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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달인] 식물 뿌리가 장애물을 피하는 원리 찾았다…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효준 선임연구원

■ 이효준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앵커]
식물은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 땅 밑으로 성장합니다. 이러한 뿌리의 성장 방법이 단순히 수동적 반응인지, 적극적인 회피 반응인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식물도 인간의 촉각처럼 다른 물체와 접촉이 일어났을 때 물리적인 자극을 받아 적극적으로 장애물을 회피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분이 있습니다.

오늘 과학의 달인에서는 식물의 물리 자극에 대해 연구하고 계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 시스템공학 연구센터 이효준 선임연구원을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식물이 사람처럼 외부 자극을 느끼고, 또 대응까지 한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우선 어떤 원리로 식물이 외부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인터뷰]
네, 식물을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면 이른 시일 안에 식물 세포 속 칼슘 이온 농도가 높아집니다. 높아진 칼슘 이온은 세포 내에서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신호 역할을 하며, 또한 주변 세포에 신호를 전달해 칼슘 이온의 연쇄적인 농도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는 동물이 촉각이나 통각을 인식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칼슘 이온 농도의 변화는 식물 세포 내에서 다양한 신호를 생성합니다. 현재까지 이해하기로는 칼슘 이온의 농도 변화 속도나 양 등에 따라 다른 신호가 생기며, 이를 통해 터치나 상처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후 신호들은 식물 호르몬 등에 영향을 주어 결과적으로 식물의 성장이나 발달 등이 변화하게 됩니다.

[앵커]
식물도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이 자극을 느낄 수 있다는 건데요. 그럼 식물이 이런 물리적인 자극을 받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인터뷰]
터치와 상처는 서로 다른 반응을 일으킵니다. 먼저 터치는 식물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신호입니다. 식물은 성장 경로에 장애물이 있을 때 동물처럼 피해갈 수 없으므로 이를 우회하는 방향으로 성장합니다. 따라서 터치 자극을 느낀 식물은 줄기나 뿌리가 휘어지게 됩니다.

덩굴식물의 경우 오히려 장애물을 이용하기도 하는데요. 이들은 장애물을 만날 경우 장애물 반대쪽으로 휘어지지 않고 오히려 장애물 안쪽으로 휘어집니다. 이 현상이 반복되어 기둥과 같은 장애물을 감아 올라가는 모양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 식물은 바람이 부는 환경을 터치 반응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터치 반응이 지속해서 반복될 경우, 식물은 현재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따라서 식물은 바람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상부의 성장을 억제하고 최대한 땅에 붙어서 성장하기도 하고, 지하부를 강화하고 내부를 단단하게 강화해서 바람에 대응합니다.

반면 상처는 가장 대표적인 식물의 방어 신호입니다. 식물은 곤충의 공격으로 상처를 받을 경우 이른 시일 안에 방어 호르몬인 '자스몬산'을 합성합니다. 자스몬산은 식물 내에서 여러 방어 물질을 만들도록 하는데, 대표적으로 곤충의 소화 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이 있습니다. 소화하지 못하는 곤충들은 식물을 더는 먹지 못하고 영양 부족으로 죽게 됩니다.

[앵커]
높은 산 중턱에 있는 나무를 보면 바닥에 딱 붙어서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게 식물의 터치 반응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럼 본 주제로 들어가서, 이런 반응을 통해 밝혀낸, 식물 뿌리가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서 자라는 원리를 설명해주시죠.

[인터뷰]
네, 식물 뿌리는 바위나 돌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이른 시일 안에 칼슘 신호가 발생하고, 이는 '옥신'이라는 식물 성장 호르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옥신은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 호르몬이기 때문에 옥신이 뿌리 내에서 대칭적으로 축적되면 세포 성장 또한 대칭적으로 일어나 뿌리가 휘어집니다. 저희는 식물이 이 현상을 이용해 뿌리가 성장 도중 장애물을 만날 경우 즉시 옥신이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그로 인해 뿌리가 휘어져 장애물을 회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옥신이 어떻게 알고 한쪽으로만 이동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희의 다음 질문이었습니다. 옥신은 세포를 넘나들며 이동하는데, 이를 위해 특별한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단백질들을 연구자들은 ‘transporter’라고 부릅니다. 저희는 여러 종류의 ‘transporter’ 중에 뿌리의 장애물 회피와 관련된 단백질을 찾아내 장애물 회피 원리를 밝혔습니다.

[앵커]
뿌리가 장애물을 회피하는 과정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사실 뿌리는 흙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보이지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나요?

[인터뷰]
말씀하신 대로 흙 속에 있는 뿌리는 움직임을 관찰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연구자들은 뿌리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투명하고 단단한 ‘고체 배지’ 위에 식물을 올려놓고 키우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고체 배지에는 식물 성장에 필요한 양분이 들어 있어 식물을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저희도 이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추가로 장애물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뿌리가 성장하는 경로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30분에 한 번 사진 촬영하는 방식으로 약 12시간 동안 뿌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했습니다. 흙 속에서는 장애물이 너무나 많아서 뿌리의 장애물 반응과 일반적인 성장 반응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저희가 사용한 방법에는 뿌리의 성장 경로 상 장애물이 한 번 만 등장하기 때문에 구분하기 쉽고 따라서 연구에 적합합니다. 저희는 뿌리가 장애물에 닿는 순간을 기점으로 전후에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앞서 식물 성장 호르몬 '옥신'이 뿌리의 한쪽으로 이동해 휘어지게 된다고 설명해주셨는데요. 옥신은 원래 식물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인터뷰]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옥신은 대표적인 식물 성장 호르몬입니다.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데, 줄기에서는 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반면 뿌리에서는 억제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식물의 줄기가 빛을 받게 되면 줄기 내부의 옥신이 빛과 먼 쪽으로, 그러니까 그늘진 곳으로 이동합니다. 줄기에서 옥신은 세포를 길어지게 하므로, 그늘진 부분만 길어지고 밝은 부분은 길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줄기가 빛의 방향으로 휘어지게 되는 '굴광성' 현상이 나타납니다.

[앵커]
그렇다면 옥신이 없다면 장애물 회피 과정이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요?

[인터뷰]
옥신이 없다면 뿌리의 성장 속도에 의해 장애물에 눌리고 결국 꺾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식물의 경우 장애물의 존재를 빠르게 알아내고 옥신의 이동을 통해 장애물을 효율적으로 회피합니다. 이 반응으로 식물은 빠르게 장애물을 피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빨리 땅속 깊숙이 파고들어 식물을 지탱하고 물이나 양분을 흡수하게 됩니다.

[앵커]
지금까지 말씀해주신 것을 잠시 정리를 해보자면 식물 뿌리가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성장 호르몬인 '옥신'을 이동시켜서 적극적으로 장애물을 피하는 모습을 발견하신 거잖아요. 이런 연구결과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인터뷰]
뿌리의 장애물 회피 과정은 식물이 터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입니다. 식물은 자연환경에서 터치 자극을 인식해 장애물을 피하거나 기둥을 감아 올라가기도 하고 해충의 존재도 느낄 수 있으며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을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좁게는 식물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넓게는 식물의 성장 조절, 천연물의 합성 조절, 해충피해 저감 등 농업적 형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앵커]
오늘 식물에 대해서 신기한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요. 이 외에도 식물에 대해 새롭게 밝혀낸 사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인터뷰]
저는 터치뿐 아니고 상처 반응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식물은 상처를 받을 경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해충에 대한 방어 신호를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상처 부위를 봉합하거나 재생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상처 부위를 통한 외부 병원균의 침입을 막고 생존을 위해 세포를 재생하려는 동물의 특성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식물의 경우 세포의 재생 능력이 탁월하여 약간의 호르몬 처리를 통해 복제 식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를 '식물 재분화'라고 하는데, 이 현상은 오직 상처 부위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식물 재분화 연구에서 상처 신호의 역할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상처 신호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식물 재분화’에 필수적인 신호를 찾아냈습니다. 상처 부위에서만 나타나는 이 신호는 앞서 말씀드린 옥신이라는 호르몬 신호를 조절하여 상처 부위 인근의 세포가 초기 상태의 세포로 되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즉, ‘식물 재분화’ 현상이 왜 상처 부위에서만 발생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희는 더 나아가, 이 신호를 조절하는 방법도 발견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상처 부위가 아닌 지역에서도 ‘식물 재분화’를 유도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지속해서 추가 연구를 한다면, 앞으로 원하는 부위에 ‘식물 재분화’를 유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식물 연구에 이렇게 다양한 연구분야가 있는 줄 몰랐는데요. 이렇게 '식물 기초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터뷰]
세계 기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서 이상 기온, 미세먼지 등 다양한 환경 문제가 매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식량 자원이자 동물의 사료 자원인 식물은 성장이나 발달, 그리고 수확량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병/해충에 대한 농약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물 자체에 대한 연구 또한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초 연구를 통해 식물의 환경 변화에 대한 반응이나 적응, 또는 대응 방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것을 활용하여 변화된 기후에 적합한 식물을 개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앵커]
식물에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연구원님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인터뷰]
식물의 물리 자극에 대한 반응과 그 원리에 대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저는 앞서 말씀드린 터치나 상처에 대한 식물 내부 신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이들을 조절할 수 있는 핵심 요소를 찾고, 이를 통해 농업 형질의 개선이나 가치 있는 식물 개발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앵커]
오늘 식물의 뿌리가 장애물을 피해서 자라는 과정을 들어봤는데요. 식물의 성장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 시스템공학 연구센터, 이효준 선임연구원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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