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한 주의 마지막인 매주 금요일, 영화 속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레드카펫' 오늘도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기자]
'사이언스 레드카펫' 양훼영 입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영화 '오펜하이머' 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개봉 첫날에만 55만 명, 개봉 5일 만에 100만 명을 동원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러닝 타임이 180분, 가볍지 않은 내용과 친절하지 않은 전개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있지만, 특수관인 아이맥스 상영관은 여전히 매진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키워드와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오펜하이머'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 영화이지만, 단순히 그의 삶과 업적이 나열한 영화는 아닙니다. 모순적이면서도 복잡하게 얽힌 오펜하이머의 선택을 집요하게 보여주며, 단순 관찰이 아닌 주인공과 함께 고민하게 만듭니다. 1939년, 독일에서 우라늄 핵분열 실험에 성공하자, 이를 이용한 폭탄 개발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 알아요]
[나치가 핵을 갖게 되면]
[기자]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오펜하이머는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맨하튼 프로젝트'에 뛰어듭니다.
[그들이 12개월 앞서있어]
[18개월이죠]
[기자]
황량한 사막, 로스앨러모스에 연구소를 짓고 4천 명의 과학자들을 모은 오펜하이머는 본격적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매달리고
[그 버튼을 누르면 세상이 파멸될 수도 있다]
[그런 얘긴가?]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요]
[제로에 가깝다?]
[기자]
3년 뒤인 1945년 7월 16일, 최초의 핵무기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합니다. 이후 개발한 원자폭탄은 일본에 투하되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납니다.
[세상은 오늘을 기억할 겁니다]
[이제 인류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겁니다]
[기자]
하지만 성공의 순간에도 죄책감에 휩싸여 모순의 시간을 지낸 오펜하이머.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류에게 원자폭탄을 선사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릅니다.
[당신은 인류에게 자멸할 힘을 준 거야]
[세상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기자]
오펜하이머는 여러 의미에서 어벤져스 영화라고 불리는데요. 우선 영화 밖, 출연 배우를 살펴보면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인 킬리언 머피를 비롯해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맷 데이먼,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에밀리 블런트 등이 출연했습니다. 이들이 연기한 배역 또한 과학계 어벤져스 입니다. 주인공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리처드 파인만, 어니스트 로렌스까지.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현대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쉴 새 없이 등장하는데요. 그래서 '오펜하이머'는 배경 지식을 많이 알수록 영화를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키워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형식의 마술사'입니다. 오펜하이머가 개봉 전부터 관객의 관심을 받은 건 믿고 본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일 텐데요. 놀란의 이전 영화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영화도 쉬운 내용은 아닙니다. 여러 시간을 쪼개고 재조립해 극적 재미를 주는 형식의 예술을 또 한 번 스크린에 그려냈습니다.
[기자]
기억이 거꾸로 가는 '메멘토', 꿈속의 꿈속의 꿈속의 사건과 시간을 엮은 '인셉션'처럼 놀란 감독은 플롯 자체만으로도 영화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오펜하이머'역시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세 개의 다른 타임라인이 교차 편집해 진행됩니다. 이 과정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데다가 뒤섞인 타임라인을 하나로 맞출 때의 쾌감도 적기 때문에 지루하고 어려웠다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형식은 오히려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깊게 묘사해 그가 처한 모순적 상황에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놀란 감독은 또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촬영하고, 컴퓨터 그래픽도 최소화하는 거로 유명하죠. 이번에도 IMAAX는 물론 최초의 흑백 IMAX 필름을 도입했고요. 핵폭발 장면 역시 CG가 아닌 휘발유와 알루미늄 분말, 마그네슘 조명제, 화약 등을 섞어 폭약을 만들고 실제로 터트려 촬영했습니다. 이 같은 장면은 핵폭발 장면의 사실적 재현이 아닌 인류 최초의 핵폭발을 본 오펜하이머의 입장에 방점을 찍게 만들어 줍니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놀란 감독 특유의 형식적 미학을 통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 영화 '오펜하이머' 감독 :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단순히 오락적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어요. 핵무기라는 진지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늘 사람들을 경험 속으로 끌어들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범하고도 극적인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오펜하이머’의 눈을 통해 그가 처했던 진퇴양난의 역설적 상황을 보게 되고, 함께 하게 될 겁니다.]
[앵커]
양훼영 기자와 함께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이어서 나눠보겠습니다. 영화에서 흑백과 컬러를 오간다고 했는데, 각각의 장면에 핵분열과 핵융합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죠?
[기자]
네. 맞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핵분열을 컬러 장면으로 촬영을 했고요. 오펜하이머가 반대했던 핵융합은 흑백 장면으로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핵 속 에너지를 얻는 원리가 크게 두 가지, 핵분열과 핵융합이 있어 이 핵과 관련된 이야기를 영화에서 두 가지 색깔로 보여주는거죠.
우리가 이 하나 큰 핵 하나를 서로 다른 두 개의 핵으로 쪼개지면서 에너지를 발생하는 게 핵분열이라고 하고요. 핵분열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게 무거운 원자핵이 있는데, 여기 사용되는 것이 우라늄과 플루토늄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구하는, 생산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도 나오고요. 반대로 핵융합은 두 개가 합쳐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가벼운 원소를 합쳐서 하나의 무거운 원소를 만드는 것인데, 대표적인 게 태양처럼 별에서 에너지 방출하는 것을 핵융합이라고 합니다. 핵융합 기술을 인공태양 기술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수소폭탄을 만드는 내용으로 많이 대변되고 있습니다.
[앵커]
핵분열과 핵융합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원자핵을 인위적으로 쪼개거나 합치는 게 불가능 할 것이다, 이렇게 나오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기자]
당시에 과학기술 수준으로 봤을 때는 원자핵은 매우 작고, 전기적으로 플러스, 양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핵과 원자핵이 같은 극끼리 가까이 부딪히거나 혹은 분리를 시키거나 하기 위해서는 반발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원자폭탄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실질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 과학자들이 생각을 했다고 하고요. 아인슈타인은 물론이고, 당시 노벨 물리학 수상을 했던 과학자들 대부분이 인류는 획득할 수 없는 기술, 원자폭탄은 이론적으로는 생각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평가했던 것이 당시의 반응이라고 합니다.
[앵커]
실질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니까 회의적이었다 라는 것인데 이렇게 회의적이었던 핵분열 관련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게 된 건가요?
[기자]
1932년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중성자는 전하를 띄지 않는 대신에 양성자랑 질량이 똑같은 물질을 말하잖아요. 전하가 없으니까 다른 물질의 핵으로 침투하거나 부딪혀서 쪼개는 과정을 하기가 쉽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실험을 통해서 우라늄에 중성자를 넣는 실험을 해봤더니 우라늄에서 바륨, 크립톤이라는 두 가지 작은 원소로 쪼개지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량의 열에너지도 발생이 되는 것을 확인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핵분열입니다. 이렇게 1939년 핵분열이 연쇄반응까지 이어질 수 있다 라는 것이 실험적으로 확인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원자폭탄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 겁니다.
과학자들은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어느 한 지점, 그러니까 이것을 임계질량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최소한의 양을 계산했는데, 그 양이 5kg 이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이 양이 채워지는 과정을 커다란 유리그릇을 두고 그 안에 작은 유리구슬을 넣으면서 최대 임계질량을 어디까지 채워졌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거든요. 알고 보시면 조금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앵커]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는 전하, 반발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 거기서부터 핵분열 기술이 발달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핵분열을 이용해서 원자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은 반대했다고 나오는데요. 왜 그런 걸까요?
[기자]
우선은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자신이 만들었던,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했던 마음에 원자폭탄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실제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고 난 이후에 일어난 참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수소폭탄 같은 경우는 핵융합과 핵분열의 원리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는 폭탄이거든요. 핵융합 반응을 만들기 위해서는 뇌관으로 원자폭탄, 그러니까 핵분열 반응을 활용해야 가능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이 수소폭탄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쓰기 때문에 이제 별명이 수소폭탄이 다 붙은 건데, 수소 원자핵끼리 핵융합을 하기 위해서는 약 1억℃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고온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핵분열 반응을 이용합니다. 그렇게 되면 안에서 핵분열에 원자폭탄이 터지고, 바깥에서 핵융합, 수소폭탄이 터지기 때문에 이 폭탄은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큰 위력을 가진 폭탄이 되는 거고요. 실제로 소련에서 수소폭탄 '차르 봄바'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는데, 위력은 50만 메가톤, TNT 5천만 톤 동시에 터트리는 위력이 나왔다고 합니다.
[앵커]
이제 핵분열, 핵융합이 모두 폭탄 제조 과정, 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개발됐지만, 현재는 폭탄이 아닌 에너지 발전으로 사용이 되고 있죠?
[기자]
만들어졌을 때 당시에는 인류를 파괴하는 기술로 개발됐지만, 지금은 인류를 위한, 돕는 기술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원자력 발전이죠.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 반응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서 물을 끓이고, 거기서 나오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 최대 장점은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우라늄 1㎏만으로 석유 200만 리터를 사용했을 때 나오는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고요. 온실가스 배출도 적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을 도입했는데, 문제는 위험성이 크다라는 것이겠죠.
우라늄 원료 자체는 원자로에서 태운다 해도 고선량의 방사능이 수 억년 동안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고준위 방폐물'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고요.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건을 통해서 한번 원자로 폭발 사고가 일어나게 되면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된다는 것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핵융합은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기술 중 하나인데요. 초고온, 초고압 상태로 가벼운 원자핵들을 융합해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활용하겠다, 그러니까 태양을 끌어다 와서 인공태양처럼 끝없이 에너지를 만들어 내겠다, 이런 개념인데 에너지 효율이 좋고 위험성도 적고 여기에 쓰이는 중수소나 삼중수소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에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원료에 대한 자유로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융합도 남아있는데요. 핵융합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고온, 초고압이라는 조건이 꼭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이걸 만들어 내는 자체가 지금 굉장히 어렵고요. 융합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핵융합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 또한 아직은 적립되지 않아서 현재는 실증연구를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앵커]
이번 오펜하이머 영화가 배경지식 없이 가면 어렵다, 이런 후기들을 굉장히 많이 봤는데요. 이제 주말에 보시는 분들이 양훼영 기자가 소개해주신 이번 코너를 보고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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