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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기술로 온기 나누다…파란눈 한국인 의사 인요한 소장

■ 인요한 /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앵커]
한국의 의료 산업은 이제 세계 다른 나라와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수준에 이르렀죠. 하지만 이런 발전의 시작에는 누군가의 조건 없는 도움이 있었는데요.

1800년대 말, 혼란스러웠던 조선에 발을 내디딘 외국인 선교사와 그 후손들이 한국에서 의료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탐구 人>에서는 나눔의 의료를 실천하고 있는 파란 눈의 한국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인요한 이사장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앵커]
반가운 분이 스튜디오에 나오시니까 뭔가 더 꽉 찬 느낌이 듭니다.

최근에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 성화 봉송 주자로 나가셨잖아요. 그때 분위기하고 소감이 궁금합니다.

[인터뷰]
11월 1일에 인천대교를 건너는데 성화를 들고…. 그런데 좀 아쉬운 점은 그때 하고 싶은 말 하나를 못 했어요. "30년 전 올림픽이 우리를 찾아왔구나, 또 올림픽이 왔구나, 한 번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 대한민국 만세!"

[앵커]
아~ 지금 방송에서 하셨으니까 소원 푸신 거 아니에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앵커]
소장님 가계가 선조 때부터 100년에 걸쳐서, 100년 이상을 넘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어오고 계시잖아요. 그럼 조선 시대 말부터인데요, 어떻게 처음 선조가 이 땅을 밟게 되셨고,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소개해주시죠.

[인터뷰]
1895년에 저희 친외조부, 그러니까 할머니의 부모님이 처음 한국 땅에 와서 호남지역에서 교육, 교회에 관한 선교, 병원, 그 당시에 굉장히 병원이 열악했기 때문에 많은 의료 사업을 했습니다.

[앵커]
그 친외조부님이 바로 유진벨 씨죠.

[인터뷰]
네, 유진벨입니다.

[앵커]
할아버님, 아버님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왔죠.

[인터뷰]
할머니가 1899년 목포 태생이고, 아버지가 1926년 군산 태생이고, 저는 1959년도에 태어나긴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순천입니다.

[앵커]
아, 태어나기만 전주에서 태어나시고 어쨌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거네요?

[인터뷰]
그렇죠, 저희 아들까지 하면 5대째입니다.

[앵커]
그래서 그런지 전라도의 구수한 억양이 있으세요.

[인터뷰]
네, 전라도 표준어를 잘 씁니다.

[앵커]
그래요? 제가 봤을 때는 서울 표준어 같은데요?

[인터뷰]
흥분했을 때 튀어나옵니다.

[앵커]
아, 그렇구만유.

[인터뷰]
그러지라.

[앵커]
소장님께서 순천에서 자라셨을 때 서울도 순천은 더군다나 의료 환경이 좋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인터뷰]
어렸을 때…. 이걸 방송에서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북한 군인 몸에서 기생충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사실 60년도에 약 먹을 때마다 기생충이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개인위생도 안 좋았고 병원도 소독 냄새나는 어두컴컴한 분위기이고, 순천에서는 큰 수술을 못 해서, 저 자신도 제왕절개로 어머니가 낳으셨는데, 전주에서 하게 됐고, 참 열악했죠.

[앵커]
당시 결핵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았죠?

[인터뷰]
우리 큰 형님, 3형제가 다 어렸을 때 한국인 학교에 다니다가 결핵을 앓아서 우리 집안이 결핵과 인연이 깊어지고 어머님이 50년 동안 결핵 요양소를 운영하고요.

결핵이 아마 지난 100년 동안에 다른 질병이나 전쟁보다 사람의 목숨을 많이 앗아간 없애기 어려운 병입니다.

그런데 OECD 국가에서 우리가 굉장히 수준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1위에요. 그리고 북쪽은 말할 것도 없이 더욱 많고요.

[앵커]
선친께서도 그렇고 어머니께서도 그렇고, 결핵 퇴치 운동에 앞장서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이렇게 대대로 열악했던 한국의 의료계를 위해서 많이 노력해주셨는데, 소장님께서도 이바지한 부분인 있다고요?

[인터뷰]
이제는 우리가 도움을 받다가 우리가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저희 선조들은 한국을 많이 도와줬지만, 저는 굉장히 재밌는 일을 하고 있어요. 국제의료보건재단에서 개도국에 모자보건하고 북한 일하고, 외국에 있는 교포들은 열악하잖아요, 나이도 많고 양로원도 운영하고….

30여 국가에 국제보건의료재단이 원조하는 겁니다. 그냥 원조하는 게 아니고 그들도 장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벌써 800명을 가르쳐서 보냈어요. 그래서 개념이 일방적으로 돕는 게 아니라, 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낚싯대를 주자는 철학을 줘서 굉장히 크고 멋있는 일을 펼치고 있어요.

좀 안타까운 건 북한 이종욱 기념재단으로 과언이 아닌데, 북한 일을 더 많이 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분위기가 좀 하기 어려웠는데 지금 풀려서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앵커]
여러 가지 대외적인 활동도 하고 계시는데,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때 당시에 '한국형 앰뷸런스'를 직접 제작하셨다고 하던데요?

[인터뷰]
1984년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이야기가 너무 길지만, 결국 택시 뒤에서 광주로 후송하면서 운명하셨어요. 앉은 채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1990년도 초에 한국형 앰뷸런스를 만들고….

[앵커]
저 사진이 80년대 그 사진인가요? 아. 90년대 처음 만들었던 앰뷸런스죠.

[인터뷰]
저 앰뷸런스를 만들고 한국에 5,000대가, 한국형 앰뷸런스가 보급되었죠.

[앵커]
그럼 저 때가 최초의 도입인가요?

[인터뷰]
앰뷸런스는 있었는데, 비난적으로 표현하자면 누워서 가는 택시고, 그 안에 장비함도 만들고 여러 가지 환자를 가면서 치료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겁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현대적 의미의 앰뷸런스는 최초로 제작하셨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인터뷰]
그렇죠, 한국이나 아시아에 맞는, 너무 크지 않고…. 그런데 이제 최근에 조금 아쉬운 점은 앰뷸런스 발전이 좀 주춤하고 있어요.

내부가 너무 작고 다시 소형화되고 있는데, 공간이 넉넉해야 환자 뒤에 앉아서 치료하고 기도 삽관 같은 것을 하고 그런 것이 가능한데, 그런 점들이 아직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소방서가 비난도 많이 받지만, 작년에 130만 명을 옮겼어요.

[앵커]
아, 응급환자를요?

[인터뷰]
네! 굉장히 고마운 분들입니다.

[앵커]
열악한 환경이지만, 여러 가지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있고, 그런데 50년 동안 의료 활동을 하면서 한국 의료계에 발전을 함께 해오셨는데, 무궁한 발전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보시나요?

[인터뷰]
한국 의사의, 특히 시술과 수술에 있어서 한국 의사들 손재주가 세계 최고예요.

그리고 장비가 뒷받침하니까, 예를 들어 로봇 수술 같은 경우는 우리 병원에서 3개를 이끌어 가고 있어요. 2만 건 정도 수술했고요, 아주 큰 병원에서도 5천 건도 못 한 병원이 대부분인데, 한국에서 앞으로 아마 첨단 의학…. 그런데 우리나라가 자랑을 잘못해요.

저는 얼굴이 좀 다른 한국인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나가서 해외 환자 유치에 '우리가 한국 사람이 잘한다, 한국에 와서 당신 건강을 고쳐라!'라고 하는 건 하나의 산업이지만, 한국에서 못 고칠 병을 고쳐서 가면 얼마나 한국 자랑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이 산업에 제가 은퇴까지 10년이 안남았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바지할 마음입니다.

[앵커]
앞으로 하고 싶은 꿈을 잠깐 말씀해주셨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의료관광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이 분야에서 어떤 투자나 지원이 이루어지면 좋을까요?

[인터뷰]
제일 중요한 것은 알려야 하는데, 우리의 기술이 어느 정도 와있는지 알리고, 그다음에 너무 환자를 많이 받으면 한국에 있는 소외된 환자들이 혜택을 못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이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발전할수록 더 아래까지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어떻게 인술로 돈을 버느냐, 그런데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봉사는 봉사고 이건 산업입니다. 이거는 하나의 산업이니까, 철강이나 IT나 이렇게 생각해야지 의사도 미안해해요, '이거로 돈을 벌어도 되는가?'.

[앵커]
사명감 때문에요.

[인터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깔끔하게 외국 자기 나라에서, 러시아, 카자흐스탄, UAE 등 이런 나라들은 돈은 있는데 좀 더 나은 치료를 (받지 못해요), 그리고 우리가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어요, 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건 왜 하느냐가 아니라 왜 안 하느냐, 앞으로 꼭 해야 합니다.

[앵커]
의료계 발전을 위해서 아껴두신 말씀 지금 정말 많이 하고 싶으시겠지만, 시간관계상 여기까지 하시고요.

파란 눈의 한국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시는데, 혹시 다른 별명으로 불리고 싶은 거가 계신가요?

[인터뷰]
하나 더 있습니다. '보세품'이요.

[앵커]
보세품이요?

[인터뷰]
생긴 건 외제같이 생겼는데, 수출하다가 결함이 있어서 다시 돌아왔다, (이런 뜻으로요.)

[앵커]
'보세품'이요. 그렇다면 의료계에 명품 보세품으로 계속해서 활약하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지금까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인요한 이사장과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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