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과학'이라 하면 일단 왠지 어렵고 실생활과 거리가 있게 느껴지는데, 그중에서도 '천문학'이라고 하면 더더욱 딴 세상처럼 멀게 느껴지기 십상이죠.
그런데 우리가 생활 속에서 너무나 익숙한 것들의 상당수가 바로 이 천문 기술에서 온 거라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시나요?
병원에서 찍는 MRI나 CT는 물론, 휴대폰 카메라가 그렇고요. 특히 우리가 어디서나 찾는 와이파이는 우주의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전파를 관측하기 위한 기술에서 왔다고 하는데요.
오늘 '별소리 다 듣겠네!'에서는 멀고도 가까운 천문학의 기술들을 들어보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정태현 / 천문연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
안녕하세요. 열일곱 번째 별소리를 전해드리게 된 정태현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의학, 환경, 영상, 통신 등 우리 생활 속에 다양한 천문기술이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생활 속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천문학 기술’에 대한 별소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Q. 의학 분야에 숨어있는 천문 기술은 무엇인가요?!
[정태현 / 천문연 전파 천문본부 책임연구원]
네, 먼저 우리가 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MRI나 CT 촬영에 전파 천문 기술이 숨어있는데요!
여기에 사용되는 기술을 ‘구경합성법’이라고 합니다. 말이 조금 어려운데요,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여러 개의 작은 안테나들이 받은 신호를 하나로 합성해서 마치 하나의 큰 안테나와 유사한 성능을 갖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전파천문학에서는 ‘전파간섭계’ 또는 ‘VLBI’라고 부르는데, 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전파 망원경들을 이용해서 같은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고 이 데이터를 하나로 합성함으로써 망원경들이 떨어져 있는 거리에 필적하는 거대한 전파망원경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통해서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에 나뉘어 들어오는 전파 신호를 합쳐 먼 우주에서 오는 약한 전파 신호를 검출할 수도 있고, 가상의 거대한 전파망원경이 갖는 높은 분해능으로 우주의 초미세 구조를 관측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MRI에서는 강력한 자기장과 고주파 펄스를 사용하여 사람 몸의 물 분자에서 나오는 전파를 MRI에 장착되어있는 많은 수신장치에서 수신하여 고화질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러한 기술이 MRI뿐 아니라 CT 등 기타 다수의 의료 영상 시스템에서 활용되고 있죠.
또, 인공 뼈를 제작하는 데에도 천문 기술이 활용되고 있는데요, 망원경이 클수록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아시죠? 그래서 천문학자들이 반사경 소재의 밀도를 작게 하는 고강도 경량 반사경 소재 기술을 개발하였는데요. 그것이 바로 SiC 실리콘카바이드입니다.
SiC 소재는 Si 규소와 C 탄소를 결합한 소재인데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열에 강한 소재로 인체에도 무해 하여 인공 뼈로 개발하여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소재는 의학에서뿐 아니라 금속을 가공하는 공구나 항공기용 타이어, 브레이크 등 기계 산업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Q. 그렇다면 천문 기술이 가장 잘 활용 되고 있는 사례는 무엇인가요?!
[정태현 / 천문연 전파 천문본부 책임연구원]
네, 천문 기술이 이렇게 생활 속에 활용되고 있는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바로 영상과 정보통신 분야인데요, 우리가 지금도 가지고 있고 항상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에도 천문 기술이 적용되어있습니다. 신비하고 멋진 우주의 생생한 모습들을 전달해준 허블망원경에 장착된 고성능 CCD가 바로 그 기술입니다.
CCD는 반도체 메모리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발명되었는데요. CCD는 1976년 천문관측에 처음으로 사용된 이후에 필름을 대체하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 생활에 없어서 안 되는 필수적인 기술이 된 거죠. 보통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에 활용되는 CCD는 수백, 수천만 픽셀 정도의 센서가 사용되는데, 허블망원경이나 천문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CCD는 휴대전화에 사용하는 CCD보다 매우 뛰어난 초고감도의 CC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천체 망원경에 사용되는 CCD 한 픽셀의 크기는 매우 작고, 천체에서 오는 약한 빛을 검출하기 위해서 장시간 노출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있죠. 그리고 이때 발생하는 잡음을 낮추기 위해 특수한 냉각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Q. 와이파이 발명에도 천문 기술이 사용됐다면서요?!
[정태현 / 천문연 전파 천문본부 책임연구원]
네, 맞습니다. 와이파이는 사실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전파를 관측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다가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블랙홀’과 ‘와이파이’ 두 단어만 본다면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밀접한 연광성이 있습니다. 1974년,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질량은 에베레스트 산보다 무겁지만, 크기는 원자보다 작은 ‘미니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다."라는 이론을 제시했고 ‘특정한 조건에서 이 작은 블랙홀이 증발하거나 폭발하면서 전파 신호를 방출할 것’으로 예측했죠.
이를 호주의 전파천문학자 오설리반 박사가 이 이론에 흥미를 느끼고 미니 블랙홀이 폭발할 때 나오는 전파 신호를 관측하고자 했습니다. 블랙홀에서 나오는 매우 작은 에너지의 전파 신호가 우주공간과 지구 대기를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과정에서 더해지는 잡음을 제거하고, 신호가 왜곡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수학적 방법과 장치를 성공적으로 개발했죠. 하지만 미니 블랙홀에서 나오는 약한 전파신호를 검출하기 위해 주변의 잡음과 신호 왜곡 현상을 해결하는 장치는, 거꾸로 우리가 무선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때 전파 잡음이나, 가구나 벽과 같은 표면에 반사되어 신호가 왜곡되는 현상을 없앨 수 있어, 오늘날 무선 통신 WiFi 표준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것 외에도 천문학에서 파생된 수많은 기술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천문학과 같은 기초 학문 분야 기술들의 특징이기도 할 텐데요. 이미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호기심 많은 천문학자들이 새로운 기술개발에 앞장서서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데요, 더 많은 기술을 발굴하고 성숙시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천문학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면서 이상 오늘의 별소리를 마치겠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kgb@ytn.co.kr)
[저작권자(c) YTN science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