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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레드카펫] 美 애니에서 K 장녀가 보인다 영화 '엘리멘탈'…원소별 특징

2023년 07월 28일 16시 34분
■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한 주의 마지막인 매주 금요일, 영화 속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레드카펫' 오늘도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기자]
'사이언스 레드카펫' 양훼영입니다. 네 번째로 만나 볼 작품은 영화 '엘리멘탈' 입니다. 개봉 한 달이 넘어서는 이 영화, 뒷심이 무서운데요. 국내 관객 5백만을 넘어서며 디즈니 픽사가 만든 작품 중 국내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에 올랐습니다. 그럼 키워드 함께 살펴볼까요?

첫 번째 키워드는 '역주행' 입니다. '엘리멘탈'의 역주행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북미 개봉 당시, 픽사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악의 오프닝 성적을 거둔 엘리멘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한국에서의 역주행을 시작으로 북미에서도 입소문을 타면서 뒷심을 발휘 중입니다. 개봉 당시 '플래시' '범죄도시3'에 이어 3위로 출발한 '엘리멘탈' 하지만 개봉 2주차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더니 16일 동안 1위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23일, 관객 500만 명을 넘기며, 인사이드아웃을 제치고 역대 픽사 최고 흥행작에 올라섰습니다.

[송채은 / 초등학교 3학년 : 오랜만에 가족 영화 보니까 조금 설레요]

[하영주 / 초등학교 6학년 : 캐릭터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잘 와 닿았고 엄마랑 같이, 가족이랑 보면서 캐릭터들의 감정을 부모님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미국에서도 입소문을 탄 뒤 개봉 22일 차에 매출 1억 달러를 넘겼는데요. 덕분에 2018년 인크레더블2 이후 픽사가 내놓은 7편의 장편 애니메이션 중 가장 좋은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잘봐"

최근 국내 영화계에 새로운 트렌드가 바로 장기흥행입니다. 지난해 4개월 가까이 흥행을 이어간 '탑건 매버릭'이 대표적이고, 올 초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도 여기에 해당하는데요. 첫주 성적이 전체 흥행을 좌우한다는 기존 흥행 공식이 깨지고 있는 만큼 영화사들도 흥행 장기화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엘리멘탈 역시 주인공 엠버와 웨이드의 인생 네컷 사진을 관람객에게 증정하는 이벤트를 통해 재관람을 유도 중인데요. 그렇다면 엘리멘탈이 역주행 후 장기 흥행까지 이어지는 진짜 이유는 뭘까요? 두 번째 키워드로 알아보겠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한국적 정서' 입니다. 엘리멘탈은 분명 미국 애니메이션인데, 영화를 보면 K-장녀가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엘리멘탈이 K-장녀 성장기라 불리는 건 바로 한국적 정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공기, 흙, 그리고 물과 불. 4개의 원소가 사는 엘리멘트 시티 불 원소 엠버의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이곳 엘리멘트 시티 파이어타운에 정착했죠.

"이 가게는 우리 가족의 꿈이야. 언젠가 네게 될 거다"

엠버에게는 어릴 적부터 아빠의 가게를 물려받고, 불 원소와 결혼하는 게 당연했는데요.

"하지만 여기 규칙은 아주 간단해, 원소끼린 섞이면 안 돼"

우연한 사고로 물 원소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관계를 쌓고 미처 몰랐던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엠버 하지만 부모의 희생을 외면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실망 시키지 않으려 애쓰다가 결국,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기로 합니다.

"아빠 일을 물려받으려고만 했지, 내가 하고 싶은 건 생각 안 해봤어. 게다가 아빠가 널 펄펄 끓여버릴걸"

"왜 남이 정한 대로 살려고 해?"

K-장녀 이야기를 담아낸 건 바로 픽사 최초 한국계 감독인 피터 손 덕분입니다.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이민 2세로 자라면서 느낀 다양한 경험을 영화에 그대로 녹여냈기에 더 큰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피터 손 / 영화 '엘리멘탈' 감독 : 저는 뉴욕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제가 한국에 갔을 때 몇몇 친구들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그때 저는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라고 답했습니다. 일종의 결합, 한국계 미국인인 거죠. 영화에 나오는 비비스테리아는 엠버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엠버 안에 빛이 있고, 세상으로 그 빛이 반사되기도 합니다. 엠버가 유리 꽃을 만들수록 더 깊이 스스로 이해하고 성장하게 되며, 이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앵커]
4 원소의 신비로움과 한국적 정서까지 담아낸 아주 매력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영화 속 과학 이야기, 양훼영 기자와 계속 나눠보겠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물과 불, 그리고 공기, 흙 이렇게 4개의 원소잖아요. 이게 이유가 있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아마 학창시절에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만물이 물과 불, 공기, 흙 이렇게 네 가지 원소로 이뤄져 있다는 가설이 있었는데, 이게 바로 4원소설입니다. 이 가설은 엠페도클레스가 처음 주장했지만, 신화적 성격이 강했던 초기 4원소설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독자적인 해석을 붙이면서 고대 화학의 기본 틀이 됐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는 4개의 원소가 특유의 성질을 두 개씩 가진다고 했는데요. 불은 건조하고 뜨겁고, 물에는 차고 습하고, 공기는 습하지만 따뜻하고, 흙은 건조하고 차갑다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가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만 바꿔줘도 다른 원소로 바뀔 수 있고, 이런 조합으로 모든 물질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네, 그런데 지금 밝혀진 건 4원소설과는 많이 다른데요! 이게 밝혀진 건 언제쯤일까요?

[기자]
4원소설은 2천 년 넘게 서양 문명에 영향을 줬는데요. 18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실험 기반의 과학 이론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질량보존의 법칙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 부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세기 돌턴의 원자설이 나오면서 오랫동안 믿어왔던 4원소설은 폐기됐는데요. 돌턴을 포함해 많은 과학자에 의해 다양한 원자들이 발견되었고, 성질에 따라 원자들을 배열한 게 바로 '주기율표' 입니다. 실제로 영화 '엘리멘탈'은 피터 손 감독이 학창시절 주기율표를 보면서 원자 칸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떠올리는 상상을 많이 했고, 이를 오마주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영화 곳곳에 이 주기율표 모양이 숨겨져 있거든요. 아직 못 보신 분들이나 한 번 더 볼 계획이 있는 분들은 숨겨둔 주기율표 모양 찾기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앵커]
이 영화는 포스터부터 과학적인 내용이 가득하겠다 싶었는데, 역시 주인공부터 과학이 빠질 수 없네요. 저는 순수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영상을 보니까 불 원소 엠버가 입고 있는 옷이 눈에 띄던데요. 불에 타지 않는 옷이 정말 있을까요?

[기자]
저도 영화를 보면서 엠버가 입은 옷은 뭘까, 반짝거리는 게 굉장히 예쁘다 이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어떤 옷인지 한번 유추해봤는데요. 이 금속 옷을 유추하려면 불꽃색과 온도, 물질의 녹는점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엠버의 평소 불꽃색은 붉은색이고, 화가 날수록 하얘지다가 푸른색으로 변합니다. 불의 표면 온도는 붉은색- 노란색-흰색- 파란색 순으로 높아지는데, 붉은색은 대략 섭씨 1천도, 파란색은 대략 섭씨 1천6백도 되거든요.

그렇다면 엠버의 옷은 적어도 2천 도에서도 녹지 않아야겠죠? 이때 물질의 녹는점이 필요합니다. 녹는점은 물질이 고체에서 액체로 상태 변화가 일어나는 온도를 말하는데요. 구리의 녹는점은 1085℃, 철은 1539℃이라 이걸로 옷을 만들면 엠버가 화를 낼 때마다 다 녹게 되고요. 금속 중에서 녹는점이 가장 높은 건 텅스텐으로 3410℃이거든요. 그리고 녹는점이 2천도가 넘는 금속은 탄탈늄과 몰리브덴이 있으니까, 텅스텐이나 탄탈늄, 몰리브덴 등으로 만들었거나 이들을 섞어서 만들었을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앵커]
영화를 보면 엠버가 굉장히 가볍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무거운 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물과 불은 서로 만나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사실 물과 불이 만나면 불은 꺼지고, 물은 수증기로 사라지니까 당연히 안될 것 같은데, 물과 불이 접촉해도 괜찮은 건가요?

[기자]
먼저 이 질문에 대해 설명하기 이전에 답변 내용 중에 영화의 결말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소리를 잠시 줄이셔야 될 것 같고, 이야기를 다시 해보면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 엠버와 웨이드는 용기를 내서 서로 손잡고 안는 장면이 나오죠. 이때 두 원소는 걱정과 달리 사라지지 않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게 영화적 상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여기에도 과학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라이덴프로스트 효과인데요. 1751년 독일 의사였던 라이덴프로스트가 발견한 현상으로, 어떤 액체가 끓는점보다 훨씬 더 뜨거운 부분과 접촉하면 액체가 빠르게 끓으면서 증기로 이뤄진 단열층이 만들어지는 걸 말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물을 부으면 물방울이 막 뜨는 거 본 적 있으시죠? 또 아주 뜨거운 용광로의 액체 철을 손으로 만지거나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를 손에 뿌려도 다치지 않는 것도 모두 이 라이덴프로스트 효과 덕분입니다.

라이덴프로스트 효과는 액체와 기체의 열전도율 차이로 일어나는 현상인데요. 액체보다 기체는 열전도율이 낮은데, 라이덴프로스트 효과가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기체층에 의해 액체에 열이 전달되지 않아 기화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거죠. 엠버의 표면 온도는 1천 도가 넘고, 웨이드의 끓는점은 100도니까 라이덴프로스트 효과로 인해 두 원소는 사라지지 않고 접촉할 수 있는 겁니다.

[앵커]
엘리멘탈을 보면서, 사이언스 투데이 시청자분들은 과학적 상상력까지 가져가실 수 있겠네요.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양훼영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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