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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달인] 세계 1등 연구하려면 축적의 시간 필요…김병석 건설기술연구원장

■ 김병석 /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한반도인프라포럼 대표회장

[앵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지만, 그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가 나오려면, 연구가 축적되는 시간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슈퍼콘크리트를 16년 넘게 꾸준히 연구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김병석 건설기술 연구원장인데요. 오늘 과학의 달인에서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원장님께서는 지난 84년에 건설기술연구원에 입사해 벌써 37년째 근무하고 계신데요. 평생을 연구원과 함께한 셈이죠. 지난 4월, 15대 원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공채 출신의 첫 원장이 되셨다고 들었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들려주시죠.

[인터뷰]
말씀하신 대로 저는 1984년에 공채2기로 입사해서 37년간을 근무해왔습니다. 원장 임기를 마치는 3년 뒤면 40년을 근무하는 셈입니다. 기관장에 부임하면 임기 3년간 추진할 주요 경영계획을 3개월 이내에 수립해야 하므로, 이러한 임무 달성을 위한 경영 혁신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철학 중 하나가, 많은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연구원 일에 열심히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몇 사람의 지혜보다는 많은 사람의 지혜, 즉 집단 지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대면을 통한 참여와 소통은 어려우므로 화상회의와 온라인 토론방을 통해 집단지성 활용과 소통을 주로하고 있고, 이를 위한 인프라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있습니다.

[앵커]
취임하신지 얼마 안 되셔서 한창 바쁘실 텐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은 슈퍼콘크리트 분야의 대가시잖아요. 기존 콘크리트랑 슈퍼콘크리트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인터뷰]
일반 콘크리트는 시멘트, 모래, 자갈을 사용해서 만들지만, 슈퍼콘크리트는 시멘트, 모래, 마이크로 재료, 나노 재료, 쇠로 된 강섬유나 고분자 인공 섬유 또는 자연 섬유를 이용해서 만듭니다.

슈퍼콘크리트는 장점이 많은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일반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5배 이상의 초고강도이고, 물처럼 흘러서 작업성이 좋으며, 수명이 200년 이상으로 초장수명입니다. 물론 겨울철에 도로에 뿌리는 제설제, 바닷가 구조물에서 철근 부식을 일으키는 염분 등 유해한 화학성분에 대한 저항성도 매우 우수합니다.

그리고 슈퍼콘크리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장강도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 때에 따라서는 아예 철근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사용하더라도 일반 콘크리트보다 철근 사용량을 50%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울릉도에 건설한 리조트가 있는데요, 이 건축물은 슈퍼콘크리트를 이용해 아예 철근 없이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무철근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벽두께도 일반 콘크리트의 1/3 수준인 12cm로 매우 얇은데요. 철근도 넣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곡면을 만드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시멘트 1톤을 만드는 데 이산화탄소가 0.93톤, 철근 1톤당 2.54톤 정도의 이산화탄소가 나오니까 슈퍼콘크리트를 사용하면 탄소 발생량을 50% 이상 줄일 수 있어서 탄소중립 실현에도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앵커]
한 마디로 모든 면에서 기존 콘크리트를 월등히 뛰어넘는 콘크리트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실제로 국내외 건설 현장에서 많이 쓰이고 있나요?

[인터뷰]
네. 슈퍼콘크리트는, 세계 최초의 콘크리트 사장교인 춘천 대교와 앞서 이야기했던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건설에 사용됐고요, 현재 공사 중인 고덕대교는 콘크리트 교량으로는 교각 사이의 거리가 세계에서 가장 긴 540m로 설계됐는데, 이는 슈퍼콘크리트가 적용된 덕분에 가능한 겁니다. 해외에서도 우리 슈퍼콘크리트를 많이 적용했는데요, 한국기술로 미국에 건설한 최초의 교량인 '호크아이 교량'이 있고요. 미얀마와 베트남 등 국내외 25개 현장에 적용되었습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슈퍼콘크리트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가축용 축사에 슈퍼콘크리트를 적용하면서 건물형으로 바꾼 스마트 애니팜 기술이 완료되어 국내 대기업 등 몇 군데 시범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물류 창고와 차도 블록, 건축외장재 등에도 적용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앵커]
국내외에서 정말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군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원장님의 슈퍼콘크리트 연구 성과는 장기적인 국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오히려 '중복연구'를 지원하신다고요?

[인터뷰]
제가 실용화에 큰 성공을 거둔 연구가 콘크리트 박스거더 교량, 철도, 슈퍼 콘크리트 세 영역인데요, 모두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최소한 10년 또는 15년 이상을 한 영역을 계속 파고들었다는 것입니다. 국내 수준에 맞는 논문만 쓰고 특허 등록만 하려면 5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가 되려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려면 15년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간 같은 분야의 연구를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중복연구 금지’라는 불문율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연구자라면 누가 똑같은 연구를 합니까? 같은 영역의 연구를 발전시켜가면서 계속하는 것이지요. 제가 해보니까 5년 정도 하면 국내에서 알아주고 10년 정도 하면 국제적으로 알아주고 세계 최고가 되려면 한 15년은 해야 합니다. 이것 하다가 저것하고 바꿔 다니면 절대 세계 최고는 못 됩니다. 세계 1등이 되고 실용화가 되면 더 투자해서 계속 발전시키고 시장 점유를 오히려 더 높여나가야죠. 이 상식이 잘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중복연구를 해야 한다’고 더 이야기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며, 목표도 높게 설정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축적의 시간을 담보할 수 있는 연구자의 자세와 함께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예산의 20% 이상을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연구, 세계 최고를 유지하는 중장기적 ‘중복 연구’에 투자하겠다는 경영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앵커]
5년 정도 연구하면 하면 국내에서 알아주고, 10년 정도 하면 세계가 알아주고, 15년은 해야 세계 최고가 된다는 거군요. 슈퍼콘크리트도 20년 가까이 한 연구에만 매진했기 때문에 세계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이런 세계 1등 성과를 앞으로도 많이 나와야 할 텐데, 연구원에서 진행 중인 연구는 어떤 게 있습니까?

[인터뷰]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회문제 해결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연구와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기초·원천기술 개발입니다. 연구원은 국민의 안전과 기후 위기와 관련된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먼저, 모듈을 접었다 펼 수 있어 평소에 보관해두었다가 감염병·홍수 등 재난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모듈을 펴서 환자·이재민 등을 수용하는 시설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건설재료를 개발하고 건물 외벽에 적용해 건축물 화재 위험도를 낮추었습니다. 이 외장재가 화재 확산까지 버티는 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서 탄소를 적게 배출하고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연료 기술로 오염물질을 줄이고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미래를 위한 기초·원천 기술 개발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20분 만에 갈 수 있는 초고속 미래교통수단인 ‘하이퍼루프’ 실현을 위해 슈퍼콘크리트를 개량한 초고밀도 콘크리트 튜브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자율주행을 앞당길 수 있도록 안전하고 똑똑한 도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에 기지를 건설하려면 현지 재료를 활용한 건설기술이 필요하고 달과 유사한 실험 환경이 필요한데, 이를 재현할 수 있는 챔버 운영기술을 세계 최초로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기지 건설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크고 작게 느꼈던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에 슈퍼콘크리트가 정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군요. 그런가 하면 원장님께서는 남북인프라 연구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남북 교류가 멈춘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연구가 필요할까요?

[인터뷰]
지금은 봄이 오기 전에 농사지을 씨앗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농부처럼 이성적으로 차분히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측면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로 남북한 간에 차이가 나는 건설 기준과 용어를 조율하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자동차와 열차가 남북한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인프라 기준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교량은 대부분이 43.2톤 트럭 하중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는데 북한은 30톤 수준입니다. 물론 철도 기준도 다릅니다. 남북한의 건설용어도 차이가 큰데요, 저희가 분석한 바로는 40% 정도의 용어가 서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북한에는 고마르까 세멘트’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두 분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고강도 시멘트’라는 뜻입니다. 이런 건설 용어 통일 작업도 필요합니다.

둘째로 북한 특화 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북한과의 협력과 시장 개방을 대비해서, 북한의 혹한 환경도 고려하고 급속시공이 가능하면서 기존 기술보다 가격 경쟁력도 있는 혁신 기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중국·유럽·미국·일본 등과 경쟁하려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건설기술연구원과 국내의 다양한 기관들이 미리 검토하고 기술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원에서는, 북한의 고속도로 수준 도로에 필요한 교량 특화기술을 지난 2년간 개발했는데, 기존 기술보다 공사 기간도 단축하고 동절기 공사에도 유리하면서 공사비도 13% 절감시키는 신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 도로포장이나 철도 관련 기술, 주택 관련 기술, 수자원 환경 기술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서도 준비할 계획입니다.

[앵커]
미리 준비해야 남북 교류가 본격화됐을 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앞서 원장님을 최초의 공채 출신 원장이라고 소개했는데요. 막내 직원에서 원장까지 올라오셨기 때문에, 건설기술연구원이라는 조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구원을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인지 말씀해주시죠.

[인터뷰]
출연기관은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조직의 역할과 임무에 더욱 충실해야 하고,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대명제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논문만 잘 쓰고 특허 등록만 잘해도 국가적으로 기여하는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기술을 개발하여 국내 현장에 적용하고, 해외에서도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실용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논문 많이 쓰고 특허 등록만 많이 해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거든요. 이것은 건설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출연기관들이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런 평가제도를 시대에 맞게 혁신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연구조직도 혁신하고자 합니다. 기존 조직을 수직으로 그대로 두면서 수평적으로 주제에 따라 유연하게 모이는 클러스터를 추진합니다. 예를 들어서 모듈러 주택이나 모듈러 교량은 기술 특성이 유사한데도 토목은 토목대로 건축은 건축대로 정책은 정책대로 별도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내부에서 모듈러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모듈러 클러스터'라는 가상공간에 모이게 해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고 사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여러 가지 혁신들을 과거처럼 탑다운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대부분 참여하여 토론하는 형태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제도적으로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직원들이 연구원 일에 더 관심을 갖고 주인의식을 가져서, 기관의 발전과 혁신의 참관인이 아니라 주체가 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건설연의 임원은 저 혼자인데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고도 할 수 있죠. 보직자들도 임기가 길어야 3년 정도니까 임시 보직이고 직원들이 참주인이죠. 직원들이 참주인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설연에서 보람을 찾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경영목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더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슈퍼콘크리트 기술이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널리 활용될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건설기술연구원 김병석 원장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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