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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S] 현대 의학의 초석이 된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

[앵커]
과학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궁금한 S' 시간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인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는데요,

인체를 연구해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해부학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현대의학의 초석이 된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을 지금 바로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이효종 / 과학유튜버]
안녕하세요! 과학의 모든 궁금증을 해결하는 궁금한 S의 이효종입니다. 궁금한 S와 함께할 오늘의 이야기 만나볼게요.

과거 르네상스 시대에 '인체'는 해부학자와 예술가의 공통 관심사였고, 해부 그림은 과학의 산물이자 동시에 예술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인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묘사하고 싶어 했는데요. 그래서 의사보다 더 인체를 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자신들 나름대로 인체 해부작업까지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해부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빈치가 인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좋은 예술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인체구조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다빈치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인체 구조 자체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30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하고 자세한 해부도를 남겼는데요. 특히 뼈와 근육의 구조에 관심이 많아 매우 정확하고 세밀한 골격과 근육의 해부도를 남겼습니다. 손의 구조에 대한 그림은 거의 완벽할 정도이며, 어깨 근육 역시 정확하게 그려냈다고 하네요.

그는 심장이 네 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는 것과 판막의 역할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다빈치는 심장 판막 작용을 설명하기 위한 모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가 남긴 자궁에 들어 있는 태아 그림은 그의 해부도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빈치는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해부학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다빈치는 자신의 해부학 연구 성과를 파비아 대학의 델라 토레 교수와 함께 출판하기로 계획했는데요. 하지만 토레 교수가 사망하면서 이 계획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빈치가 사망한 후 그의 수많은 원고는 많이 유실되었는데요. 그의 해부도 역시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가 죽은 지 200년 뒤였습니다. 그가 남긴 인체 해부서적이 예정대로 발간됐다면 의학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겠죠?

다빈치가 못다 한 위업을 이루고 새로운 의학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입니다. 베살리우스는 17세 때 1533년에 파리 대학 의학부에서 동물 해부법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인체 해부가 허용되었던 몇 안 되는 교육기관 중 하나였던 파리 대학에서 사체를 해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파리의 공동묘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의 뼈를 이용해 인체에 대해 연구했는데요. 이후 1537년에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명성이 높았던 파도바 대학에 들어가 이듬해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해부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베살리우스가 의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가 근대 해부학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인데요. 그때까지도 유럽의 의과대학에서는 고대 로마 시대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갈레노스'의 이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해부학 강의는 교수가 갈레노스의 의학 서적을 읽고 설명해주면 이발사기도 했던 외과의가 해부해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발사 외과의의 해부가 끝난 다음에 교수가 그 결과를 갈레노스의 해부학으로 설명해주는 것이죠.

그러나 인체 해부에 관한 지식이 외과의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베살리우스는 인체 해부를 이발사들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했는데요. 해부가 끝난 다음에는 해부한 내용을 상세한 해부도로 그려 학생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베살리우스도 당시 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던 갈레노스의 이론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축적된 해부학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1540년부터 갈레노스의 의학을 비판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는 자신의
해부 경험을 통해 로마법에 의해 인체 해부가 금지되었던 갈레노스가 인체를 해부하는 대신 개나 원숭이, 돼지 같은 동물을 해부하여 얻은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새로운 해부학 교과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요.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심장의 구조와 기능을 바로잡기도 했습니다. 갈레노스는 순수한 혈액을 나르고 있는 동맥은 좌심실에서 나와 허파나 뇌와 같이 위쪽에 있는 기관으로 가고, 정맥은 우심실에서 나와 위를 비롯한 아래쪽에 있는 장기로 간다고 설명했으며 우심실과 좌심실을 나누고 있는 벽에는 혈액이 통과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 있다고 했는데요.

이 이론은 1400년 동안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해부해 심장벽을 관찰한 베살리우스는 심장벽이 매우 두껍고 치밀해 피가 심장의 벽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데요. 베살리우스가 새롭게 밝혀낸 사실 중에는 아래턱뼈가 갈레노스의 주장과는 달리 두 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베살리우스는 직접 인체를 해부하면서 갈레노스의 잘못을 200여 개나 찾아냈습니다.

베살리우스는 인체구조에 대한 7권의 책 – 줄여서 '파브리카'로 부르는데요. 1543년 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파브리카는 이전의 어떤 책보다도 인체를 포괄적이고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새로운 해부학 용어를 사용했고 인쇄와 제본도 세련되고 완벽했습니다. 골격, 근육, 혈관, 신경, 생식기, 흉부, 뇌의 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663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으로 400여 장의 해부도를 포함하고 있는데요. 베살리우스의 해부도는 해부학적 사실을 상세하게 묘사한 구체적인 내용으로도 유명하지만,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예술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파브리카는 새로운 의학이 싹틀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는 면에서 의학에서의 혁명을 시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의학 교육 과정에 인체 해부가 정식 과목으로 도입되는 계기를 제공했고, 의사를 수준 높은 전문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파브리카 이후 유럽에서 해부학 관련 서적이 많이 출판돼 인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해졌는데요. 베살리우스가 해부를 통해 밝혀낸 새로운 사실들은 의학과 생리학은 물론 생물학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습니다.

기존 체계와 대립하는 의견을 냈기 때문에 베살리우스는 주변의 공격에 시달렸는데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가 궁정 어의를 제안했고, 베살리우스는 궁정 어의로 20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베살리우스는 모함을 받아 사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를 신임한 국왕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보내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궁금한 S'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르네상스 시대의 의학적 발견은 현대 의학의 초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궁금한 S'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과학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면 언제든 유튜브에 사이언스 투데이를 검색해주세요. 이상 궁금한 S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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