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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역사이야기] 인사동

2017년 10월 02일 오전 09:00
<115회> 인사동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 인사동.

수많은 전통물품들이 진열된 이곳은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새겨진 곳이기도 하지요.

인사동은 옛 지명인 '관인방'과 '대사동'을 합쳐서 부르게 된 이름.

그런데 이 이름의 유래에는 우리민족의 서글픈 역사가 담겨있다고 하는데요.

전통의 거리 뒤에 숨겨진 인사동의 슬픈 역사를 만나보시죠.

조선 건국과 함께 수도가 된 한양.

궁궐의 건설과 함께 도성 안의 모습 또한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고 양반들의 저택들도 하나둘씩 늘어납니다.

양반들은 주로 청계천에서 멀리 떨어진 북악산과 남산 자락에 모여 살았는데요.

특히 벼슬을 얻은 고관들의 집은 창덕궁 옆 북촌에 많았습니다.

이후 조선의 역사와 함께 50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북촌.

그러나 1900년대 초, 조선은 일제에 의해 국운을 다하고 마는데요.

왕조가 무너지고 신분제가 사라지자 북촌 양반들의 가세는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져가기 시작합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북촌의 양반들, 그렇다고 지체높은 양반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을 터...

결국 양반들은 집안의 귀중한 물건들을 내다 팔기 시작했는데요.

그 수가 많아지자 북촌 주변은 점차 골동품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1914년 마침내 일제는 이곳 관인방 일대의 명칭을 인사동으로 바꾸게 됩니다.

해방 후 점차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게 된 인사동.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뒤섞인 인사동의 매력 때문에 예술가와 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요.

이때부터 전통찻집과 전시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점차 지금과 같은 전통의 거리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쇠락한 양반들의 흔적 속에서 전통과 낭만의 거리가 된 이곳.

인사동 곳곳에는 슬픈 역사 속에서 자라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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