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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 박서보 화백 이야기

2022년 12월 09일 17시 25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대가 '박서보'화백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일명 '손의 여행'이라 일컬어지는 묘법 회화를 추구한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 '박서보' 화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랜만에 국내 작가 이야기를 해보는 것 같은데요. 박서보 화백, 어떤 작가입니까?

[인터뷰]
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박서보 화백은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단색화 열풍에 크게 이바지했고 또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이기도 합니다. 박서보 화백은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 후 홍익대 미대 교수와 학장을 지낸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또 한국미술협회에서 부이사장과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는데요. 한국 미술의 선두에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1958년에 현대미술협회에 속하면서부터 앵포르멜 운동의 선봉장에 섰고요. 1960년대에 들어서며 파리 대회에 참가해 기존의 서양문화에 맞서는 '원형질'시리즈를 작업하고, 60년대 중반에는 '허상'시리즈를, 또 1970년대부터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묘법' 시리즈를 전개합니다. 파리비엔날레와 베니스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미술 행사에 참여하며 인지도를 쌓았고요. 국내에서는 대통령 표창과 더불어 은관문화훈장,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기도 하면서 국내외에 널리 이름을 알립니다.

[앵커]
박서보 화백이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라고 하셨는데, 앵포르멜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시죠.

[인터뷰]
'앵포르멜'이란 영어 'informal'의 프랑스식 발음으로 추상미술의 일종인데요, 기하학적인 형태의 기존 추상미술이 아니라 비정형적이고 주관적인 미술을 뜻하는 하나의 추상미술 사조입니다.

시간적 배경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프랑스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의 미술계에서는 앵포르멜과 반대로, 기하학적이고 정형화된 일명 '차가운 추상'이 주를 이뤘는데요. 기하학적인 형태를 떠올려보면 뭔가 계산적이고, 많은 것을 생략한 듯 함축적인 느낌이 납니다.

즉, 기하학적이고 정형화된 형태가 아니라 공간이나 재료의 질감 등에 집중하자는 의미로 보면 됩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장 뒤뷔페가 있고요, 국내 최초의 앵포르멜 작가로는 박서보 화백이 손꼽힙니다.

[앵커]
그런가 하면 박서보 화백이 20대 때 '반국전' 을 선언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반국전, 무엇인가요?

[인터뷰]
네, 먼저 '국전'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당시에 미술계에는 신진작가들이 쉽게 말하면 '데뷔'를 하거나 기성 작가들이 작품을 알리는 중요한 통로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인데요, 이것을 줄여서 '국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부분 작가는 이 전람회를 통해서 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권력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요. 박서보 화백은 1956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이 '국전'에 저항하는 '반국전'을 선언합니다.

박서보 화백은 반국전 선언을 회상하면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는데요. "국전의 작품들은 한마디로, 이름만 떼면 모두 한 사람의 그림 같았다. 다양화가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존의 이념도 다양화되고, 반대 의견도 제시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때의 일 때문에 이후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억울한 일도 많았다고 하지만 박서보 화백의 신조가 '변하지 않으면 반드시 추락한다.'거든요. 한국 미술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반국전'을 선언하게 됩니다.

[앵커]
한국 미술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던 작가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면 박서보 화백의 대표적인 작품은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네, 아무래도 '묘법' 연작이 박서보 화백의 대표적인 작품이죠. 화백의 쉼 없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캔버스가 채워지는 작업입니다.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자아 성찰의 결과물이기도 한데요. 이 묘법 시리즈는 작업 시기를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기도 합니다. 1970년대의 초기 묘법은 캔버스 위에 연필 등으로 선을 꾸준하게 긋는 행위 즉 스케치와 드로잉이 특징이고요, 이런 반복적인 행위에 무위자연의 이념을 담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조금 더 본격화되는데요, 특히 '한지'를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한지'라는 재료가 지닌 물성을 활용하는데요. 물감에 젖은 한지를 눌러 압력을 가하고요, 이때 밀려난 한지의 형태를 마치 길 다란 선처럼 잡는 작업을 합니다. 그렇게 반복되어 만들어지는 게 바로 '묘법'입니다.

[앵커]
울퉁불퉁한 모습을 무엇으로 표현 했을까 싶었는데 바로 한지 였군요. 박서보 화백이 이 작업에 '무위자연'을 담았다고 했는데, 어디서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나요?

[인터뷰]
박서보 화백은 왜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에 '나를 비우기 위함'이라고 답했습니다. 화폭 위에 '선'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온종일 적어도 100번 정도의 선을 긋는다고 하는데요. 이 선을 어떻게 긋느냐면, '무심'이라고 합니다. 무심하게 온종일 선을 긋는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과정을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박서보 화백은 자신을 채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비우기 위한 과정인 겁니다. 이런 '무심'한 행위가 반복되면 경지에 이르고, 그것이 곧 무위자연으로 이어지는 거죠.

[앵커]
자신을 채우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비우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에서 예술가의 느낌이 느껴지는데요. 박서보 화백이 최근에 협업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협업 사례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네, 먼저 제가 관람하면서 큰 영감을 받기도 한 전시인데요. 박서보 화백과 프랑스의 대표적인 조명 회사인 '세르주무이'가 협업한
'세르주무이, 박서보의 색채를 입다' 라는 전시였습니다. 이 전시는 프레인 빌라에서 진행됐는데요, 아쉽게도 지금은 마감됐습니다만 이 전시에서 세르주무이와 박서보 화백의 협업작품이 세계 최초로 공개돼 굉장히 이슈였죠.

세르주무이는 20세기 대표적인 금속 공예가이자 조명 디자이너로 약 10여 년의 시간 동안 짧고 굵게 디자인계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세르주무이의 조명에 박서보 화백의 색채를 입히는 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앵커]
저도 이 전시에 다녀왔는데요. 세르주무이의 특유의 클래식하고 독특한 형태의 조명과 박서보 화백 특유의 세련된 색채가 만나서 정말 아름다웠던 전시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박서보 화백의 협업 하면 이런 협업도 있지만 패션 협업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최근에는 루이비통과의 협업으로 장안의 화제죠. 현대미술 작가들과 협업하는 '아티카퓌신 프레젠테이션' 프로젝트에서 올해, 박서보 화백과 더불어 우고 론디노네, 다니엘 뷔랑 등과 협업을 진행했는데요. 동시대 핫한 작가들만 모은 것 같습니다.

박서보 화백과 협업한 '카퓌신 백'의 '카퓌신'은 1854년에 뇌브 데 카퓌신 거리에 오픈했던 루이비통의 첫 매장 이름을 딴 것이고요.
이 카퓌신 백에 박서보 화백의 '묘법' 연작 중 2016년 작품을 기반으로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품 자체가 마치 '묘법' 작품을 입체적으로 옮겨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박서보 화백은 이 밖에도 국내외 유수의 브랜드와 꾸준한 협업을 진행해왔는데요. 또 다른 묘법 작품 '묘법 No. 170903'을 와인 레이블에 담은 ‘부커 더 원 리저브 아트레이블'도 와인 애호가들에게 큰 화제였고요. 그 밖에도 다양한 브랜드와 활발히 협업하고 있습니다.

[앵커]
조명, 의류, 와인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데요. 그런데 박서보 화백의 작품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나요?

[인터뷰]
네, 박서보 화백의 작품은 기지재단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 기지재단의 기지는 기개와 지혜를 의미하는데요. 기지재단은 박서보 화백이 낸 재원으로, 2019년에 설립된 비영리 재단입니다.

박서보 화백의 작품 관리와 관련 자료들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고, 여러 협업을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인 박서보 화백의 긴 작업 인생을 조명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박서보 화백과 기지재단이 sns 계정을 통해서 다양한 소식을 알리고 있기 때문에 소식이 궁금하신 분들은 틈틈이 계정을 살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네, 저도 팔로우 하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평소 일상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오늘 '박서보 화백'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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