅속 깊은 곳에 모이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이크로파 세기가 표면부터 깊은 곳까지 상당히 균일해지면서 고온 가열이 가능해집니다.

[앵커]
이렇게 마이크로파를 이용하면 병해충들을 제거한다면 농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이밖에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인터뷰]
토양은 밀도가 높기 때문에 농약이 토양 속 깊이 침투되지 않아 방제 효과가 낮은 반면 토양 깊은 곳에서는 농약이 토양 밖으로 배출되지 않아 작물에 해를 줍니다. 이런 농약 사용 문제뿐만 아니라 약제 저항성, 잔류농약, 환경오염 등의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이와 달리 마이크로파는 토양 깊은 곳까지 빠르게 침투하여 열(heat)로 전환되고 잔류하지 않기 때문에 가열 방제가 가능하면서 잔류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또한, 마이크로파로 토양 속 유해 병해충을 방제한 후 재배하고 싶은 작물의 생육에 맞는 유익한 미생물과 양분을 토양에 공급하면 건강한 토양 속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차세대 맞춤형 농업이 발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앵커]
발전 가능성이 무척 커 보이는데, 이 기술을 또 어떤 분야에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수출입 항만과 공항으로 유입되는 붉은 불개미와 고궁이나 사찰의 기둥을 갉아먹는 흰개미 같은 금지 병해충 또는 외래 병해충의 긴급 방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마이크로파 가열 장치를 이동식 차량에 탑재하여 겨울철 도로 위 살얼음인 블랙 아이스를 신속하게 제거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스팔트 도로를 가열하여 아스팔트끼리 서로 엉겨 붙게 함으로써 균열과 포트홀을 보수하는데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앵커]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가서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연작장해가 얼마나 심각하고, 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지 알게 됐는데요. 오늘 설명해주신 기술이 농작지의 효율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 하겠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 정순신 책임연구원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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