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장난감 블록인 레고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영감과 재미를 주는 장난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 레고라는 소재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는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레고 아트'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도 어렸을 때 레고로 예술 작품 만들었는데, 이걸 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니까 굉장히 궁금합니다. 어떤 분들일까요?
[인터뷰]
네, 그렇죠! 이번 주에 있었던 크리스마스나 또 지금 같은 연말에 선물로 많이 주고받기도 하는데요. 바로 '레고' 입니다. 레고는 아주 오랫동안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줬는데요. 오늘은 이 '레고'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로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대표작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앵커]
레고, 정말 마트 갈 때마다 지나치지 못하고 서 있는 굉장히 반가운 아이템인데요. 우리가 레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 역사는 잘 모르거든요. 한 번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아마 레고에 대한 첫 기억은 다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으실 것 같은데요. 아시겠지만 레고라는 이름은 회사 이름이죠. 워낙 오래되고 대표적인 회사 이름이라 그 자체가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된 경우인데요. 레고 그룹은 무려 1932년에 설립되어 현재 90년 넘게 우리 곁을 지키면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LEGO'라는 이름의 뜻은 '잘 놀다'라는 덴마크어인 'leg godt'의 약자라고 하는데요.
레고 그룹은 가족 회사로, 창립자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에 의해 운영되다가 아들이 물려받게 되고요. 지금은 손자인 '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레고의 첫 시작은 목수의 작은 작업장이었지만 현재 세계 최대의 장난감 제조 업체로 성장한 글로벌 기업인데요. '세기의 장난감'으로 두 번이나 선정되며 전 세계 아이들과 어른들의 오랜 친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 레고가 벽돌 모양으로 생겼잖아요? 이게 처음부터 벽돌 형태로 만들어졌나요?
[인터뷰]
처음에는 벽돌 형태의 레고 하나하나를 만들었던 게 아니라,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장난감을 나무로 만들어서 판매했다고 합니다. 금전적으로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판매하기 좋을 만한 것들을 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장난감뿐만 아니라 사다리나 다리미판 같은 일상용품도 생산하면서 험난했던 초창기를 버텨냈습니다. 그러다가 1935년 말에 비로소 장난감 생산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1949년에는 레고 그룹의 플라스틱 부서에서 여러 종류의 장난감을 개발했는데요, 그때 최초의 플라스틱 벽돌 형태의 장난감, '자동 바인딩 벽돌'이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러 개발과 시도 끝에 벽돌 형태의 레고를 통해 나이를 불문하고 놀이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됐습니다.
[앵커]
초창기가 험난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때도 장난감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레고 그룹 초창기 때는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배경도 있었고, 더불어 회사의 시작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놀이에 대한 어린이의 권리'를 생각하며 운영을 했고요.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에도 멈추지 않고 장난감을 계속 생산했는데요. 아이들은 힘든 시기에도 장난감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대형 화재 등을 겪지만 꿋꿋이 이겨내며 지금의 글로벌 기업이 된 겁니다.
[앵커]
그냥 장난감이 아니라 철학이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레고'를 소재로 한 예술가를 이제부터 만나볼까요?
[인터뷰]
네, 우선 레고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최고의 레고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네이선 사와야의 작품을 살펴볼 텐데요. CNN에서 '세계에서 꼭 봐야 할 전시'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네이선 사와야는 원래 뉴욕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변호사였는데요. 회의실에 앉아 계약을 협상하는 것보다 바닥에 앉아 레고를 만지는 게 더 편했다는 작가는 2004년에 변호사직을 그만두고 레고 아티스트로 전향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Yellow'라는 작품을 가지고 왔는데요. 이 작품은 몇 년 전 국내에서도 전시돼 화제가 됐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네이선 사와야가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담은 건데요. 레고라는 재료가 가진 취약성도 함께 드러나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저도 국내 전시 때 실제로 이 작품을 봤는데요, 스스로를 찢고 그 안에서 쏟아져나오는 레고들의 형태가 굉장히 역동적이고 기세가 느껴졌던 작품입니다.
[앵커]
네이선 사와야가 레고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굉장히 만족한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네이선 사와야는 레고 작업을 할 때 무의식 상태로 빠지면서 몇 달 동안 길게는 하루 12시간씩 작업을 하기도 한다는데요.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술가로서 최악의 하루가 있다면, 그래도 여전히 변호사였을 때 겪었던 최악의 하루보다는 낫다' 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자신의 직업이나 여러 가지 스스로에 대한 갈등과 두려움에 레고에 대한 열망과 행복이 합쳐져서 아티스트의 길을 택했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정말 말만 들어도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 거 같습니다. 해외 작가에 대해 소개해주셨는데, 국내에도 이런 분이 있다고요?
[인터뷰]
네, 우리나라에서는 네이선 사와야 보다는 조금 빠른 90년대부터 레고를 소재로 작업해온 작가가 있는데요. 제이문 이라는 작가입니다. 현재 브루클린를 거점으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데요, 상명여대 조각 학을 졸업하고 199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하며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부터 레고에 주목하게 되는데요. 장난감으로서의 보편성과 레고가 지닌 수치적인 체계에 주목했는데요.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겪은 경험을 작품에 담기 시작합니다. 국적이나 사회 계층, 성별 등이 서로 맞물린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데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레고를 이용해 여행 가방 시리즈를 작업한 게 'Artnet'과 'FAD Magazine' 등에서 제이문 작가의 작업을 언급하면서 인지도를 쌓기 시작합니다. 이후 뉴욕 곳곳의 나무에 레고로 만든 작품들을 결합하며 '레고 트리 하우스'라는 공공예술을 진행하고요. 레고가 지닌 형태를 이용해서 대화형 점자 작품 등으로 백남준 아트센터 등에서 전시하며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앵커]
제이문 작가의 작품이 궁금한데요.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2020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전시되었던 '오즈의 마법사'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면서 당시 관람객이 꼽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3.5m, 가로 3m의 대형 작품인데요. 영화로 잘 알려진 오즈의 마법사 대사를 점자로 번역해서 커다란 작품으로 탄생시켰는데요. 그냥 보기에는 레고로 만든 추상적인 작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시각 장애가 있는 관람객들에게는 손으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됩니다. 제이문 작가는 뉴욕 생활 초창기에 엘리베이터 버튼에 있는 점자 표시를 발견했는데요. 당시에는 한국보다 미국이 장애에 대해 더 많은 지원을 준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었던 소수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면서 점자 패턴을 연구하기 시작하는데요. 레고 하나하나 모듈을 결합하는 부분이나 촉각적인 특성 등이 점자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됐고, 이 레고를 장난감 이상의 것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게 된 겁니다.
[앵커]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확실한 작가라고 생각이 드는데, 제이문 작가가 넥슨의 고 김정주 회장이 후원한 작가였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넥슨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이었던 고 김정주 회장이 제이문 작가를 후원하기도 했는데요. 2017년에 소호브릭스(SohoBricks) 라는 회사를 창업한 후 제이문 작가가 레고를 작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후원했습니다. 이후 소호브릭스는 2020년에 매각되었지만, 그동안 제이문 작가의 개인전 및 다양한 작품들이 고 김정주 회장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김정주 회장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조건 없는 후원으로 제이문 작가는 경제적인 제약 없이 대작들을 만들 수 있었고 또 그 과정으로 인해 '오즈의 마법사' 같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하거든요. 제이문 작가를 통해 레고라는 소재가 단순히 장난감의 역할에서 한 발 나아가 점자 작품으로 활용되면서 더욱 폭넓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 참 멋졌는데요. 또 작가가 마음껏 작품 세계를 키울 수 있도록 후원한 고 김정주 회장의 안목과 후원도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앵커]
네, 오늘 레고 아티스트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올해도 지나가고, 이제 사이언스 IN ART도 마지막 시간인데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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