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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인정전 앞마당

2017년 11월 13일 오후 3:10
서울 종로에 위치한 창덕궁.

조선시대 궁궐들 중 가장 큰 규모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연못과 정자들이 많아 가장 아름다운 궁궐로 평가받고 있지요.

이처럼 훌륭한 창덕궁에도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는데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정문 앞마당.
인정전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이 큰 마당은 눈에 띌 정도로 삐뚫어진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누가, 왜 궁궐의 안마당을 이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일까요?

1405년. 드디어 74칸의 외전과 118칸의 내전을 갖추게 된 창덕궁.

하지만 태종은 계속해서 증축을 명했고 창덕궁 건설은 세종이 즉위한 후에도 계속되는데요.

1419년. 태종은 인정전 앞을 지나가다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합니다.

태종을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마당의 모양.

궁궐의 모든 건물과 마당은 반듯한 사각형이었지만 인정전 앞마당만은 삐뚫어진 모양이었습니다.

이에 격분했던 태종은 공사를 감독했던 박자청을 잡아들여 옥에 가뒀는데요.

도대체 왜 박자청은 궁궐의 앞마당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

넓은 구릉에 지어진 경복궁과 달리 북악산 자락에 지어진 창덕궁은 증축을 할 때마다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야만 했는데요.

하지만 박자청은 궁궐도 자연과 조화롭게 지어질 때 더 아름다울 거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과감히 실행에 옮긴 박자청. 때문에 창덕궁은 경복궁과는 달리 건물들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는데요.

당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 혹독한 댓가를 치뤘지만 박자청의 건축방식은 현대에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창덕궁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며 그 가치를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뤄낸 궁궐 창덕궁 시대를 앞서갔던 건축가의 철학이 남긴 소중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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