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훼영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한 주의 마지막인 매주 금요일, 영화 속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사이언스 레드카펫' 오늘도 양훼영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기자]
'사이언스 레드카펫' 양훼영 입니다. 오늘 만나 볼 작품은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입니다. 명량, 한산에 이은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자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키워드와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마지막 해전'입니다. 이 영화, 임진왜란 7년의 종지부이자 동북아 역사상 최대의 해상 전투,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이 죽음을 맞이한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거기에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순신의 죽음까지 담아야 하는 부담 속에서도 영화는 지난 10년의 여정을 묵묵히 마무리해냅니다.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이 지난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합니다. 도망치려는 왜군의 퇴로를 막고 섬멸하려는 이순신 장군과 달리 명나라 도독 진린은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려고 합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하는 전쟁이오]
[진정 저들이 쉽게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오?]
[기자]
하지만 왜군들은 철군을 핑계 삼아 이순신을 해하려는 계략을 꾸미죠
[우리가 승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가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
[기필코 지금 이순신을 없애야 합니다]
[기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이순신은 결국 500척의 왜군과 앞뒤로 대치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요
[오늘 밤이오]
[이곳 남해 노량에서 적들을 맞이할 것이오]
[기자]
멀리서 지켜보던 명나라 해군까지 참전하면서 동아시아 역사상 최대 해전으로 기록된 노량해전이 시작됩니다
[이순신이다]
[반드시 놈들을 열도 끝까지라도 쫓아서]
[발포하라]
[기어이 완전한 항복을 받아 내어야 한다]
[기자]
김한민 감독은 오래전부터 이순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죠. 그렇게 만든 첫 영화 '명량'은 한국 영화 사상 최다 관객인 1,761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 영화인 한산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개봉했음에도 726만 명 동원하며 '이순신 신드롬'까지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이자 마지막 영화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513만 명을 넘기면 '이순신 3부작'은 범죄도시에 이어 합산 3천만 명을 돌파하는 두 번째 시리즈 될 전망입니다. 올해 한국영화 중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사실상 모두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서울의 봄'의 흥행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노량이 개봉을 했기 때문에, 이 분위기 또한 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노량의 흥행 이유, 두 번째 키워드로 알아보겠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끝판왕 이순신'입니다. '아는 맛이 무섭다'라는 말처럼 '노량'이 보여주는 왜선을 격파하는 거북선, 그리고 조선 해군의 모습은 짜릿합니다. 게다가 이순식 3부작의 완결편이라는 점에서도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모을 만합니다. 단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군을 함몰시켰던 명량 대첩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기자]
거북선을 중심으로 학익진 등 정교한 해상 전투를 보여줬던 한산도대첩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기자]
그리고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까지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기자]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이순신 3부작, 10년 동안 이어져 온 대장정이 이제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했습니다. 최민식과 박해일에 이어 배우 김윤석이 마지막으로 이순신을 맡아 전쟁을 어떻게 끝낼지 고민하는 현명하고 어진 현장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김윤석 / 이순식 장군 역
[한 인물을 배우를 바꿔 가면서 그 역할을 하는 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김한민 / 감독
[캐스팅은 최상이었다]
[기자]
이순신 시리즈의 백미는 단연 해상 전투 신이죠, '노량'에서는 100분간 야간 해전이 펼쳐지는데, 조선과 왜, 명나라 3국 수군에서 이순신 장군으로 이어지는 원 테이크 장면은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생동감을 줍니다. 한산 때부터 VFX 기술을 도입한 김한민 감독은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사용했던 강릉 아이스링크장에 실제 크기의 판옥선을 만들어 촬영한 뒤 후반 작업을 통해 압도적 규모의 해전을 스크린에 구현해냈습니다. 무엇보다 전 국민이 아는 유언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를 담백하게 그려내 신파의 덫에서 벗어났습니다.
[인터뷰: 김한민 / 감독]
노량해전은 어떻게 보면 당시에 세계사적으로 아마 최고의 어떤 최대 대전의 해전이었고 그 해전을 통해서 이순신 장군께서 우리에게 남기려고 했던 메시지 이런 것들이 같이 느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만들려고 했던 작품입니다.
[인터뷰: 김윤석 / 이순신 장군 역]
(임진왜란을) 7년 동안 하고 난 뒤에 이 뒤를 어떻게 올바르게 끝맺음을 낼 것이냐 그리고 다시 또 이 강산에 왜군이 다시 넘어오지 않으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이냐 이 부분을 감독님하고 가장 많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앵커]
이순신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고 왔는데요. 어떤 과학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양훼영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저는 가장 기대되는 게 거북선이 등장하느냐 이건데, 이번 해전에도 거북선이 나오나요?
[기자]
네 영화에서는 거북선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노량해전에는 거북선의 참전 기록은 없는데요. 왜 이 같은 내용에 대해서 왜 거북선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기자 간담회 때 많이 질문이 나왔었는데, 감독은 "기록에는 없지만, 후대에 갈수록 거북선이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했을 때 계속 재건된 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조선 병사들에게 큰 의지가 될 수 있도록 거북선을 참전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역사적인 고증도 중요하겠지만, 이게 영화이니까 이순신 3부작, 마지막으로 거북선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서운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거북선이 영화에서나 박물관에서나 모습이 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기자]
네, 맞습니다. 당시 만들어졌던 거북선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데요. 대부분은 해전에 참전해서 부서질 때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거북선이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거북선에 대한 자료 또한 많지 않은 것도 문제인데요. 그래서 박물관이나 과학관은 물론 통영, 여수 등에 있는 거북선의 모습도 모두 다 조금씩 달랐던 겁니다. 그런데 이건 현재에 와서 뿐만이 아니라, 조선 후기 때도 비슷했다고 해요. 1793~1794년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신대현이 순조에게 작성한 상소문을 살펴보면 "이름만 거북선이지 다른 배와 다름이 없고, 사용하기 오히려 불편하다"고 적으면서 "앞으로 거북선을 만들거나 개조할 때는 충무 전서에 나오는 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썼는데요. 여기에 나오는 이충무공전서의 귀선도설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거북선 관련 기록 중 가장 자세한 것이라고 하고요. 이대로 만들어야 실제 거북선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거북선의 모습이 실제랑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겠네요?
[기자]
네, 그렇죠. 그래서 국내 연구자 중 한 명이 조선 후기 때 사용했던 거북선의 설계 자료를 연구해서 실제로 그 당시에 썼던 거북선과 가장 비슷한 모습에 실제 거북선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이충무공전서'의 '귀선도설'을 토대로 만든 건데요. 지금 보시는 게 1795년 통제영 거북선의 1/65 축소 모형입니다. 총 길이는 85척, 지금의 길이로 환산해보면 26.6m인데, 임진왜란 당시보다 1.3배 길어진 상태에 거북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알던 거북선과 3층 지붕 모습이 달라 보일 텐데, 지붕 전체가 둥근 형태로 철제가 박혀있는 모습을 우리가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복원을 한 거북선은 3층 갑판 중앙 부분에만 판자를 세우고 그 위로 둥근 지붕을 올린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해야 무게도 가볍고, 무게가 한쪽에 쏠려지지 않아서 배가 침몰할 가능성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이번 복원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거북선에는 총 182명 정도 탈 수 있었는데 1층에 조선 수군이 한 달 동안 먹을 군량미 61석이 함께 실렸을 거로 분석됐습니다. 거북선 2층 앞쪽에 대형 함포 3대, 3층 좌우에 24대 등 모두 31대의 포가 탑재됐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앵커]
영화를 보면 거북선 그 자체로도 굉장히 인상이 깊지만, 전투 장면에서 보면 거북선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강도도 꽤 인상이 깊었거든요? 원래 배 끼리 부딪히면 결국 양쪽 모두에 피해를 보게 되는 거 아닌가요?
[기자]
네, 맞습니다. 조선의 당시에 주력함이 판옥선이라는 배예요. 거북선은 사실은 특정 순간 돌파를 할 때 많이 썼던 거고, 주 해전에 가장 많이 참전한 주력 배는 판옥선이라는 배입니다. 왜군의 해상 전투방식 자체가 그 당시에 배를 가까이 붙여 상대편 배에 올라타는 근접전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거북선 같은 경우에는 올라가지 못하게 만든 거라서 거북선이 활용됐던 건데요. 거북선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가 주력함을 판옥선으로 이용했던 이유는 글자 그대로 판자에다 '층고를 더 높였다'라고 보시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적군이 배에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쉽게 올라탈 수 없겠죠. 그리고 지붕도 만들어 놓았다, 이런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실제로 옛날 해전에서는 '충파'라고 해서 고의적으로 부딪치는 일도 있고 접전을 하다 본의 아니게 부딪치는 일도 많았는데요. 그런데 일반 목선의 두께가 7cm인데 반해 판옥선은 두께가 13cm로 소나무를 사용해서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선의 판옥선이 배 끼리 부딪치는 '충파'라는 공격법에 최적화된 배인 거죠. 게다가 왜군의 배는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이지만, 조선의 판옥선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라 충돌했을 때 무너지거나 부서지는 경우가 덜 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판옥선이 강력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못을 꼽을 수가 있는데, 왜군 같은 경우에는 쇠못을 이용해서 배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판옥선은 이음새로 나무못을 활용했는데요. 딱 듣기에는 쇠못이 더 단단하고 좋을 것 같잖아요? 하지만 물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나무는 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음새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줘서 판옥선에 튼튼함을 더 올려주는데, 쇠못 같은 경우에는 바닷물이랑 만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녹스는 경우가 많아서 오랫동안 해전에 나가게 되면 배가 점점 더 약해지고, 충돌에 또 약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앵커]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파한 데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뿐 아니라 과학도 큰 몫을 했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양훼영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양훼영 (hw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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