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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사람 속은?] 유행은 돌고 돈다…레트로 열풍의 심리학적 이유는?

2023년 06월 27일 17시 16분
■ 조연주 / 미디어심리학자

[앵커]
최근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레트로' 문화의 열풍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요. 유행이 돌고 돌기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서 레트로의 유행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한길 사람속은에서는 '레트로'에 열광하는 심리학적 이유와 함께 '무드셀라 증후군'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네 안녕하세요

[앵커]
단순히 오래된 옛것으로 인식하고 좋아하는 게 아닌 새로운 유행이자 트렌드로 인식한다. 이게 바로 레트로인데요. 레트로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나요?

[인터뷰]
네. 요즘 음악과 패션, 음식, 문화, 미디어콘텐츠까지 레트로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최근 떡이나 약과 같은 전통 간식의 매출이 늘고 있는 이유가 ‘할매니얼’ 열풍 영향인데요. '할매니얼'은 ‘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로, 젊은 세대에 스며든 어르신 감성의 트렌드를 일컫는 말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약과가 인기를 끌며 품절사태에 예약구매까지 이르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 전통 간식들이 요즘 세대 취향에 맞게 재탄생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레트로 열풍의 핵심은 재해석과 재탄생입니다. 새로움 속에서 익숙한 것이 느껴지는 옛것과 새로움의 융합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중요한 요소인데요. 옛것에 대한 향수에만 기대지 않고, 지금 시대 기호에 맞게 새로워져야 진정한 레트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풍미했던 시대의 분위기와 감성이 현재 시대에 맞게 잘 녹아져야 하는 거죠. 레트로의 성공은 현세대에겐 새롭고 기성세대에겐 지난날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느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매 시대마다 과거는 있었을 텐데요. 지금 이 시점에서 레트로가 유행하는 심리학적 원인이 있을까요?

[인터뷰]
심리학적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경제위기입니다. 인간은 어떤 위기를 느끼게 되면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하는데요. 경제가 어려울 땐 지금보다 더 힘들었지만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지난 시간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합니다. 그런 향수는 현재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감정적 해독제 역할을 하는데요. 그래서 경제위기가 고조될수록 레트로의 강세 현상이 반복된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는 사라져 가는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신의 레트로가 절실한 상황인데요. 옛것의 익숙한 것에는 추억이 서려 있고, 그것이 주는 독특한 위로가 있습니다. 삶의 리듬이 너무 빨라서 불안한 마음에 안식을 주는 안락함도 느낄 수 있고요.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현재 시대에서 느낄 수 없는 정서를 소환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첨단 기술로만 살아갈 순 없는데요. 그래서 레트로를 통해 옛것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음미하며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는 것입니다.

[앵커]
경제위기와 사라져 가는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이 원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요. 레트로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용어가 있다고요?

[인터뷰]
네, 첫 번째는 '회고 절정'이라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 가능한데요. 회고 절정은 노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을 때,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의 기억이 가장 많이 회고되는 현상입니다. 지금 열풍이 불고 있는 90년대는 현재 4·50대들에게 청소년기부터 어린 성인기 사이였죠.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열광했던 90년대의 문화가 다시 돌아왔으니 기쁘고 신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2·30대들이 나이가 들어 2050년쯤이 된다면 회고 절정에 의해 2020년대의 문화가 '복고'로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입니다. 레트로는 과거의 좋은 기억만 떠올리려고 하는 인간의 심리를 반영합니다. 사람이 과거 일을 회상할 때 나쁜 일은 빨리 지우고, 좋은 일만 기억하려는 기억 왜곡 현상을 일컫습니다. 이런 인간의 심리 때문에 사람들은 레트로 아이템을 만나면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참고로 '무드셀라'라는 어원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가장 오래도록 생존한 인물인 므두셀라(Methuselah)에서 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하는 성향을 빗대어 설명한 것이죠.

[앵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굉장히 행복한 기억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텐데요. 자꾸 이렇게 행복한 기억만 되뇌는 이유가 뭘까요?

[인터뷰]
방금 말씀드렸던 무드셀라 증후군이 좋은 일만 기억하려는 기억 왜곡 현상이라고 했는데요. 이는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심리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퇴행 심리로 볼 수 있습니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과거에는 잘 나갔지만, 현재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요. 이것이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심리이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심리 상태인 것 같지만 심리 전문가들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만을 떠올리며 사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이런 심리가 삶에서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주는 희망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도피심리라고 해서 부정적 일줄 알았는데,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희망적 요인이 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 부탁합니다.

[인터뷰]
영국의 사우샘프턴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진행했던 무드셀라 증후군 관련 실험이 있는데요. 실험에 참여한 60여 명을 2개의 집단으로 나눈 후, 한 집단은 과거의 즐거웠던 시절을 병적으로 자주 기억하는 무드셀라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로 구성하고 나머지는 매사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철한 사람들로 구성했습니다. 두 집단에 자연재해와 관련된 책을 읽게 했는데요. 책의 내용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비극 같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슬픔과 낙심이 담긴 부정적인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두 집단의 심리적 반응을 살펴봤더니, 무드셀라 증후군에 걸린 집단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비해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유대감도 이어가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서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비관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울적한 마음을 극복하는데 무드셀라 증후군이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과거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나간 옛 기억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것도 무드셀라 증후군과 연관이 있을까요?

[인터뷰]
무드셀라 증후군은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리인데요. 아무리 냉철한 사람이라도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을 조금씩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 기억은 편집이 잘 되어 있을수록 아름답게 느껴지는데요. 추억 속 사진을 보면 사진에 담겨있는 건 찰나의 순간입니다. 과정에 있던 일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결과만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기억은 우리가 경험한 모든 순간이 아니라는 거죠. 처음에 얘기했던 레트로도 결국 즐거운 추억이자 기억입니다. 많은 기업에서 레트로를 마케팅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데요. 여기서 포인트는 옛 기억이 아름답게 느껴지려면 추억을 불러일으키되 과거의 현실과 직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좋은 기억에서 즐거움의 원천을 찾고 싶은 것이지, 그때의 현실과 직면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앵커]
그런데 추억은 불러일으키되 과거의 현실과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심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첫사랑과 싸이월드가 있습니다. 첫사랑을 기억할 때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아련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데요. 서툴고 미성숙했던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싶어 하지는 않죠.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국내에서 확산되기 전까지 인터넷 인구의 70%가 이용하며 '전 국민의 온라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던 싸이월드 역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으며 부활을 시도했는데요. 싸이월드에는 많은 추억이 담겨있지만, 그 시절의 감성과 자신의 모습이 오글거려서 민망하다는 얘기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레트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추억으로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통해 오늘 살아갈 힘과 즐거움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앵커]
말씀 해주셨던 것처럼 행복했던 기억을 벗 삼아서 미래에는 또 다른 레트로가 될 오늘을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연주 미디어 심리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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