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우주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공간과 시작을 알 수 없는 오랜 시간으로 인해 실체를 탐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죠.
직접 가볼 수 없는 우주를 파악하기 위해 빛이나 전파를 주로 이용하고 있지만,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할 때 발생하는 시공간의 파동, 이른바 중력파인데요.
우주의 본질을 알려주는 중력파와 그 미세한 파동을 잡아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치열한 노력을 오늘 <별소리 다 듣겠네!>에서 들어보겠습니다.
[이성호 / 천문연 천문우주기술센터 책임연구원]
안녕하세요. 서른세 번째 별소리를 전해드리게 된 이성호입니다.
1916년, 아인슈타인이 처음 예측하고 약 100년 만에 발견한 또 하나의 존재 오늘은! 시간과 공간을 흔드는 ‘중력파’에 관한 별소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Q. 중력파란 무엇이며 중력파의 발견이 오래 걸린 이유는?!
[이성호 / 천문연 천문우주기술센터 책임연구원]
네, 먼저 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할 때 발생하는 ‘시공간의 파동’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이란 어떤 질량을 가진 물체의 주변 시공간이 휘어서 작용하는 ‘힘’ 이라는 것이 알려졌죠?
이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하면 주변 시공간의 휘어진 상태가 바뀌면서 그 요동이 중력파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우주에서 가장 무거운 천체인 블랙홀과 그 블랙홀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중력파가 대표적인 사례로 널리 알려졌는데요.
그보다 가벼운 중성자별의 충돌이나 초신성 폭발과 같은 격렬한 운동에서도 중력파가 발생하고 은하와 은하의 충돌과 같은 훨씬 더 큰 규모의 운동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태양과 같은 평범한 별들이 서로의 주변을 공전하는 쌍성계에서도 중력파는 나오는데요, 다만 그게 너무 미약해서 측정하기 어려울 뿐인 거죠.
때문에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한 후 실제 관측에 성공하기까지 약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겁니다.
우리 태양보다 수십 배 무거운 블랙홀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매우 강력한 중력파에 의한 시공간의 요동이라고 해도 우리 지구에서 관측할 땐 수 km의 길이가 원자핵 하나의 1,000분의 1 정도밖에 변하지 않는 극도로 작은 변형이니까요.
Q. 그렇다면 중력파 검출 방법은?!
[이성호 / 천문연 천문우주기술센터 책임연구원]
네, 이렇게 미약한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했습니다.
레이저 간섭계는 하나의 레이저에서 출발한 빛을 두 개의 다른 방향으로 나누어 보낸 후 같은 거리에서 반사 시켜 되돌아올 때 두 레이저 빛이 같은 위상으로 겹쳐지면 더 밝게 증폭되고 반대 위상으로 겹쳐지면 상쇄되어 어두워지는 원리를 이용하는 장비입니다.
중력파 검출기는 이러한 레이저 간섭계가 상쇄간섭 상태가 되도록 유지하면서 중력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죠.
중력파가 레이저 간섭계를 지나가면 두 방향의 빛의 경로가 중력파의 진행 방향과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데, 이때 상쇄간섭 상태가 깨지면서 보이지 않던 레이저 빛이 측정되면 중력파가 검출된 신호인 겁니다.
최초로 중력파 검출에 성공한 LIGO 검출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시공간 변형량의 기준이 되는 레이저 광경로의 길이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4km의 대규모 레이저 간섭계를 건설했고, 공진기라는 장치를 써서 광경로 도중의 빛을 약 280번 왕복시켰습니다.
그리고 레이저를 반사 시키는 40kg의 육중한 거울은 외부 진동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5단계의 진동 차단 장치를 거친 후 0.4 mm 두께의 유리섬유 네 가닥에 매달려 있습니다.
4km의 레이저 광경로 전체는 어떤 입자나 소리의 영향도 차단하기 위해 대기압의 7,600억 분의 1 수준의 초고진공 상태로 유지합니다.
그 결과, LIGO는 2015년 9월 14일 사상 최초로 중력파 검출에 성공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양자 조임이라는 기술을 써서 빛의 양자역학적인 요동까지 억제하는 등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해 현재 약 5억 광년 떨어진 곳의 중성자별 충돌 사건까지 감지할 수 있는 성능에 도달했습니다.
Q. 중력파는 어디에 쓰이나, 중력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성호 / 천문연 천문우주기술센터 책임연구원]
네, 중력파는 지금까지 우리가 빛과 같은 전자기파를 통해 봐온 것과는 다른 측면의 우주를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빛이나 전파는 어떤 천체가 운동하거나 격변할 때 간접적인 현상으로 관측되지만, 중력파는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고, 활동하지 않는 블랙홀과 같이 빛으로 보이지 않는 천체들을 검출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중력파와 전자기파 관측을 결합하면 우주를 보다 종합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죠.
또, 중력파 관측은 일반상대성이론과 같은 중력 이론들을 검증하는 등 물리 법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암흑에너지와 같은 우주의 본질에 관한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중력파 검출기는 진동에 극도로 민감해서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거의 모두 감지할 수 있고 중력파는 지진파와 달리 빛의 속도로 전파하기 때문에 더 빨리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조기 경보기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Q. 이번 LIGO 뒤를 이을 차세대 중력파 검출기는?!
[이성호 / 천문연 천문우주기술센터 책임연구원]
네, LIGO의 뒤를 차세대 중력파 검출기로 유럽 주도의 ‘아인슈타인 중력파 망원경’, 미국 주도의 ‘코스믹 익스플로러’가 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좀 더 진도가 앞서 나가고 있는 아인슈타인 중력파 망원경 개발에 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10km 규모의 레이저 간섭계 6개를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하 200m에서 300m 깊이에 건설하고 열잡음을 줄이기 위해 반사경을 영하 250도 정도로 냉각하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2030년대 중반 완성을 목표로 현재 열심히 설계 중이며 아인슈타인 중력파 망원경의 성능은 우주 대부분의 블랙홀 충돌, 중성자별 충돌을 감지할 수 있고, 심지어 우주 최초의 별 탄생보다 더 먼 거리의, 즉 더 먼 과거의 블랙홀까지 검출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별의 진화 과정의 산물로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블랙홀이 아닌, 우주 태초의 원시 블랙홀이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는 과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중력파 관측은 2015년에 최초로 성공한 후로 아직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신생 분야지만, 이미 우주를 보는 새로운 창으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고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400년 전에 최초의 망원경이 발명되었을 때 오늘날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과 같은 최첨단 장비를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미래의 중력파 검출기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을 텐데요.
더 많은 분들이 중력파 연구에 관심을 갖고, 멀리 보는 안목으로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서,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독창적인 중력파 검출기를 만들 수 있게 되길 소망하며 이상 오늘의 별소리를 마치겠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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