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YTN 사이언스

검색

왜 한국에서만 수학포기자들이 양산되는가?

imcc*** 2015-12-08 21:14 조회 1655
어릴적에 수학을 너무나 못해서 수학을 정복하고자 수학과로 진학하였다.

대학에 들어가 놀란 것은 이렇게 재미있고 쉬운 수학을 왜 중고교에서는 그렇게 재미없고 어렵게 가르쳤는지 대강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거다.

대학 수학과 중고교 수학은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더 직접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학교 수학선생들의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다.

수학선생 자신들이 수학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당연 엉터리로 강의할 수 밖에 없는 거다.

두번째 수학교과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우리 수학교육과정과 교과서가 국적 불명의 내용으로 짜깁기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수학은 사실상 일본의 것을 거의 그대로 베껴온 것이다. 거기다 약간 미국적 양념을 살짝 한 정도이다.

그래서 무척 어색한 부분도 적지 않다. 일본 국민성은 작은 것에 집착하고 집중하는 성격이 강해서 수학문제 풀이를 매우 즐긴다.

그러나 한국인의 습성은 그다지 꼼꼼하게 문제 풀이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다.

세계의 수학교과서들을 내가 다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대강 본 느낌은 일본은 계산 중심으로 수학교과서가 구성된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주로 개념 중심으로 편집되었고 문제 풀이는 그냥 참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일본 것을 베낀 한국의 수학교과서도 당연 문제 풀이 중심으로 편집되어있다.

일본 국민성과 정반대인 한국인들에게 맞지 않는 교과서인 것이다.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처럼 개념 중심으로 만들면 한국인들이 아마 전세계에서 제일 수학을 잘하는 민족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엉터리 수학교과서로 수학교육을 너무나 엉터리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도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있다.

수학은 모든 과학의 기초학문이라고 한다. 수학이 없이 어떤 과학도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우리가 노벨상을 못받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잘못된 수학교육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같은 수학교육으로는 앞으로도 거의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98년 경인가 저의 책을 보고서 서울대 교수님이 같이 연구할 수 있느나고 연락이 왔다.

그때 서울대 대학교수들도 수학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이 외국에서 출간되는 논문들에 나오는 수학적 수식이나 그래프들을 해독하지 못해서 그 논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수학에 발목이 잡히면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이 IT 강국이라고 말하지만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는 거의 없다.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수학 그 자체다. 대한민국이 배출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는 그저 단순히 컴퓨터 언어만을 습득하는 수준이고 그 언어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못한다.

좋은 프로그램은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교육은 단순히 프로그램언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수학적 알고리즘을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인 거다.

어떤 문제에 대한 수학적 알고리즘을 먼저 알아야 하고 다음은 그것을 프로그램 언어로 구현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프로그램 과정이다.

우리의 프로그램은 가장 핵심적인 수학적 알고리즘을 프로그램 언어로 바꿀 능력이 전무하다는 거다.

지금처럼 수학교육을 엉망으로 한다면 절대로 좋은 프로그래머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는 나오지 않는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는 프로그래머가 결정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수학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방송에 출연하는 분 대부분이 수학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분들이 강연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수학은 음악이나 미술 체육처럼 재능이 아니다. 수학은 원래 바보를 위한 학문이다.

한국의 수학교육은 천재를 위한 수학교육이고 권력자를 위한 수학이다.

하지만 진짜 수학교육은 바보를 위한 것이고 대중을 위한 거다. 바보를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있다면 모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과 민주주의는 마차의 두바퀴와 같다.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마차는 달리지 못하는 거다.

수학이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시작한 아테네에서 태어난 이유이다.

조선시대는 사서삼경이 신분상승을 가로 막았다. 겉으로는 평민도 누구나 고관대작이 될 수 있다고 과거시험이 개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농사일로 바쁘고 무지한 일반 평민이 어려운 한문으로 쓰인 사서삼경이나 외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날은 수학이 바로 신분을 가르는 역할을 한다. 수학점수 하나로 명문대를 가느냐 못가느냐가 결정된다.

많은 돈을 들여 수학 고액과외를 받느냐 못받느냐로 신분차별을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억지로 수학을 어려운 학문이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교육정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학생에게 정석을 고액강의하는 폭력도 자행하고 있다. 정석은 수학의 악서이다. 이런 책이 이렇게 오랜 시간 한국 수학 참고서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놀랍다.

이런 악의적인 교육정책을 깨부수지 않는한 우리는 모두 수학에 의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려운 한문으로 쓰인 동양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고통을 당한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 엉터리 수학으로 고통받고 있다.

누구를 위한 고통이란 말인가? 조선시대는 어리석은 임금 한 사람들을 위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고 이제는 1% 기득권을 위해 모든 학생들이 고통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