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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Art] 입체주의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 이야기

2022년 11월 25일 16시 48분
■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입체주의 창시자로 많은 명화를 남긴 아티스트 파블로 피카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죠.

오늘 '사이언스 in Art'에서는 20세기 최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에 대해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오늘도 박수경 디렉터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드디어 피카소를 다루게 되는군요.

많은 사람이 예술 분야에 관심이 없더라도 피카소라는 이름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것 같은데 파블로 피카소 어떤 사람인지 먼저 소개 해주시죠.

[인터뷰]
아마 이 아티스트는 모르는 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의 예술가죠. 파블로 피카소입니다.

피카소는 스페인 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작가인데요. 20세기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피카소는, 페인팅뿐만 아니라 판화와 도예, 연극 무대 연출까지 다방면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또, 입체파 운동을 이끌기도 했는데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 등이 있습니다.

[앵커]
말씀해주신 아비뇽의 처녀들과 게르니카 좋아하시는 분들 굉장히 많으실 것 같은데요.

피카소의 성장 과정은 어땠나요?

[인터뷰]
파블로 피카소는 어린 시절, 전형적인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였다고 하는데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 덕분인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 재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14살 때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 입학, 이후에는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지만 두 학교 모두 적응이 어려웠다고 하고요.

17살 때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19살이 되던 1900년에,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는데요. 이듬해에 몽마르트르에서 자신과 뜻이 맞는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르누아르와 모네 등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으로부터 크게 영감을 받고요.

또 고갱과 고흐의 작업에서도 영향을 받으면서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지냈지만요, 20살의 나이로 처음 열게 된 전시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인지도를 쌓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피카소는 파리의 화려한 모습 뒤의 그늘에 주목했는데요. 질병과 빈곤 등에 주목하며 작품의 소재로 삼습니다.

청색을 주로 사용했다고 해서, 피카소의 '청색 시대'라고 부르고요. 이후에 장밋빛 시대를 맞이하면서 밝은 색감으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또 조르주 브라크와 만나면서 입체주의 사조를 창안하게 되고요. 전쟁의 비극에 주목해 작품에 담기도 하는데요. 도예와 조각 등 다양한 시도도 했기 때문에, 피카소의 작업은 시기에 따라 분류하기도 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청색 시대'대한 설명 부터 들어볼까요?

[인터뷰]
피카소의 '청색 시대'라고 하면 대략 1901년부터 1904년까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시기에 피카소가 어두운 푸른색을 주로 사용해서 작업했는데요. 대부분 파리에서 그려진 작품들이지만, 영감은 스페인에서 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작품을 보면 대체로 암울한 느낌이 있는데요. 당시에 피카소의 절친했던 친구인 '카를로스 카사게마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 일로 인해서 크게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후의 작업에서 줄곧 짙은 푸른빛을 사용하게 되고요, 파리의 매춘부나 알코올 중독자 등의 대상들을 그리게 됩니다.

[앵커]
저도 피카소의 푸른색 색감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차가운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청색 시대에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저는 이 시기의 작품 중 '늙은 기타리스트'라는 작품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요.

바르셀로나 거리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노인을 그린 작품입니다.

1903년에 그려졌는데요, 청색 시대 작품답게 전반적으로 어둡고 푸른 색감이 돋보이죠.

화폭 안에 노인의 신체가 거의 가득 차게 그려져 있고요.

갈색빛의 기타가 캔버스의 중심부에 묘사되어있습니다.

우울한 음악가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데요,

눈으로 보기만 해도 처량한 음악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은 작품입니다.

[앵커]
뭔가 보기만 해도 물속에 들어 있는 것 같다거나 혹은 어떤 추위가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네요.

앞서 피카소의 작업은 시기에 따라 색감에 따라 구분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청색 시대 이후에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인터뷰]
칼같이 딱 잘라서 나눌 수는 없지만, 작업의 변화에 따라서 대략적인 시기로 분류를 하는데요, 1901년부터 1904년까지가 청색 시대라면 1904년부터 1906년까지를 장밋빛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 또한 피카소의 작업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는데요. 몽마르트르에 본격적으로 정착해 생활하던 시기로, 가난과 고독 등 우울한 색조와 주제를 다뤘던 청색 시대보다 유쾌하고 밝은 색감을 사용했던 시기입니다.

이때 피카소의 작품에는 광대나 무대 위 공연 등이 그려졌는데요.

주로 붉은색과 주황색, 분홍색 등 화려한 색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때 피카소가 연애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또 피카소가 아프리카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약 1906~7년 정도부터 1909년까지는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시기로 분류되는데요, 아프리카의 원시 미술과 전통적인 문화, 예를 들면 가면이나 조각 같은 것들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이 시기에 바로 대표작 중 하나인 '아비뇽의 처녀들'이 그려지기도 했는데요.

피카소는 이 기간 이후에도 아프리카 미술품을 수집하고 꾸준히 그리기도 합니다.

[앵커]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아프리카의 영향 받은 시기 등도 있지만 피카소 하면 입체파를 개척한 작가로 유명하잖아요.

피카소가 입체파를 개척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인터뷰]
맞습니다. 피카소의 작업 인생에서 특히 1908~9년부터 입체파의 개척자로 활약하죠. 큐비즘이라고도 하는데요, 조르주 브라크라는 또 다른 예술가를 만나서 함께 입체파 운동을 전개합니다.

이 입체파 사조는 분석과 합성, 두 가지 단계로 구분하는데요.

분석적 입체파는 피카소가 이 운동을 전개하던 약 4년 정도로 보는데요.

어떤 형태를 해체해서 기하학적이고 날카로운 단색조의 면면들을 분석하고 재조합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입체파의 특징이 바로 동시에 여러 각도에서 사물을 본 것을 재배치한 것이거든요.

또, 합성 입체파의 경우에는 기존의 입체파가 발전된 형태인데요.

미술에서 콜라주를 처음으로 사용해 유의미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에 벽지나 신문 등의 일부를 자르고 조각들을 붙이는 등의 콜라주를 시도하게 됩니다.

또, 피카소는 이 때 기타나 파이프 같은 간결한 물체를 소재로 해서 페인팅과 콜라주를 접목해 작업합니다.

[앵커]
입체주의, 그러니깐 정확한 용어로 '큐비즘'이라고 하더라고요. 피카소의 가장 유명한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피카소가 범죄에 연루된 적도 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미술계와 대중이 깜짝 놀란 사건이 있었죠.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를 훔친 용의자로 지목됐었는데요. 1911년 6월에, 루브르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집니다.

24시간이 지나도록 박물관 측에서는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크게 유명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죠.

도난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루브르는 폐쇄되고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국경을 봉쇄하기도 하는데요.

이 사건의 용의자로 다름 아닌 피카소가 지목됩니다.

결론적으로 피카소가 진범은 아니었다고 하고요, 진짜 범인은 루브르에서 근무하던 빈센초 페루자였습니다.

이 해프닝 때문에 '모나리자'가 한층 더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앵커]
누명을 벗게 돼서 또 모나리자가 돌아오게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앞서 피카소의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해주셨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또 있을까요?

[인터뷰]
아무래도 이 작품을 빼놓을 수 없죠.

바로 '게르니카'입니다.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인 장 미셸 바스키아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술관에서 보며 컸다는 그 작품이기도 한데요. 세로 약 4m, 가로 약 7m를 넘는 대작으로, 1937년에 그려졌습니다.

바스키아 외에도 많은 예술가에게, 또 대중들에게 영감을 준 '게르니카'는 검은색과 회색, 흰색 등의 무채색으로 그려졌는데요.

화면 속 소재들을 보시면 피를 흘리는 말과 황소, 또 비명을 지르는 듯한 여인과 신체가 절단된 인물 등이 묘사되어있습니다.

언뜻 봐도 혼란스럽고 또 비극적인 모습인데요.

이 작품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를 배경으로 했고요.

스페인 내란 중에 독일 비행기가 이 마을을 폭격하면서 2천여 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고 부조리함을 느껴 약 2개월의 시간 동안 이 작품을 그리는데요.

전쟁으로 인해 피해 겪은 인물들로 적나라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투우를 함께 그리면서 비극을 은유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아버지가 하신 말씀 중에 ‘예술가는 언제나 그늘의 앞에서 앞장서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피카소가 총 대신 붓을 들고 작업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 바로 그런 맥락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앵커]
피카소의 작품 가운데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린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도 있잖아요.

예술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이언스in아트' 박수경 디렉터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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