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교묘해져가는 범죄!
사건규명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조사가 필수적인데요.
과학수사의 도움으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건을 해결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같은 과학수사는 비단 현대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닌데요.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과학수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번 알아볼까요?
실학자 정약용의 형법책 '흠흠신서'
이 책에는 정약용이 직접 겪은 흥미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정약용은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한 고을을 찾았는데요.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사형에 처해지기 전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합니다.
"손톱 밑에 진흙과 모래가 있고 위가 팽창한 것은 물에서 죽었다는 증거다. 옷이 없는 것은 강을 건너기 위해 직접 물에 들어갔기 때문일 수 있다. 범인이 물가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같은 정약용의 판단으로 다행히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잘못된 판결을 막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수사가 필수.
때문에 조선시대 암행어사들은 마패와 함께 유척을 지급받았는데요.
정확한 길이를 잴 수 있는 자를 이용해 다양한 범죄현장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같은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알았던 정약용은 마침내 자신이 목격한 범죄현장을 상세히 글로 정리했는데요.
무려 300여 가지에 이르는 범죄의 내용과 수사결과를 흠흠신서에 담았던 정약용은 억울한 백성이 없는 세상이야 말로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비록 첨단과학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정확한 판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우리 선조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백성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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